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시작 후 생긴 냉장고 저녁 파티 썰
자취 시작하고 처음 맞이한 어느 저녁, 냉장고 안에 그리 대단한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보통은 집 나서기 전 냉장고 가득 채워둔 엄마표 반찬과 신선한 재료들 생각에 흐뭇했는데, 이젠 내가 다 사야 하고, 또 다 먹어야 한다는 현실이 다가오더라.
그날도 피곤한 몸 이끌고 장 보는 것도 귀찮아 냉장고 문 열었는데, 양파 하나, 당근 한 개, 계란 몇 개, 그리고 그나마 먹을 만한 게 소스 종류 몇 개뿐이었다. ‘뭐라도 만들어야지’ 마음을 다잡으며 냉장고에 쌓인 재료들을 하나씩 꺼냈다. 그때부터 내 인생 첫 냉장고 저녁 파티가 시작됐다.
일단 양파와 당근을 싸악 썰어줬다. 손가락 다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평생 엄마가 해주던 채소 손질이 이토록 귀찮고 시간이 걸릴 줄 누가 알았겠냐? 그리고 찾아낸 계란으로는 계란말이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사실 계란말이나 재료가 별로 없어도 뭐든 빨리 뚝딱 만드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계란 3개를 딱 깨트리려는데 한 개가 노른자가 터져서 흰자와 섞이는 바람에 딱 계란말이 반죽이 이상해졌다. 이걸로 계란말이 만들면 모양이 어떻게 나올까 고민하다가 그냥 ‘웃기면 웃기지 뭐’ 하고ㅋㅋ 그 상태로 후라이팬에 부었다.
프라이팬에 부은 뒤 은근히 구워지는데, 냄새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양파랑 당근은 소금이랑 후추 조금 뿌리고 팬에 구워서 야채 볶음 완성! 그리고 그릇에 일단 담아놓고 보니 이게 웬걸, 냉장고의 거의 재료들로 한 상 차림이 완성되어 있었다.
혼자 찬찬히 앉아 먹으면서 가끔 멍하니 ‘처음 자취하는 내가 이걸로 저녁 파티라니…’ 하고 웃음이 나왔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처럼 정성 가득한 건 아니지만, 내 손으로 만든 한 끼라는 게 뿌듯했다. 그리고 뭐랄까, 냉장고 파티라는 게 현실은 이렇게 허술하지만 나름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게 묘했다.
튀김도 없고 고기도 없지만, 야채 볶음과 계란말이만으로 나름의 냉장고 저녁 파티라고 생각하니 혼자라도 괜찮았다. 이왕 시작한 자취 생활, 이렇게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나가며 성장하는 중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번엔 좀 더 멋진 음식 시도해봐야지라는 다짐도 하면서.
사실 그날 이후로도 냉장고 저녁 파티는 종종 이어졌다. 냉파(냉장고 파먹기) 마스터가 되기 전까지는 늘 비슷비슷했지만, 그때그때 재료로 만드는 요리들이 소소한 재미로 남았다. 맛있든 맛없든 내 손으로 만들어 먹는다는 게 솔직히 뿌듯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허술한 냉장고 한 상이 자취 생활 첫 장면을 대표하는 추억이 됐다. 누구나 처음은 미숙하지만, 그 작은 시도들이 쌓여서 조금씩 익숙해지니까 말이다. 그리고 다음번엔 꼭 거창한 파티 대신, 맛있는 음식을 사진 찍어 올릴 날도 올 거라 믿으며.
자취 시작 후 생긴 냉장고 저녁 파티 썰, 이렇게 허술하지만 그래서 더 빛났던 나만의 첫 저녁이었다. 가끔 그때 사진 보면 ‘참 소박하다’고 웃음이 절로 난다. 어쩌면 이게 자취생의 진짜 첫 파티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도 냉장고 문을 열고 또 하나의 파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