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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에서 혼자 보내는 첫 명절 느낌

2026-06-04 05:41:12 조회 9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제 자취방에서 혼자 보내는 첫 명절은, 솔직히 “이게 명절인가” 싶을 만큼 조용하게 시작됐어요. 아침에 알람을 맞춰놨는데도 눈 뜨자마자 들리는 건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랑 멀리서 들려오는 택배 차 소리뿐이더라고요. 티브이는 거실에 있는 줄 알았는데, 제 책상 위에는 리모컨이 아니라 충전 케이블이 누워 있고요. 그냥… 시작부터 좀 이상했어요.

그래도 명절이니까 할 건 정해져 있잖아요. 떡국 끓이고, 나물 조금 만들고, 사진은 찍어서 “나도 명절 보내는 중” 인증할 준비까지. 문제는 제가 장을 본 건 “일단 먹을 수 있는 것” 기준이었다는 거예요. 떡국 떡은 한 봉지, 사골은 한 팩, 그리고 나물은… 어쩐지 포장지가 너무 그럴듯한데 유통기한이 애매하게 길어요.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다가, 나중에 그게 제 멘탈을 공격하는 포인트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점심 즈음에 떡국을 끓이는데, 저는 물을 적당히 넣겠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근데 자취생의 “적당히”는 항상 우주 평균을 배신하더라고요. 물을 조금만 넣었더니 떡이 불면서 국이 금세 되직해지고, 저는 당황해서 계란을 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어요. 결국 계란을 넣긴 넣었는데, 국물이 거의 떡볶이 소스처럼 보여서 한 입 먹고 나서야 깨달았죠. “아, 이건 떡국이 아니라 떡국 컨셉의 무언가구나.”

오후에는 차례상 비슷하게 차려보려다가 또 좌절했어요. 원래는 밥그릇 하나에 국 한 그릇, 그리고 간단한 반찬 몇 개면 되는데, 제 반찬들은 전부 컵에 담겨서 “개봉 후 바로 드세요”라고 써 있잖아요. 컵 반찬을 상 위에 올리려니 너무 편의점 같고, 그렇다고 세상 다한 것처럼 접시에 옮기자니 설거지가 또 생기고요. 결국 저는 상을 차렸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로 ‘정리’만 했습니다. 정리된 건 느낌인데, 차례상은 아니었습니다.

저녁 되니까 명절 감성이 슬쩍 오긴 오더라고요. 복도 쪽에서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리고, 배달 기사님이 “명절이라 손님 많으시네요!” 하면서 웃고 지나가고, 그 순간만큼은 제 자취방도 뭔가 특별한 날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급하게 사진을 찍었죠. 근데 사진으로 보니까 분위기가 딱 하나예요. “혼자 사는 사람의 성실함”“남은 음식의 진지함”. 그게 무슨 감성이냐 싶어서 한참을 웃다가, 결국 사진은 단톡방에만 올리고 지웠습니다.

밤에는 가족들한테 전화가 오는데, 통화할 때마다 마음이 살짝 철렁해요. “잘 지내?” 같은 말이 당연한데도, 그 당연함이 멀리서 오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저는 “네, 뭐… 떡국 맛있게 먹었어요”라고 말했는데, 사실 그 맛있다는 말이 “살아남았다”는 뜻에 가까웠어요. 엄마는 “사진 좀 보내” 하시는데, 저는 또 생각하죠. 지금 제 상은 사진 찍기엔 너무 진지하고, 먹기엔 너무 애매하다는 걸요.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나물에서 시작됐습니다. 저는 나물을 ‘아, 이거 새로 산 거니까 맛있겠지’ 하고 접시에 담았는데, 한 입 먹고 바로 알았어요. 유통기한이 애매하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다행히 대단히 위험한 건 아니었지만, 맛이… 솔직히 “정직하게 실패한 맛”이었어요. 그 순간부터 저는 부엌에서 인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냉장고 앞에서 협상하는 사람이 돼버렸어요. 결국 남긴 건 버렸고, 저는 쓰레기 봉투를 묶으면서 혼자 ‘명절의 무게’를 체감했습니다.

그래도 자취방의 명절은 끝나기 전까지는 계속 굴러가잖아요. 밤 11시쯤, 저는 유튜브에서 명절 분위기 브이로그를 틀어놓고 라면을 끓였어요. “그래도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라면도 계란도 추가하고요. 근데 라면 끓는 소리를 들으면서 갑자기 느꼈어요. 가족이랑 같이 있는 명절이 따뜻한 건 맞는데, 혼자 있는 명절도 나름의 방식으로 따뜻해질 수 있더라고요. 완전한 온도는 아니어도, 내 손으로 계속 불을 지피면 되니까요.

마지막으로, 잠들기 전에 택배 상자 하나를 정리하면서 피식 웃었어요. 아침에 배송 온 과자 봉투가 그대로 침대 옆에 있었거든요. 처음엔 “내 명절 준비 이렇게 했나…” 싶다가도, 생각해보면 누가 뭐래도 제 하루는 제 방식으로 꽉 채워졌더라고요. 내일은 아마 다시 평일처럼 시작하겠지만, 오늘은 어쨌든 제가 제 자신에게 “명절 잘 보냈다”고 말해줄 수 있는 하루였어요. 내년엔 떡국이 국답게 되기를… 그게 제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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