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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 시작한 지 열흘 만에 라면 끓이다 벌어진 일

2026-06-10 15:41:20 조회 8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자취 시작한 지 열흘 만에 라면 끓이다 벌어진 일. 진짜로 “자취생은 혼자다” 이런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 처음엔 다 설렜지. ‘드디어 내 공간, 내 라면, 내 인생’ 같은 거. 근데 문제는 열흘 만에 내 인생이 아니라 내 주방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날은 퇴근하고 와서 배가 고파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라면부터 끓이려고 했어. 물은 냄비에 적당히 넣고,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기다리면 되는 그 단순한 루틴. 근데 내가 자취 열흘 동안 쌓은 지식이랄 게 “수저는 있는데 젓가락이 없더라” 이런 수준이잖아. 그래서 조리도 대충. 설탕도 없으니 맛은 대충일 거고, 시간도 대충일 거고, 인생도 대충일 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보다 더 대충이 아니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니까 당연히 면을 넣어야지 하고 면을 들었는데, 여기서 첫 번째 오류. 내 라면은 컵라면이 아니라 봉지라면이었고, 그런데 나는 그걸 ‘봉지 뜯고 넣으면 끝’이라고 착각했어. 왜냐면 뜯을 때 면이 한 번에 쫘악 펴지는 게 너무 당연해 보였거든. 근데 손이 미끄러졌는지 면이 한 덩어리로 냄비 위에 착 붙더니… 순식간에 국물이 튀는 소리가 들렸어. “어? 뭐지?” 싶을 새도 없이 손가락에 뜨거운 기운이 확 올라오더라.

그래서 나는 본능적으로 “어어어, 멈춰! 멈추면 돼!”라고 외쳤는데, 이상하게도 멈추는 게 아니라 더 끓고 있더라. 라면이 끓으면 뚜껑을 안 덮어야 한다는 걸 예전에 어디서 들었는데, 그 말이 머릿속에서 반대로 재생된 거야. 그래서 냄비 위를 손으로 막은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있는 자세가 너무 급해서 이상한 각도로 냄비를 잡게 됐고, 결국 국물이 옆으로 한 줄기씩 흐르기 시작했어. 바닥이 미끄러워질 정도로!

그때부터 진짜 자취의 현실이 시작됐지. “바닥 닦으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문제는 휴지통 위치가 애매하고, 키친타월은 첫날에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안 나고, 물티슈는 분명히 샀는데 왜 안 보이지?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급하게 서랍을 열었더니 검정 봉투가 나오고, 그걸 휴지인 줄 알고 쓱쓱 닦았어. 닦이긴 닦이는데, 검정색이 물기랑 섞여서 바닥에 ‘예술작품’ 같은 얼룩이 남더라. 이건 뭐지? 나는 청소를 하는 게 아니라 바닥에 타투를 하는 건가?

근데 아직 끝이 아니야. 라면은 계속 끓고 있고, 나는 청소를 하느라 면이 뭔가… 과장하면 “너무 익었다” 수준이 아니라 “살아남을 수 있나” 수준으로 불어나고 있었거든. 여기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불을 줄이려고 했는데, 조절 버튼이 생각보다 민감해서 내 손가락이 닿는 순간 확 낮아졌다가 다시 올라가고, 또 내려가고… 가스레인지가 춤을 춘다고 해야 하나. 그 와중에 부엌에서 ‘후두둑’ 소리가 났어. 아, 그건 국물이 옆으로 넘어져서 어디엔가 떨어진 소리였어.

그 순간부터 나는 “혹시 누가 옆집에 들었나?” 같은 상상이 시작됐어. 자취방 특성상 소리가 벽 타고 다니잖아. 그래서 문 쪽을 봤는데, 초인종 불빛이 잠깐 들어왔다가 꺼졌어. 그리고 바로 다음에 노크 소리. 심장이 진짜로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지. 문을 열기 전에 내가 한 말이 “네… 물이 좀… 죄송해요”였는데, 그건 솔직히 내가 왜 죄송한지도 모르면서 나온 말이야.

문을 열었더니 옆집 아저씨가 아니라 같은 층에 사는 동생이더라. “혹시 지금… 타는 냄새 나요?”라고 묻는 거야. 그 말 듣고 나서야 내가 라면 끓이는 동안 무언가가 탄 냄새를 만들고 있구나 싶었지. 사실 냄새는 났어. 라면 탄 게 아니라, 내가 검정 봉투로 바닥 닦으면서 뭔가가 붙어서 데워진 냄새였거든. 그런데 그 동생도 별로 혼내는 분위기는 아니고, 그냥 걱정돼서 물어본 거라서 더 민망했다. 나는 급하게 수건이랑 걸레를 꺼내서 “아… 바닥에 쏟아서요. 제가 정리 중입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 끝나자마자 면이 냄비에서 더 부글부글 소리를 내더라.

결국 나는 라면을 완성했고, 맛은 어찌 됐냐면… 솔직히 말하면 먹을 만은 했어. 근데 먹는 동안 계속 머릿속에서 ‘오늘의 사건’이 재생되면서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거야. 왜냐면 라면은 내 손을 살짝 데우고, 바닥은 얼룩을 남기고, 옆집에는 “타는 냄새” 레전드급 보고를 하고, 나는 그걸 죄송하다고 정리까지 했으니까. 처음엔 자취가 자유라고 생각했는데, 열흘 만에 자유가 아니라 현장체험이더라. 그래도 그날 이후로는 라면 끓일 때는 꼭 물은 천천히 붓고, 면은 조심조심 뜯고, 바닥 청소는 하얀 키친타월부터 찾게 됐어.

그리고 지금도 가끔 라면 끓일 때 냄비에서 ‘부글’ 소리 나면, 내가 그때 뛰쳐나가 문을 열기 직전의 표정이 떠오르거든. 그때만큼은 진짜로 “자취 시작한 지 열흘 만에 라면 끓이다 벌어진 일”이 아니라, “라면이 아니라 내가 주방 재난영화 찍었네” 싶어서 피식하게 된다. 다음 번에는… 분명히 더 조심할 거야. 근데 또 열흘이면 사람 습관이 바뀌는 게 아니라, 재난도 더 빨리 익는다는 걸 알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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