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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타고 가는데 내비가 갑자기 똑같은 도로만 반복함

2026-10-29 16:29:17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택시 타고 가는데 내비가 갑자기 똑같은 도로만 반복함. 그날도 그냥 퇴근하고 집 가는 길이었는데, 기사님이 “내비 좀 이상하네” 하기도 전에 제 폰 화면부터 먼저 멈칫하더라. 도로 위에 파란 경로가 한참을 가다가, 마치 누가 손가락으로 되감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구간을 또 그리기 시작했어. 처음엔 지도 로딩이 느린 줄 알았는데, 그게 진짜로 ‘반복’이더라.

처음엔 경로가 꼬인 거겠지 싶었어. “방금 지나간 길인데요?”라고 말하려다 말았는데, 택시는 실제로는 그대로 달리고 있었거든. 그런데 내비 음성 안내는 계속 같은 문장으로 돌아왔어. “앞으로 300m 후 좌회전.” 그 다음도 “앞으로 300m 후 좌회전.” 좌회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는데도, 마치 택시가 계속 같은 속도로 같은 지점에 멈춰 있는 것처럼 반복됐지.

기사님은 처음엔 웃으면서 넘겼어. “이따가 돌아가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러더니 휴대폰을 살짝 만지더라고. 택시 안 화면 내비가 아니라, 내가 보는 내비랑 기사님 내비가 같이 이상한 거라서 더 신기했어. 기사님 내비도 똑같이 같은 경로 위에서 파란 선이 반복해서 그려지고, 지도 상의 내 위치 아이콘이 미세하게 떨리며 같은 자리로 돌아가더라. 그 떨림이 ‘GPS 오차’라고 하기엔 너무 일정했어.

난 평소에 길치 소리 듣는 편이라, 내비를 진짜 맹신하는 편이거든. 그래서 더 불안해졌어. “기사님, 지금 도로가… 방금 전이랑 똑같은데요?” 물었더니 기사님이 잠깐 조용해졌어. 그리고는 액셀을 살짝 더 밟는 느낌이 들더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밟을수록 내비 반복이 더 빨라지는 것 같았어. 같은 구간을 더 많이 도는 게 아니라, 안내만 더 빨리 되풀이되는 느낌.

그때부터 택시 안 공기가 이상했어. 에어컨 바람이 차갑게 나오는데, 내 목 뒤쪽은 계속 서늘했거든. 창밖을 봤는데 가로등 간격, 상가 간판, 신호등 위치까지 너무 익숙했어. 이미 지나갔던 것들인데도 ‘지금 또 지나간다’는 감각이 겹쳤어. 마치 내가 한 번 더 살짝 지연된 현실을 보고 있는 기분. 내가 방금 본 장면을 머리가 다음 장면처럼 기억해버리는 느낌? 그게 제일 이상했어.

내비가 반복하던 구간은 이상하게도 “한 번만 꺾으면 되는 길”이었어. 왼쪽으로 돌아서 큰 길로 붙는 코스. 그런데 택시는 계속 직진하면서, 내비는 계속 “좌회전”만 말해. 좌회전 표시는 계속 뜨는데, 차는 그 표지판이 있는 교차로를 지나치지도 못하고, 마치 바로 직전에 다시 돌아선 것처럼 속도만 유지되는 느낌이었어. 눈으로는 분명히 앞으로 가고 있는데, 귀로는 계속 뒤로 끌려가는 안내를 듣는 그런 모순.

기사님이 결국 휴대폰을 꺼버리듯 내비를 껐다 켰어. 그런데도 한두 번은 괜찮다가, 금방 다시 같은 반복으로 돌아왔지. 그 순간 기사님이 갑자기 “죄송한데요” 하고 한숨을 쉬더라. “제가 운전 오래 했는데, 이 구간은… 원래 가끔 그래요. 근데 보통은 몇 번 꺾이고 끝나는데, 오늘은 이상하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사님 표정이 웃는 얼굴이 아니었어. 뭔가를 숨기는 사람처럼 눈을 한 번도 제 위치에 두지 않고, 계속 전방만 봤어.

나는 그때부터 내비가 아니라 다른 걸 보기 시작했어. 시계, 차량 속도계, 차창에 비친 내 손. 그런데 속도계 바늘이 아주 미세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보였어. “얼마나 빨리 가는가”가 반복되는 게 아니라 “같은 숫자 근처로 계속 돌아오는” 느낌. 그리고 신기한 건, 택시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는데도 내비가 ‘재안내’ 타이밍에 맞춰서 안내 문장이 다시 시작됐다는 거야. 마치 길이 아니라, 시간만 되감기 되는 것처럼.

결국 큰 도로로 붙는 분기점이 나왔는데, 이번엔 내비가 잠깐 멈추더니 화면이 완전히 새로 켜졌어. 지도가 다시 스르륵 정상처럼 보이고, 음성도 “경로가 다시 설정되었습니다” 같은 문구가 나왔거든. 나는 안도했는데, 안도하자마자 오히려 소름이 돋았어. 왜냐면 택시가 멀쩡히 앞으로 간 게 아니라, 방금 전에 봤던 그 분기점 앞에서 다시 출발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창밖 간판이 ‘방금 지나간 것’이 아니라 ‘곧 지나갈 것’으로 바뀌어 있는 느낌. 그 작은 차이가 이상하게 크게 다가왔어.

그리고 마지막에 집 근처 골목으로 들어오기 직전, 내비가 또 한번 똑같이 깜빡이더니, 아주 짧게 한 문장만 띄웠어. 안내도 아니고 오류 문구도 아닌데, 내 눈이 그 문장을 붙잡은 순간 마음이 철렁했지. 화면에 표시된 건 “방금 전으로 이동 중”이었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택시가 집 앞에 정확히 멈추더라. 기사님은 “왔네요” 하고 웃었는데, 내 머릿속엔 계속 같은 구간의 가로등이 반복해서 떠올랐어. 지금도 가끔 그 길 지나갈 때마다, 내가 실제로 앞으로 걷고 있는 건지—아니면 내비가 반복하는 어떤 지점에서만 맴돌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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