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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PX에서 산 거 거울을 들여다보면 표정이 달랐음

2026-10-26 04:29:17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군대 PX에서 산 거 거울을 들여다보면 표정이 달랐음. 그날도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훈련 끝나고 라면 사서 숙소로 돌아오는데, 이등병 시절이라 손에 돈이 남아돌 일도 없잖아. 근데 누가 “거울 하나 사두면 나중에 쓸모 있다”면서 추천하길래, 별 생각 없이 PX 코너에서 작은 손거울을 집어 들었지. 값도 싸고, 모서리도 매끈해서 그냥 ‘내 물건’이 생겼다는 느낌이 들더라.

처음엔 평범했어. 면도 후에 머리 넘기고, 제식 준비할 때 눈썹 정리할 때나 쓰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거울은 반응이 빨라. 실제로는 내가 움직일 때만 움직여야 하는데, 눈이 미세하게 따라오지 않는 느낌이랄까. “피곤해서 그래”라고 넘길 수 있었지. 그때는 그냥 훈련이 쌓여서 감각이 예민해진 줄 알았어.

둘째 날부터는 확실해졌어. 아침에 세수하고 거울을 보는데, 내 표정이 내가 생각한 ‘내 표정’이랑 달랐어. 나는 거울 앞에서 이를 악물고 있지 않으려고 힘주고 있었거든. 그런데 거울 속 내 얼굴은 좀 더 굳어 있었고, 입꼬리도 약간 내려가 있었어. 마치 누가 내 얼굴을 미리 연습해둔 것처럼. 그 순간만큼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이없었는데, 동시에 뒷목이 서늘했어.

그래서 난 일부러 장난처럼 확인해봤어. 일부러 크게 하품해보고, 입을 옆으로 벌려서 웃어보고,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했지. 그런데 거울 속 나는 동작은 따라 하는데, 표정의 결이 달랐어. 내가 “아, 그냥 피곤” 하고 넘기려는 그 마음이 거울 속 표정에는 없더라. 눈동자만은 계속 같은 온도를 유지했어. 그게 제일 무서웠어. 표정이 늦게 따라오거나 빨리 따라오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감정으로 고정된 느낌이랄까.

밤에 더 심해졌어. 근무 서고 돌아와서 샤워하고 나면, 숙소 조명이 좀 흐리잖아. 그 조명 아래서 거울을 보면 얼굴 윤곽이 더 또렷해지는데, 그 또렷함이 불편할 정도였어. 특히 웃을 때. 나는 친구한테 “오늘도 버텼다” 같은 농담을 하고 있었는데, 거울 속 나는 웃는 표정인데 눈이 웃지 않았어. 순간적으로 그 표정이 ‘나’가 아니라 ‘누군가가 내 얼굴을 쓰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나는 거울을 다른 방식으로 봤어. 거울을 벽에 기대놓고 각도를 바꿔서 비춰봤는데도 동일했어. 햇빛 쪽에 세워도, 형광등 아래에서 비춰도, 손을 살짝 흔들어도 표정은 유지됐어. 오히려 내가 피곤해서 굳어지는 순간에도 거울 속 표정은 더 또렷하게 정돈되는 느낌이었어. 마치 “네가 느끼는 피곤함”과 “내가 가진 얼굴”이 다른 층위에 있는 것 같았지.

어느 날은 진짜로 말이 통하는 것처럼 느껴졌어. 훈련장 소식 듣고 다들 조용해진 날이 있었거든. 복도에서 누가 담배 냄새를 풍기며 지나가는데, 다들 눈을 피하고 있던 때. 나도 무의식적으로 표정을 굳히고 거울을 봤어. 근데 거울 속 나는 그때보다 더 늦게, 한 박자 뒤에 표정을 바꿨어. 사람들이 조용해지던 그 순간과 맞물리듯이. 그래서 그때 확신이 들었어. 내 감정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타이밍을 따라가는 거라고.

처음엔 누가 장난친 건가 싶었는데, PX에서 산 거였고 포장도 뜯어서 바로 쓰기 시작했어. 누가 내 물건에 뭔가를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내 방에 아무도 자주 들어오지 않았어. 대신 한 가지가 눈에 띄었지. 거울 뒷면에 작은 상처 같은 게 있었어. 손톱으로 긁어도 잘 안 닿는 위치인데, 자세히 보니까 정말 얕은 긁힘이 반복된 흔적처럼 보이더라. 나는 그걸 그냥 보관하다 생긴 흔적인 줄 알았는데, 거울이 이상해진 뒤로 그 흔적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

그 뒤로 나는 거울을 ‘확인용’으로만 쓰게 됐어. 면도할 때만 짧게 보고, 표정이 어긋나는 걸 확인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근데 이상한 건, 내가 거울을 피하려고 할수록 거울 속 표정은 더 선명해졌다는 거야. 한 번은 아예 거울을 덮어두고 손으로 가려 봤는데도, 덮개 사이로 보이는 내 얼굴이 덜덜 떨리는 것처럼 보여. 그때부터는 거울을 들고 있는 내 손까지도 낯설게 느껴졌어.

결국 마지막 날, 난 그 거울을 PX 영수증까지 같이 챙겨서 반납하려고 했어. “이거 환불되나?” 하고 말할 생각도 있었지. 그런데 막상 상자에 넣으려니 손이 안 움직이더라. 거울 표면이 뿌옇게 흐려진 건 아닌데, 내 눈앞에서만 아주 미세하게 ‘내가 아닌 얼굴’이 먼저 반응하는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 문득 생각했어. 거울은 비추는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표정을 ‘기억’해서 가져다 주는 물건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아직도 가끔, 어디서든 반사되는 내 얼굴을 보면 웃는지 찡그리는지보다 먼저 “누가 먼저 표정을 정했지?” 그 생각이 먼저 스쳐 지나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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