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전날 가족들과 벌어진 이상한 흥정
“이거 2만 원 줄 테니까 이번 명절 차례상 음식 일부만 우리 집에서 준비해 줘라.” 명절 전날, 갑자기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는 곧바로 “뭐가 2만 원이라고? 음식 준비가 간단한 줄 아냐?” 하시면서 불같이 화를 내셨다.
사실 우리 가족은 매년 명절 때마다 음식 준비 때문에 조금씩 티격태격하곤 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차례상에 올라갈 전, 나물, 생선 등등 수십 가지 음식 준비를 놓고 열띤 흥정이 시작된 것이다. 아버지는 “나도 바쁘니까 좀 도와달라”는 심정이었고, 엄마는 “내가 한참 준비하는데 뭘 그렇게 쉽게 생각하냐”고 맞섰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가 제시한 2만 원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금액인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작년에 동네 형님들이랑 이런 비슷한 거래를 했더라”며 자신있게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동네 형님들이 뭔데, 우리 집 음식과 비교하냐”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 와중에 우리 누나가 끼어들었다. “나도 요즘 바빠서 명절 음식 준비는 좀 피해가고 싶다”면서, “대신 내가 설거지랑 장보기 담당할 테니 3만 원 받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러자 엄마가 “그럼 설거지는 무한 근무라서 3만 원으론 모자라지”라고 흥정을 이어갔다.
우리 집 명절 음식 준비가 이렇게 ‘시장 물가’처럼 거래가 되는 모습에 아버지는 살짝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내가 “그럼 아버지가 직접 부엌에 서서 한 접시라도 만들어 보시라”고 하자, 갑자기 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사이 아빠와 엄마가 음식을 맡는 기준을 두고 열변을 토하는 가운데, 나는 슬쩍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마켓에서 음식 재료 가격을 검색했다. 사실 다들 가격 감각이 조금씩 달라서 협상이 쉽지 않았다. 엄마는 재료비도, 조리 시간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 우리 아버지가 갑자기 “그럼 우리 가족끼리 진짜 입찰을 해 보자!”고 제안했다. 모두들 멍해지긴 했지만, 웃으면서 한 번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래서 음식 종류별로 누가 어느 정도 비용과 시간을 들여 준비할 수 있는지 ‘경매’가 시작됐다.
의외로 누나가 의욕적으로 참여해 “나는 손이 빠르니 나물과 김치 담당, 3만 원 제안!” 했고, 나는 “나도 나름 요리 할 줄 안다며 전 몇 접시 만들게, 4만 원!”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묵묵히 차례상을 정리하며 “그래, 이번엔 색다른 명절이 되겠네”라고 웃으셨다.
결국 우리 집 명절 음식 준비는 가족끼리 벌어진 이상한 흥정 덕분에 조금 더 투명하고, 또 웃음 가득한 시간이 되었다. 물론 이날 거래 가격이 꼭 정돈된 건 아니지만,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맡은 일을 잘 해냈다.
명절 전날, 평소에는 볼 수 없던 가족들의 ‘시장 터’ 같은 모습. 누가 봐도 이상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덕분에 고단한 명절 준비가 한결 재밌게 느껴졌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나누는 이런 소소한 흥정도 명절의 또 다른 의미인 것 같았다. 아, 내년 명절에는 또 어떤 거래가 벌어질까? 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