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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데이트 때 냉장고 비워서 배달 시킨 이유

2026-05-18 10:41:19 조회 16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첫 데이트 날, 나는 의외의 결정을 내렸다. 냉장고를 텅 비우기로. 보통은 맛있는 음식도 직접 해보고, 혹은 집에 뭐라도 좀 사 둔 다음에 데이트 준비를 하지 않나? 근데 나는 왜 그랬냐면, 아무리 생각해도 첫 만남에 '내가 요리 잘한다!' 어필보다는 편안한 대화가 더 중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전날 밤, 냉장고 안에 들어있던 거의 모든 식재료들을 친구들에게 나눠 줘버렸다. 고기도 없고 채소도 없고, 뭐 하나 집에 남아 있는 게 없었다. 그야말로 완전한 냉장고 공백. 이걸 누가 보게 되면 '아니 이 사람 아무 준비도 안 했네?' 할 수도 있는데, 나는 거기에 아주 심오한 전략이 숨어 있었다.

첫 데이트, 보통은 긴장해서 식사 준비에 정신이 팔리기 마련이다. 근데 나처럼 요리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사람은 뭐라도 직접 만들려고 하다가 결국 자폭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차라리 배달음식을 시키자! 라고 마음먹은 거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대박이었다.

데이트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배달 앱을 미리 켜놓고,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 종류를 몰라서 가볍게 물어봤다. 그녀는 치킨을 좋아한다길래, '그럼 뭐 치킨, 피자 같은 거 시키자!' 했는데, 알고 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메뉴 취향을 갖고 있더라. 그래서 뭐든 다 시켜볼 수 있는 선택지가 필요했다.

냉장고가 텅 비어 있으니, 사실 그냥 막 시켜도 된다는 마음의 자유가 생겼다. 냉장고에 채소 몇 개라도 있으면 왠지 그걸 조합해 뭐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거든. 그런데 아무 것도 없으니 그냥 배달앱에서 가장 끌리는 메뉴를 골라 시켰다. 이게 얼마나 편한지 몰랐다.

음식이 도착하자마자, 우린 서로의 취향과 입맛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 이런 종류의 소스를 좋아하는구나", 나는 "이 고기 요리는 처음 먹어보네" 하면서 자연스러운 대화가 흘러갔다. 직접 만든 음식 냄새에 정신 팔리지 않아도 되고, 음식 맛에 집중하다 보니 대화할 시간과 에너지가 훨씬 남았다.

그렇게 배달 음식으로 시작한 우리의 첫 식사는 예상 외로 대성공이었다. 게다가 냉장고가 텅 비어있다는 사실조차 얘기하지 않았다. 나중에 친구들이 '너 왜 냉장고 다 비워놓고 데이트했냐?'고 물었을 때, 난 "그게 내만의 편안한 전략"이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첫 데이트 때 냉장고 비워서 배달 시킨 이유는 단순했다. 긴장되는 순간에 요리에 신경 쓰느라 대화가 어색해지는 게 싫었고, 음식 때문에 부담 갖고 싶지 않았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건, 음식의 종류나 직접 만든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거다. 그리고 편한 마음으로 음식을 즐기니 우리 사이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냉장고가 비어 있는 게 오히려 첫 데이트의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해줬던 셈이다.

나중에 그녀가 그날의 데이트를 기억할 때, 내 요리실력보다 '냉장고가 텅 비어서 배달 음식을 시켰던 이상한 남자'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그게 제일 최선이었다. 어쩌면 첫 데이트는 어설픈 요리보다 이런 소소한 용기가 더 멋질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음엔 냉장고 좀 채워놓아야지, 그럼 또 다른 이야기거리가 생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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