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로 산 시계가 내 생활패턴에 맞춰 초침을 멈췄음
중고거래로 산 시계가 내 생활패턴에 맞춰 초침을 멈췄음. 처음엔 “배터리나 가죽줄 상태겠지” 하고 넘겼는데, 멈추는 타이밍이 너무 규칙적이라서 어느 날부터는 일부러 확인하게 되더라. 나는 평일엔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출근 전엔 커피를 마시고, 야근하면 또 그 시간대에 화장실 다녀오고… 그런 루틴이 있는데, 그 순간마다 시계가 딱— 멈췄다.
그 시계는 중고로 저렴하게 올라와 있었어. 상태 사진도 괜찮고, 판매자가 “연식은 있는데 작동은 문제없다”고 했고. 택배 와서 차고 있는데, 초침이 계속 잘 가더라. 문제는 내가 처음으로 시계를 ‘내 생활’에 맞춰보게 된 날부터였어. 아침에 알람 맞추고 일어나서 손 씻고, 부엌으로 가서 물 끓이는 시간… 그 루틴이 대충 고정이잖아. 그때 시계가 12시 13분쯤에서 멈추는 거야. 정확히 말하면, 초침이 딱 그 자리에서 멎고 몇 분 뒤에 다시 움직였어.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 시계가 충격을 받았거나, 내가 손목을 세게 흔들었거나, 혹은 온도 차로 잠깐 멈췄을 거라고. 그래서 다음 날도 똑같이 아침 루틴을 했는데, 이번엔 또 똑같은 패턴이 나왔어. 일어나서 머리 감기 시작할 즈음, 분침은 그대로인데 초침만 멈춰. 심지어 멈추는 초가 거의 동일했어. 7초에서 8초 사이로 ‘걸리는 느낌’이랄까. 한 번이야 이해했지만, 연속으로 겪으니까 그때부터 신경이 곤두서더라.
나는 멈춘 걸 확인하느라 핸드폰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봤어. 시계가 멈춘 순간부터 다시 움직이기까지 항상 비슷한 시간이 걸렸고, 그 “비슷함”이 내 행동과 딱 맞아떨어졌어. 예를 들면, 출근 준비하면서 가방을 챙기고 현관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즈음. 그때마다 초침이 멈추고, 문 닫고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는 타이밍에서 다시 가기 시작해. 웃길 정도로 절묘했어. 그래서 난 점점 ‘내가 뭘 하느냐’보다 ‘시계가 뭘 기다리느냐’를 보게 됐어.
그 다음엔 확인 게임을 더 크게 했어. 일부러 평소보다 10분 늦게 일어나보고, 커피 대신 물만 마셔보고, 출근길에 한 번 더 편의점 들러서 계산하고 나서 차고 나가봤거든.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멈추는 자리가 “내 루틴의 지점”으로 이동하더라. 정확한 숫자로 말하면, 초침이 멈추는 위치 자체가 고정이 아니라 내가 특정 행동을 시작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바뀌었어. 그러다 보니 더 이상 배터리 문제로 보기 어려웠어. 시계가 시간을 틀리는 게 아니라, 내 시간표에 맞춰서 멈추는 것 같았거든.
어느 날은 아예 일부러 시계를 벗고 책상 위에 놔둔 채로 30분을 보냈어. 평소엔 안 그러는데 그날은 일부러 실험이 목적이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차려는 순간,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시계도 이상하게 굳어 있었어. 초침이 전혀 다른 상태로 멈춰 있었고, 내가 다시 손목에 채우는 딱 그 순간에야 ‘아까 멈췄던 자리’로 돌아가듯이 한 번에 툭—하고 움직이더라. 그때 진짜로 식은땀이 났어. 뭔가 시계가 “내가 다시 착용할 때”를 조건으로 두는 느낌이었거든.
나는 판매자에게 연락했는데 답이 늦었고, 결국 “제품 상태에 따라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넘어가더라. 대신 나는 속으로 다른 가능성을 생각했지. 혹시 내부에 뭔가 센서가 있고, 내 손목 온도나 땀, 혹은 맥박 같은 걸 감지해서 이상 동작을 하는 건가. 근데 그게 가능하다고 치더라도, 그렇게까지 내 생활패턴을 ‘맞출’ 수 있나? 특히 출근길에 버스 정류장 앞에서 늘 서는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대가 거의 분 단위로 맞아 떨어질 때는 그냥 기분이 이상했어. 괜히 “내가 오늘도 여기서 기다리는구나”를 시계가 확인하는 것처럼.
그날 밤, 나는 멈춘 초침 사진을 찍어서 비교해봤어. 멈춘 위치가 매번 다르니까, 그냥 우연이면 사진에서도 흩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내 루틴이 반복되는 구간에서만 다시 나타나는 느낌이더라. 그리고 더 소름은, 내가 생활을 조금 바꾸려고 마음먹은 다음부터는 멈추는 횟수가 줄었어. 일찍 자고, 커피도 끊고, 출근길 동선을 살짝 바꾸니까 초침이 멈추는 빈도가 확 줄더라. 그래서 나는 결론 비슷한 걸 내렸어. 이 시계는 고장이 아니라, 내가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고정된 시간”을 붙잡는 장치 같은 거 아닐까 하고.
지금은 시계를 잘 안 차. 정확히 말하면, 차고 싶을 때는 차되 멈추기 전에 일부러 루틴을 끊어. 물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손목을 잠깐 내려놓거나, 출근 전에 창밖을 보면서 시간을 늘려. 그러면 초침이 다시 달리기 시작하거든. 문제는 그게 내 선택으로 해결된다고 믿는 순간이 제일 불안하다는 거야. 어떤 날은 내가 루틴을 바꿨는데도, 마치 예전 생활패턴을 “기억”하는 것처럼 초침이 또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더라. 그때 생각했어. 이 시계는 시간을 재는 게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반복될 사람인지 체크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