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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하면서 이웃 초인종 누르지 말라는 안내문 본 썰

2026-10-31 08:14:11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자취 시작하고 나서 제일 먼저 겪은 게 “이웃과의 거리감”이었어요. 원래는 조용히 살고, 필요할 때만 말 걸고, 그런 식으로 평화롭게 가려 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밤 11시쯤, 집에 들어오려다 복도에서 소리가 나서 잠깐 멈췄는데, 바로 제 뒤에 있던 사람이 초인종을 막 누르더라고요. 한 번이면 말이겠지 했는데, 그분은 계속 연달아 누르면서 “여기 맞죠?!” 하고 소리까지 내는 거예요.

그날 전엔 저도 솔직히 초인종을 자주 썼던 편은 아니어도, 택배 받으려고 문 앞에 왔을 때 누를 일이 있으면 그냥 눌렀어요. ‘누르면 연락 오겠지’ 생각이었죠.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복도에 붙은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어요. 화이트보드처럼 생긴 종이 한 장이 문틈처럼 비스듬히 붙어 있었는데, 굵은 글씨로 “자취하시는 분들, 초인종 누르지 말아주세요”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자세히 보니까 이유도 길게 써놨더라고요. 밤에 누르면 경보처럼 반응하는 구조라서, 누를 때마다 집 안에서 전등이 켜지고 소리도 난다는 거예요. “사람은 잠을 자야 한다”는 말이 제일 먼저였고, 그다음에는 관리 차원의 경고처럼 “누르지 말아달라”는 요청이 이어졌어요. 그리고 밑에는 작은 글씨로 “지나가다가 한 번 눌러보는 마음도 이해하지만, 정말로 참아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 한 줄이 유난히 오래 남았어요.

바로 그날, 제가 복도 끝에서 한참 서성이다가 택배 생각이 나서 안내문을 다시 읽었죠. 아까 그분이 계속 누르다가 결국 문을 두드리듯이 똑똑 치는 소리까지 나더니, 그 집이 아니라 다른 층에서 누군가 “누구세요?” 하고 나오면서 분위기가 확 꺾였어요. 그때서야 제가 느낀 게 있었어요. 누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불편하니까 상대도 알아야지’ 이런 마음인데, 정작 당하는 사람은 ‘갑자기 잠이 깨는 기분’을 그대로 겪는다는 거더라고요.

결국 전 그날 밤 택배를 그냥 문 앞에 두게 하고, 인터폰은 안 눌렀어요. 대신 앱 알림으로 연락을 보내고, 도착 시간만 맞춰서 조용히 기다렸죠. 처음엔 ‘이렇게 하면 전달이 늦어지지 않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다들 괜찮더라고요. 물론 누가 급하면 초인종을 누를 수도 있겠죠. 그래도 저처럼 정말 사소한 일들로 습관처럼 누르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는 걸 그 안내문이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그 뒤로도 저는 종종 그 종이를 보게 됐는데, 다음 달쯤엔 안내문이 조금 바뀌어 있더라고요. 위에 적힌 문구는 그대로였는데, 밑에 추가로 “이미 누르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도 반복되는 경우에는 대응할 수 있다”는 식으로 문장이 붙어 있었어요. 솔직히 이건 좀 무섭기도 했어요. ‘이 정도면 진짜 많이 눌렀다는 뜻인가?’ 싶어서요. 그래서 저도 웬만하면 인터폰 버튼을 눈으로 확인하고 누를지 말지 고민하게 됐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건이 또 한 번 터졌죠. 어느 평일 밤에, 새로 이사 온 것 같은 남자분이 문 앞에서 휴대폰을 보면서 “여기 엘리베이터 앞 맞나” 하다가, 자기 집 찾는 길에 헷갈렸는지 옆집 초인종을 눌렀어요. 그분은 뭔가 미안한 표정이었는데, 반응이 엄청 크니까(전등 + 소리) 옆집이 바로 문을 열고 따지듯 나오는 거예요. 그때 안내문을 다시 보게 됐는데, 안내문이 딱 그 상황을 예고라도 한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그날 내내 생각했어요. ‘나도 저럴 수 있지 않나’ 하고요. 사실 자취는 혼자 사는 게 전부 같지만, 복도와 계단, 그리고 초인종 같은 공용 공간은 결국 누군가의 밤을 좌우하잖아요. 누르는 사람은 잠깐의 불편을 해결하려고 누르지만, 누르는 소리는 그 집 안의 잠을 끊어버리니까요. 그래서 전 그 이후로 정말 최소한으로만 움직이게 됐어요. 택배는 연락 먼저, 급한 일이면 대화로 해결,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버튼을 누르기. 이렇게 기준을 세우니까 마음도 좀 편하더라고요.

이웃 초인종 안내문이 처음엔 그냥 ‘누군가가 예민한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오히려 반대로 제 생활 습관을 돌아보게 됐어요. 밤에 늦게 들어오면서도, 누군가 잠들어 있을 수 있다는 걸 잊지 않게 된 거죠. 지금도 복도에서 그 종이를 보면, 누르지 말아달라기보다 “서로의 잠을 존중해달라”는 말처럼 읽혀요. 누르는 손가락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저는 그 안내문이랑 몇 번의 소란을 통해 배웠고요, 그래서 지금도 문 앞에서 한 번 더 멈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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