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컴퓨터가 퇴근 후에도 내가 쓴 메일을 지우고 있었음
퇴근하고 집에 가려는 순간, 회사 메일함이 이상하게 비었습니다. 아침에 내가 보낸 회신 메일이 계속 ‘초안’처럼 남아있다가, 퇴근 전후로 묘하게 사라지더니 마지막엔 “삭제됨” 표시만 남아 있더라고요. 처음엔 실수로 내가 지운 건가 싶었는데, 당일 오전에 분명히 ‘보냄’까지 눌렀습니다.
사건은 그날 오후에 확실해졌어요. 협력사 담당자에게 견적 관련해서 답장하는 메일을 보냈는데, 상대가 “확인했습니다. 이 내용 맞나요?”라고 다시 물어본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본사 메일 기록에는 그 회신이 없었어요. 보낸 편지함을 눌러봐도 안 보이고, 검색창에 키워드를 넣어도 흔적이 없었습니다. 대신 메일이 사라진 시각대만 “삭제됨” 로그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집에서 몰래 회사 메일을 확인하기 시작했어요. 퇴근 후 9시쯤, 노트북으로 접속하면 메일이 그대로 있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매번 자정쯤 되면 내가 보낸 메일이 하나씩 지워져 있더라고요. 삭제 주체는 제 계정으로 잡혔습니다. 즉, 컴퓨터가 ‘내가 지웠다’고 처리하는데, 저는 집에서 그 시간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백업 프로그램이나 자동 정리 정책 같은 걸 의심했죠. 회사에선 오래된 메일을 정리하라고 늘 공지했으니까요. 근데 자동 정리라면 규칙이 있어야 했습니다. 같은 날짜의 다른 메일은 멀쩡한데, 유독 제가 방금 보낸 회신들만 특정 패턴으로 사라졌어요. 게다가 지워지는 방식이 이상했어요. 삭제되기 직전에는 ‘초안’으로 잠깐 변했다가, 몇 분 후에 완전히 삭제되는 느낌이었거든요.
다음 날은 더 노골적으로 확인해봤습니다. 오전에 일부러 테스트 메일을 하나 보냈어요. 내용도 일부러 눈에 띄게 길게 써두고, 제목도 특이하게 붙였죠. 그리고 퇴근 후 10시 30분에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 메일은 분명히 보낸 편지함에 있었는데, 제가 다시 확인한 순간 이미 삭제되어 있었습니다. ‘방금 전까지는 보였는데’라는 감각이 너무 생생해서, 화면을 새로고침하는 제 손이 떨렸을 정도예요.
이상함을 더 키운 건, 메일 외에 다른 흔적도 같이 사라진다는 점이었습니다. 회의 때 적어둔 메모 파일을 바탕화면에 놓아뒀는데, 밤 시간대에 한 번씩 사라지더라고요. 그런데 휴지통에는 들어가지 않아요. 그냥 파일이 “존재하지 않음”처럼 바뀌어 버립니다. 저는 메모를 클라우드 동기화 폴더에 넣어두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특정 폴더만 고장 난 것처럼 빈 폴더가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결국 보안팀에 물어봤는데, 돌아온 답은 더 소름이었어요. “계정 로그인 기록은 정상이고, 삭제 권한도 사용자 본인으로 잡힙니다. 자동 정책은 없습니다.” 그 말 들으면서 저는 제 등 뒤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제가 밤에 접속한 적이 없는데도, 삭제는 제 권한으로 처리된다고 하니까요. 그때부터 컴퓨터가 아니라 “누군가가” 제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며칠 뒤, 저는 장난처럼 행동을 바꿔봤습니다. 메일을 보낼 때마다 일부러 문장을 한 글자씩 다르게 해서, 어떤 버전이 지워지는지 확인한 거죠. 그러다 한 번은 메일을 보냈는데, 상대가 답장하기 전에 이미 제목이 수정된 것처럼 보였어요. 정확히는, ‘제목’은 그대로인데 내용 일부가 바뀌어 있었고 그 문단만 지워지더라고요. 마치 누가 제 메일을 열어보고, 필요 없는 부분만 골라 치우는 것처럼요.
그날 밤, 저는 그냥 포기할까 하다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습니다. 퇴근 후 접속하진 않았는데도, 회사 메일에 제 계정으로 “삭제됨” 로그가 찍히는 걸 봤어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삭제 타이밍이 매번 비슷했습니다. 제가 전날 야근하던 시간대, 그러니까 늘 “한 번 더 확인하고 자야지” 하고 메일함을 열던 그 시각 근처였어요. 그래서 더 못 견디겠더라고요. 내가 확인하려던 순간을, 누군가가 대신 보고 있었던 것 같아서요.
지금도 가끔 그 컴퓨터를 떠올리면, 메일이 지워지는 속도보다 더 무서운 게 있습니다. 저는 그때 이후로 ‘보낸 편지함’을 믿지 않아요. 보낸 뒤에 마음이 놓이면 그게 시작이라는 걸, 회사 컴퓨터가 조용히 보여준 셈이니까요. 퇴근 후에도 내가 한 적 없는 삭제가 남아 있을 때, 그건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누군가가 제 흔적을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으로 남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