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마당 우물 뚜껑에 젖은 손자국이 남아있음
시골집 마당 우물 뚜껑에 젖은 손자국이 남아있었어요. 딱 여름 장마가 끝난 다음 날이라도 될 만큼, 손바닥이 눌린 자국이 선명하게 반짝였고 손가락 끝까지 물기가 따라내린 것처럼 끈적하게 번져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그냥 누가 지나가다 묻힌 거겠지,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문제는 그 자국이 제가 보기엔 ‘사람 손’ 모양이 아니라는 느낌이었어요. 손가락이 너무 길고, 손바닥 주변이 살짝 퍼져서 마치 물에 적신 천을 눌렀다가 뗀 것처럼 보였거든요.
우물은 집 마당 한가운데에 있는데, 뚜껑은 늘 무거운 철판 위에 나무로 덮어 둡니다. 그래서 평소엔 아무도 거길 만지지 않아요. 그런데 그날 아침, 제가 마당으로 나가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우물 뚜껑 위의 손자국이었어요. 젖은 흔적이어서 바람에 반쯤 말라야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열흘째 손자국이 그대로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고 냄새도 미세하게 올라왔는데요, 흙냄새가 아니라 차가운 물이 오래 고인 냄새 같았습니다.
저는 그날이 “손자국이 생긴 날”인지 정확히 기억하려고 했어요. 전날 밤까지만 해도 우물 뚜껑은 그냥 평평했거든요. 그런데 아침에 보니 철판 위로 물기가 얇게 번져 있었고, 그 물기가 손자국 안쪽을 따라 고여 있었어요. 그래서 괜히 마당에 누가 다녀갔나 싶어서 집 식구들한테 물었는데, 할머니는 “그거 너 할 때부터 있던 거 아냐?”라고 웃으셨어요. 저는 그 말이 어딘가 어긋난다고 느꼈어요. 제가 어릴 때 우물 뚜껑을 장난삼아 열어 보려다가 혼났던 기억은 선명한데, 그런 손자국은 본 적이 없거든요.
특히 그 손자국은, 우리 집에서 쓰던 장갑이나 수건으로는 설명이 안 됐습니다. 장갑을 끼는 사람도 없고, 수건은 늘 다른 창고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뚜껑을 조심히 살펴봤는데, 표면에 물기만 있는 게 아니라 철판이 아주 미세하게 울퉁불퉁하게 눌린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그 자리에서 잠깐 숨을 고른 뒤, 한 번에 힘을 주어 눌러버린 것 같았어요. 손자국이 생긴 지 시간이 꽤 지난 흔적이라면 뚜껑 표면에 먼지나 잔흔이 섞여야 하는데, 오히려 주변만 깨끗하게 정리된 느낌이랄까요.
저는 그날 저녁, 물을 길어 올리러 온 건지 확인하려고 우물가에 귀를 대봤어요. 당연히 ‘그런 소리’가 들리겠죠, 하는 식으로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요, 이상하게도 철판 아래로 아주 낮은 소리가 스치듯 지나가더라고요. 웅— 하고 길게 울리는 게 아니라, 아주 얇게, 손톱으로 무언가를 긁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잠깐 어깨가 굳었어요. 우물은 집 안과 거리도 있고, 주변에 물건도 많은데 소리가 오직 철판 아래에서만 올라오는 것처럼 정확했거든요.
다음 날이 문제였습니다. 손자국이 그대로 있던 자리에, 똑같은 모양의 손자국이 한 겹 더 얹혀 있었어요. 마치 누군가가 전날 밤에 뚜껑 위로 한 번 더 손을 올렸다가, 물기만 남기고 사라진 것처럼요. 그리고 두 번째 자국은 첫 번째 자국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밀려 있었어요. 저는 그걸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이상한 계산을 하게 됐습니다. 누군가가 우물 뚜껑 위에서 손을 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올라와야 하는데, 그 무거운 철판은 혼자 들어 올리기 힘들고, 뚜껑을 받치는 나무틀도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주변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어요. 발자국도 없고, 흙이 긁힌 자국도 없고요.
그때 할머니가 부엌에서 소리치셨어요. “너 거기 왜 서 있어? 바람 불면 젖은 거 금방 마르니까 다 닦아라.” 그런데 제가 닦으려고 휴지를 가져가자마자, 손자국이 묘하게 번지더니 휴지를 대는 순간 물기가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어요. 휴지는 젖지 않았는데 손자국만 사라지는 거예요. 다 닦았다고 생각했는데, 한참 뒤 다시 마당 쪽이 고요해졌을 때, 철판 위에 희미한 윤곽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마치 닦아도 ‘기억’이 남아 있는 것처럼요.
며칠이 지나도 손자국은 계속 반복됐고, 횟수가 늘어날수록 모양이 미묘하게 변했어요. 어떤 날은 손가락이 더 길어 보였고, 어떤 날은 손바닥 면적이 더 넓어졌습니다. 저는 그 변화를 단순히 각도나 빛 때문이라고 넘기려 했는데, 어김없이 공통점이 하나 있었어요. 우물 뚜껑의 손자국은 항상 같은 높이에서, 같은 방향으로 나타났다는 거예요. 누군가가 일부러 자리를 맞춰 두는 것처럼. 그리고 그때부터 저는 우물 속을 보게 됐습니다. 검은 구멍처럼 보이는 깊이에서 바람이 스치며 물결이 생기는 듯한 기포가 보일 때가 있었고, 그 기포가 올라오는 타이밍이 손자국이 다시 생기는 타이밍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그날 밤에 정말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마당이 조용해서 귀가 먹먹할 정도였는데, 우물 쪽에서 아주 느린 소리가 들렸습니다. 철판이 ‘살짝’ 흔들리는 소리였고, 이어서 누군가가 물 위에 손을 얹었다가 천천히 떼는 소리처럼 조용히 사라졌어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손자국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었는데요, 이번엔 손가락 끝이 서로 조금 벌어져 있었어요. 꼭 누군가가 누군가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는 모양처럼요. 저는 그걸 보고도 이성적으로는 설명을 찾으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울컥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손자국이, 이상하게도 제 어릴 때— 제가 우물가에서 실수로 미끄러졌던 날의 제 손보다 더 닮아 보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