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자취방에 보낸 즉석 음식 시식 후기
엄마가 오늘도 어김없이 자취방에 소포를 던져놓고 가셨어요. 문 앞에 쌓인 종이박스를 열어보니 “즉석 음식 시식 후기”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진짜로 엄마가 만든 즉석 음식들이 비닐봉지에 가지런히 들어있더라고요. 저 보라고…가 아니라 “너 지금 혼자 먹지? 이거 먹어보고 내 말 맞는지 확인해” 느낌이랄까요.
일단 저는 자취 3년차인데, 엄마표는 항상 맛있어서 문제예요. 문제라기보다 부담이랄까. 엄마가 보낸 즉석 음식은 종류가 몇 개 안 되는데, 하나하나에 설명이 길어요. “전자레인지 2분” 옆에 “너 그거 다 안 익혀서 먹는 거 알지?” 같은 주석이 끼어 있고, 스티커에는 “뚜껑 꼭 열어”가 아니라 “뚜껑 열기, 알겠지?”라고 적혀 있었어요.
첫 번째는 즉석 라면 비스무리한 건데, 라면이라기보단 엄마가 ‘라면을 흉내 낸 무언가’를 만들어주신 느낌. 봉지 뜯으니까 분말이 2종류로 나뉘어 있더라고요. 그냥 끓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엄마가 쓴 종이에 “물 붓고 끓이다가 분말 1 넣고 한번 휘휘, 그리고 마지막에 분말 2는 감정으로 넣어라”라고 적혀 있어서… 감정이 뭔지 열심히 검색하다가 결국 설명서대로 넣었습니다.
두 번째는 즉석 떡볶이. 떡볶이 소스랑 떡이 따로 담겨 있어요. 전자레인지 돌리면 된다는 건 알겠는데, 문제는 엄마가 소스에 “설탕은 절대 추가하지 말기. 너 단 거 좋아하지만 그건 습관이야”라고 써놨다는 거. 저는 단 거 좋아해요. 좋아하는데, 엄마가 제 취향을 습관으로 규정하니까 그 순간부터 제 혀가 반성 모드로 들어가더라고요.
세 번째는 미역국 비슷한 즉석국. “물 조금만 넣고 끓여”라고 되어 있는데 물을 조금만 넣는 기준이 엄마랑 저랑 다르잖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적당히”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충 감으로 맞춰왔고, 엄마는 “적당히”를 과학처럼 관리하시는 분이라서, 저는 조리 시작 전에 한참이나 그 종이를 다시 읽었어요. 그래도 결국엔 물을 조금 넣고 끓였는데, 국이 생각보다 진해서 ‘엄마… 나 지금 국 맛에 감정 이입하고 있네’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제가 제일 당황한 건 바로 “계란찜 완성용”이었어요. 이게 진짜 즉석 맞긴 한데, 설명이 너무 디테일해서 웃겼어요. “계란은 2개. 너 3개 넣을 생각 있지? 그 생각 하면 망한다.”라고 적혀 있어서, 저는 그 순간 계란이 몇 개 들어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는데 이미 마음이 망하기 직전이었습니다. 결국 2개 넣고 물 맞추고 전자레인지 돌리니까, 냄새가 엄청 안정적이더라고요. 안정적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맛’보다 ‘안심’이 먼저 와요.
시식 타임은 거의 실험처럼 흘러갔어요. 한 접시씩 먹으면서 “이게 내가 예전에 엄마한테 대충 먹는다고 혼났던 그 맛이랑 똑같나?”를 비교했거든요. 그리고 비교 결과는… 대부분 엄마 승리였습니다. 특히 떡볶이는 제가 약간 싱겁게 느껴졌는데, 그때 바로 엄마 종이에 적힌 문장이 떠오르더라고요. “싱거우면 소스가 덜 익은 거야. 네 전자레인지 시간은 늘 짧아.” 네, 인정합니다. 제 전자레인지 시간은 늘 짧아요. 제 삶도 늘 짧고요.
문제는 여기서부터예요. 엄마가 소포에 “시식 후기”라고 붙여둔 이유가 그냥 맛평가가 아니더라고요. 각 음식마다 작은 쪽지가 하나씩 딸려 있었는데, 쪽지에 “먹고 나서 댓글 달아라”가 아니라 “먹고 나서 솔직히 말해. 다음에는 뭘 더 보낼지 결정할 거니까.”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저는 자취하면서도 엄마의 평가 시스템을 피할 수가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녁 먹는 척하면서 엄마한테 사진을 보내고, 최대한 예의 있게 칭찬을 섞어서 답장을 했어요. “라면 비스무리한 거… 국물 진짜 엄마 스타일이네요. 떡볶이도 맛있어요. 계란찜은 제가 함부로 계란 더 넣을 뻔했어요.” 이렇게요. 엄마는 아마 제 말투가 진실인지 이미 알고 계신 듯 바로 “잘했어” 한 줄 보내시더니, 다음 소포 예고를 슬쩍 던지셨습니다. “다음엔 너가 자꾸 남기는 거, 그거 해결해주는 거 보낼게.”
결론적으로 저는 오늘 자취방에서 맛있게 배 터지게 먹고, 엄마의 과학 같은 조리 지침에 다시 한 번 굴복했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배웠죠. 엄마가 보내는 즉석 음식은 맛도 맛인데, 결국 집에 대한 마음까지 같이 데워서 보내는 거라는 거요. 그러니까 이게 진짜 후기 맞네요. 엄마 음식 시식 후기는 ‘다음 소포를 기대하게 된다’… 이게 제일 솔직한 평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