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내준 도시락에 숨겨진 반전의 맛
엄마가 출근길에 “점심은 걱정 말고 먹어, 따뜻하게 챙겨놨어”라며 도시락을 툭 건네줬다. 나는 늘 그렇듯 감사하다고 하고 가방에 넣었는데, 문제는 그 도시락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성실해서 뭔가 수상했단 거다.
집에서 나온 도시락은 김이 살짝 밴 것처럼 포장이 단정했고, 반찬은 칸마다 정확히 나뉘어 있었다. 계란말이, 소세지 볶음, 김치 볶음, 오이무침까지 구성도 전형적이었는데,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작은 메모였다. 메모에는 “오늘 컨디션 괜찮지? 너무 무리하지 말고”라고 적혀 있었고, 날짜 옆에 동그라미가 하나 더 그려져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메모 보는 순간부터 마음이 살짝 불편해졌다. 왜냐면 엄마가 저렇게 한가운데에 신경을 쓰는 방식은, 대개 “내가 오늘 뭘 들켰다”는 느낌이 나거든. 그래도 도시락은 맛있어야 하니까 일단 첫 숟갈을 떴다. 계란말이는 부드럽고 간도 딱 맞았다. “역시 엄마” 싶어서 어깨가 풀리는데, 그 순간 소세지 볶음에서 살짝 다른 향이 났다.
처음엔 내가 피곤해서 코가 예민한 줄 알았다. 그런데 한입 더 먹고 나서야 알겠더라. 엄마가 늘 넣는 간장 맛이 아니라, 어딘가 더 진하고 달짝지근한 향이 섞여 있었던 거다. “혹시… 꿀?” 싶었는데, 왜 꿀을 넣었는지 납득은 안 됐다. 소세지가 원래 달달하면 맛이 더 좋아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달달함이 뒤에서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마치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하는 예고편 같달까.
김치 볶음 칸으로 넘어가자 이번엔 색이 평소보다 조금 더 선명했다. 김치가 너무 과하게 볶였나 싶었는데, 한입 먹고 나서야 깨달았다. 엄마가 김치에 뭔가를 더 섞었더라. 설명하자면, 그냥 김치 맛이 아니라 “김치의 진화 버전” 같은 맛이었다. 신맛이 먼저 치고 들어오고, 뒤에 고소한 맛이 잡아주는데, 그 고소함이 또… 평소에 엄마가 쓰는 참기름이랑은 결이 달랐다. 뭔가 견과류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렇다고 견과가 보이진 않았다.
오이무침도 마찬가지였다. 새콤달콤은 맞는데, 마지막에 아주 얇게 “톡” 하는 감각이 남았다. 사람마다 표현이 다르겠지만, 내 혀는 그게 단순히 후추 맛이 아니라 뭔가 더 날렵한 조미료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도시락 통 아래를 뒤적였다. 혹시나 해서 뚜껑 안쪽을 확인했는데, 거기엔 또 다른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내용은 단 한 줄이었다. “입 심심하면 여기!”
나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여기”가 대체 뭐지? 설마 반찬 사이에 숨겨둔 게 있어? 정말로 뚜껑을 열어 보니, 제일 아래 칸에 아주 얇은 종이 포장이 한 겹 더 깔려 있었다. 그 종이를 조심스럽게 빼자 작은 봉지가 나왔다. 봉지엔 딱 봐도 쿠킹소스 느낌의 가루가 담겨 있었다. 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면서 조미료 세트를 같이 준다는 게, 이게 무슨 게임 아이템 같은 느낌이냐고.
결국 점심 내내 나는 “어떤 조합이 정답일까”를 연구했다. 계란말이에 한 꼬집, 소세지에 한 번, 오이무침에 마지막으로 딱 찍어 넣으니 맛이 연결되듯 확 살아났다. 그런데 그제야 이해가 됐다. 엄마가 메모에 동그라미를 그렸던 건 날짜가 아니라 내 컨디션 체크였고, “컨디션 괜찮지?”라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테스트였던 거다. 내가 요즘 일을 하면서 대충 먹는 날이 늘었잖아. 엄마는 그걸 알고 있었고, 도시락으로 나를 붙잡아두려 한 거였다. 다정하게 말은 안 했지만, 맛으로 설득한 거지.
마지막으로 김치 볶음 위에 가루를 마무리로 살짝 더하자, 딱 “완성”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물론 실제로 소리가 난 건 아니고 내 마음이 그렇게 느낀 거다. 남은 건 빈 도시락 통과, 이상하게도 괜찮아진 기분. 점심 먹고 나서 엄마한테 문자 보냈다. “오늘 도시락 반전 진짜였어. 다음엔 내가 맞히기 전에 먹지 말고 찾아볼게.” 답장은 금방 왔다. “맞혀서 먹은 거니까 성공이지!”
그날 퇴근길에 생각해봤다. 엄마 도시락은 언제나 맛있었는데, 오늘은 특히 “숨겨진 맛”이 아니라 “숨겨진 의도”가 더 맛있었다. 그리고 다음 번 도시락이 오면, 나는 아마 또 쪽지를 먼저 찾게 될 것 같다. 엄마의 반전은 늘 같은 방향으로 향하니까, 결국 나는 그걸 또… 맛있게 걸릴 준비가 돼 있는 거겠지. 도시락이 나를 살렸다는 결론으로 마무리하면 되려나, 아니면 다음 반전도 기대해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