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 냉장고 관리 실패로 생긴 참사
자취생 냉장고 관리 실패로 생긴 참사
몇 주 전,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무슨 실험실에 온 줄 알았다. 이전에 사둔 우유가 어느새 녹색 이끼로 변신했고, 채소들은 잔뜩 물러서 마치 ‘여기서 휴가 중’인 모습이었다. 그때부터 냉장고 안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이게 시작일 줄 누가 알았겠나.
사실 자취생 냉장고 관리는 늘 미뤄졌다.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고, 귀찮음은 더 컸다. 그런데 이 ‘미뤄둔 관리’가 결국 참사를 불러온 것이다. 우유 한 통을 비우고 새 걸 사는 게 뭐 어렵겠냐 싶었는데,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나는 향은 점점 미스터리 냄새로 바뀌었다.
특히 문제였던 건 채소칸이었다. 냉장고 맨 아래 칸에 있던 양배추는 마치 외계 생명체처럼 변해 있었고, 파프리카는 눅눅하게 썩어 문지방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들이 모여서 만든 냄새는 반경 2미터를 감지 범위로 삼을 정도였고, 그날 저녁 내 식욕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더 웃긴 건, 그 참사 속에서 발견한 것은 ‘내가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음식을 찾는 재미였다. 예를 들면, 작년 겨울에 산 듯한 초콜릿 바라든가, 뚜껑이 닫히지 않은 소스통, 심지어는 유통기한 지난 김치까지! 이걸로 한 번 웃고 나니 또 한숨이 나왔다.
청소를 시작했는데, 손목까지 닿는 곳에서 점액질 감촉이 느껴지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다음 날은 냉장고 청소 덕분에 손이 따가워서 며칠간 손을 제대로 못 쓸 지경이 됐다. “왜 이렇게 안 치웠냐”는 내 자신과의 싸움도 있었고, ‘자취생이라면 이런 건 기본 아니냐’는 댓글도 이미 마음속에서 들려왔다.
결국, 냉장고를 싹 비우고 다시 정리하는 데 2시간 넘게 걸렸다. 세제 냄새가 코를 찌르면서 “아, 이래서 청소가 중요했구나” 싶었지만, 이미 늦은 기분이었다. 다음날부터는 장 볼 때마다 ‘이 음식은 이번 주 안에 무조건 먹기’라는 각오를 다지게 됐다.
근데, 이 참사가 준 교훈이 있다면 ‘냉장고는 그냥 음식 넣는 창고가 아니라 관리하는 생명체’라는 거다. 적당히 뒀다가는 내 인생까지 썩을 수 있다. 물론, 그 뒤로도 깜박해서 썩히긴 했지만 뭐, 인간이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온다. 자취생 냉장고 관리 실패로 생긴 참사였지만, 그 덕분에 조금은 더 성숙해진 느낌이다. 그래도 다음에는 꼭 좀 더 빨리 치워야겠다... 다음 참사는 좀 안 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