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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중에도 휴대폰만 보는 날

2026-10-31 19:12:11 조회 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지난달에 남자친구랑 오랜만에 제대로 데이트를 했거든요. 둘 다 평일엔 바빠서 주말에만 맞추는 편인데, 그날은 제가 “오늘은 폰 좀 내려놓고 그냥 우리 시간 갖자”라고 먼저 말해둔 상태였어요. 물론 잔소리처럼 들릴까 봐 톤은 가볍게 했고요. 그런데 그날, 제 말이 무슨 예언처럼 딱 반대로 흘러가더라고요.

점심 먹고 산책하러 가면서도 그는 계속 스마트폰을 손에서 안 놓았어요. 처음엔 “알림이 좀 떠서요”라고 하길래 저도 그냥 그러려니 했죠. 카톡이든 뭐든 중요한 일일 수도 있으니까요. 근데 진짜 문제는, 알림이 뜨는 순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아예 걸음마다 손가락이 폰 화면을 스치듯 움직였다는 거예요. 횡단보도 건널 때도, 카페 들어갈 때도요. 저는 옆에서 “여기 디저트 맛있다던데” 같은 얘기를 해도, 그는 반쯤 웃으면서 “응응”만 하고 화면을 더 봤어요.

카페에 앉자마자 더 확 와 닿았어요. 제가 메뉴를 보면서 “나는 이거랑 같이 커피 뭐가 잘 어울려?” 물어봤는데, 그는 계산할 필요도 없는 듯 폰에서 뭔가를 검색하고 있었어요. 잠깐만 봐도 되니까 괜찮다, 싶었는데 그게 한 번이 아니라 계속 반복됐거든요. 결국 제가 “혹시 지금 중요한 거야?”라고 물으니까, 그제야 고개를 들더라고요. “아니 그냥… 뭐 확인하는 거?” 하고 얼버무렸어요. 그 말이 더 마음이 묘했어요. 확인하는 게 ‘중요한지’가 아니라 ‘확인하는 습관’처럼 느껴져서요.

잠깐 대화가 끊기니까 어색해서 제가 먼저 말을 꺼냈어요. “우리 오늘 뭐 할까? 사진도 좀 찍고, 바람 쐬는 거 좋다.” 했더니 그는 “응 사진 찍자” 하면서도 바로 셀카 모드로 폰을 꺼내더라고요. 저한테 “여기서 봐, 한 번만” 하더니 사진 찍는 건 금방 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또 폰 화면을 계속 보면서 손가락으로 뭔가를 넘겼어요. 찍고 바로 확인을 하는 건 당연한 거긴 한데, 그 시간이 길어지니까 제가 마치 ‘배경’처럼 느껴졌어요. 말로 하자면 웃길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진짜로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오후에 영화관 가는 길에 버스 기다리는데, 저는 창밖을 보다가 한 번 툭 물었어요. “근데 너 요즘 좀 그래? 나만 그런 거야?” 그러자 그는 “아니, 나 원래 카톡을 좀 자주 봐”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자주 보는 건 이해해. 근데 우리 같이 있는 동안에도 매번이냐는 거지”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그가 잠깐 멈칫하더니 “미안. 근데 나도 끊으려고 하는데 자꾸 손이 가” 같은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솔직히 그 말은 미안하다는 건지 변명인지 헷갈릴 정도로 밋밋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는 결국 카톡을 봐도 괜찮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폰을 보는 사람’이 문제라기보다, ‘함께 있는 사람을 의식하는 방식’이 문제니까요. 그래서 남자친구가 또 화면을 보길래, 이번엔 제가 먼저 말 대신 행동으로 해봤어요. “나 오늘 피곤한데, 너랑 얘기 좀 더 하고 싶다. 폰 내려놔줄 수 있어?” 이렇게요. 그는 “지금 누구랑 얘기 중이야?”라고 묻더니, 잠시 후에 “아, 아무도 아니야. 그냥… 영상 넘기고 있었어” 하고 고개를 들었어요. 그 순간 저는 속으로 ‘아, 그래서였구나’ 싶었죠. 중요한 연락이 아니라 그냥 습관이었으니까요.

그때부터는 둘이 대화가 조금 살아났어요. 제가 “그럼 다음부터는 약속 정하자. 밥 먹을 때는 폰 넣기, 영화 전에는 연락 없으면 무음” 이런 식으로 말하니까 그는 “그래, 나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라고 했어요. 근데 웃긴 게, 그 약속을 들을 때는 마음이 조금 편했는데도 여운이 남더라고요. 마치 늦게 알아챈 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처음엔 너무 당연하게 ‘제가 옆에 있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여준 게 마음에 걸려서요.

집에 와서 제가 먼저 잘 자라고 메시지를 보냈거든요. “오늘은 폰을 안 봐서 좋았어. 다음 데이트도 우리 얘기 많이 하자”라고요. 그러자 그는 “미안. 다음엔 진짜 집중할게. 너랑 있을 때는 원래 그래야 하는데 내가 못 했네”라고 답을 했어요. 그 말 자체는 진심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저는 가끔 생각하게 돼요. 진심이 늦게 도착하면, 그 사이의 공백은 누가 메워주냐고요. 폰을 내려놓는 건 쉬워도, 상대가 ‘지금은 나보다 화면이 더 중요하구나’라고 느낀 시간은 그냥 지나가잖아요.

그래서 아직도 완전히 마음이 가라앉은 건 아니에요. 다만 확실한 건, 다음에 또 데이트에서 같은 패턴이 보이면 “아까 그랬던 것처럼”이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표정이나 말투가 달라질 것 같다는 거예요. 사랑이란 게 매번 싸우자는 뜻은 아니니까, 저는 그저 제 시간을 존중받고 싶을 뿐이에요. 그리고 언젠가 그가 정말로, 데이트 중에는 폰이 아니라 저를 먼저 찾는 날이 오면… 그때야 비로소 오늘의 여운이 따뜻하게 정리될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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