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가족과 차 타고 떠난 주말 여행 에피소드
제 주말이 갑자기 ‘가족 동반 자유여행’으로 바뀐 날이 있었어요. 원래는 친구랑 둘이 드라이브 겸 밥만 먹고 오자, 그 정도였는데 문자 한 통이 오더니 분위기가 통째로 바뀌더라고요. “이번 주말에 우리 가족도 같이 가는 거야! 너도 오면 완전 편해!”라고 하길래, 저는 ‘편해’가 무슨 뜻인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차에 타자마자 깨달았어요. 친구는 운전석 옆에서 짐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뒤좌석에는 그의 어머니가 이미 간식과 휴지와 물을 세트로 깔아두셨어요. 그게 ‘준비된 사람의 패키지’라면, 저는 ‘아직 조립 전 부품’ 느낌이랄까요. 아버지는 네비를 켜놓고도 계속 “이 길이 맞지?”를 반복하셨고, 저는 창밖만 보면서 계속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고개 끄덕이는 게 제 임무가 됐어요.
첫 목적지는 카페였는데, 여기서부터 일정이 제 의지와는 별개로 굴러가기 시작했어요. 친구 어머니가 “커피는 중요한 거니까, 근처에 주차 편한 데로!” 하시고, 아버지는 “차는 깔끔해야지. 손잡이도 닦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앉아서 메뉴 고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메뉴를 고르는 동안에도 가족회의가 열렸습니다. 결국 제가 주문한 건 ‘가장 무난한 메뉴’였는데, 그 무난함이 오히려 칭찬으로 이어지며 제가 성공한 사람처럼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카페에서 나온 다음엔 본격적으로 ‘차로 스케줄’이 시작됐습니다. 길을 가는데 친구가 계속 “이 다음에 풍경 좋은 데 들러!”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버지가 계속 “여기서 내려서 산책할까?”를 던지셨어요. 산책 코스는 늘 즉흥이었고, 즉흥의 기준은 항상 어머니의 눈빛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나 이 나무 냄새 좋아” 같은 말을 하시며 제게도 손짓을 했고, 저는 결국 사진 찍는 사람으로 전환됐죠. 사람은 사진 찍어주는 순간부터 관계가 한 단계 더 가까워진다는 걸 그날 처음 배웠습니다.
점심은 또 다른 전쟁이었어요. 친구가 “근처 맛집 있어, 거기 가자”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맛집은 맛집인데, 가족이 먹기 편한 데로 가야지” 하셔서 후보가 세 개가 됐거든요. 그 와중에 제가 “저는 뭐든 잘 먹어요!”를 한 번 말했는데, 이 말이 저주처럼 걸렸습니다. 그다음부터 메뉴판이 ‘제가 먹기 편한 것’만 골라지더라고요. 오히려 친구가 “야, 너 진짜 잘 먹지?”라고 물어보며 웃었는데, 저는 속으로 ‘잘 먹는 게 아니라 그냥 선택권이 없었던 거야…’라고 생각했죠.
식사 후에는 바닷가로 이동했는데, 여기서 가장 웃겼던 사건이 터졌습니다. 친구 어머니가 차에서 나올 때 “여기 바람 좀 세다”라고 하시더니, 갑자기 제게 바람막이를 건네주셨어요. 저는 당황해서 “괜찮아요”라고 했는데, 어머니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괜찮은 사람은 바람막이 안 챙겨요. 너는 괜찮아 보이지만, 괜찮은 건 아니잖아.” 그 한 마디가 너무 정확해서 저는 그냥 받아 입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괜찮은 척하는 사람에서 ‘괜찮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되었어요.
바닷가에서는 다들 역할이 분명해졌습니다. 아버지는 조개 찾는 타입, 어머니는 돗자리 정리하는 타입, 친구는 사진 찍는 타입, 그리고 저는 바람 때문에 계속 날아다니는 것들을 붙잡는 타입이었어요. 모자를 잡고, 휴지를 잡고, 물병도 잡고… 제가 잡는 동안 가족들은 “야, 너 손재주 좋다”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손재주가 아니라 바람의 피해자였는데요. 그러다 친구가 갑자기 제게 “너 이런 데 오면 좀 어때?”라고 묻는 겁니다. 저는 그 순간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가족 행사에 편입된 사람’이어서 대충 웃으며 “재밌어요!”만 반복했습니다.
해 질 무렵 돌아오는 길에는 분위기가 살짝 감성 모드로 바뀌었어요. 어머니가 창밖을 보며 “이때쯤 오면 딱 좋지”라고 말하셨고, 아버지는 “내가 운전 잘했지?”라고 자랑을 했고, 친구는 라디오를 적당히 낮춰서 분위기를 맞췄죠. 저는 그냥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조용함이 편했습니다. 내가 원래 원했던 드라이브는 ‘둘만의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가족의 리듬에 섞여 있더라고요. 그 리듬은 시끄럽지 않았고, 오히려 묘하게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친구가 뒷좌석에서 무심하게 말했습니다. “너 덕분에 이번 여행 편했어. 다음에도 같이 가자.” 저는 웃으며 “그래, 다음엔 내가 간식도 준비할게”라고 했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제가 지금 약속한 건 여행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가족 이동 시스템’에 들어가는 거라는 걸요. 그래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다음 주말에도 또 누군가가 “편해”라고 말한다면, 저는 아마 또 준비된 사람이 되겠죠. 물론 이번엔 바람막이부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