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개팅에 늦게 도착한 이유가 배달 때문
소개팅 장소에 도착했는데 이미 상대방은 웨이터에게 주문서를 다시 쓰라고 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 순간, 입에서 말 대신 ‘죄송합니다, 배달이 늦어서…’라는 말만 맴돌았다. 이해해 달라기보다 내 안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당혹감과 민망함에 그냥 웃음만 나왔다.
왜냐면 그날 아침부터 좀 이상했었다. 평소 같았으면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왔을 텐데, 배달앱을 켜자마자 갑자기 ‘30분 예상’이라는 문구가 떠버린 거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뭐야 이게?’ 하면서 배냇머리처럼 멍해졌다.
첫 소개팅인데 배달 음식을 시키는 것도 웃기지만, 그걸 늦게 받아서 결국 소개팅에 지각이라니. 이거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현실 맞나 싶었다. 배달 기사님 위치를 실시간으로 쳐다보면서 마음이 조마조마, 손에 땀까지 났다.
결국 배달 음식 도착 시간이 소개팅 시작 시간과 맞물려서 전화 한 통을 했다. “죄송한데, 제가 좀 늦을 것 같아요.” 이 한마디가 얼마나 힘들었던지. 그럼 상대는 어떤 반응일까, 머릿속에서 온갖 시나리오가 돌았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대방은 나를 보고 있긴 했는데 분위기가 어색했다. ‘배달 때문에 늦었다’고 말했을 때 상대가 웃으면서 “아, 그럴 수도 있죠”라고 하긴 했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 한쪽이 무거웠다. 첫인상이 잘 안 좋아질까봐 걱정도 되고.
게다가 내 앞에 놓인 음식은 이미 살짝 식어 있었다. ‘첫 소개팅인데 왜 배달 음식이냐’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서로에게 어색함을 풀기 위해 웃으면서 음식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게 다행이었다.
그동안 소개팅 자리에서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보통은 서로 좋은 말만 하고 분위기 맞추면서 식사하는데, 내 경우는 30분 동안 배달 지연이라는 ‘복선’을 안고 시작한 셈이다. 그런데 웬걸, 오히려 이야깃거리가 되면서 자연스러워졌다.
상대가 “나도 배달 늦어서 짜증난 적 많아요. 특히 비 오는 날은 진짜 무슨 일이 있어도 늦더라고요.”라며 공감해 줘서 마음이 한결 풀렸다. 이 작은 공감 한 줄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다시금 느꼈다.
결국 그날 소개팅은 배달 지연이라는 핸디캡 덕분에 오히려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서로의 진솔한 면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된 셈이다. 그리고 나중에 생각해 보면, 배달 때문에 늦은 게 최고의 아이스브레이커였던 것 같다.
소개팅 자리에서 ‘첫 만남에 늦으면 끝’이라는 편견은 이제 좀 버려도 되지 않을까? 가끔은 배달도 우리의 인생에 한 조각 재미와 긴장감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다음부터는 꼭 식사 시간을 넉넉히 잡으려 다짐했다. 그래야 배달 사고는 다시 없을 테니까.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배달 시간보다,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웃음으로 넘기느냐 아닐까? 다음 소개팅에는 직접 요리라도 해야겠다 싶던 그날 밤, 나는 그렇게 피식 웃으며 집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