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밥 먹을 때마다 내 결혼 얘기 반복
아버지가 밥 먹을 때마다 내 결혼 얘기를 반복한다. 정확히 말하면 “밥”이라는 행위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수저 내려놓기 전까지는 거의 자동으로 같은 멘트가 튀어나온다. 나는 식탁에 앉자마자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오늘은 제발, 오늘만큼은… 하고. 근데 아버지는 그 다짐을 보통 “쓸데없는 낙관” 정도로 받아들이시는지, 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결혼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엔 그냥 농담인 줄 알았다. 어릴 때야 결혼이란 단어가 뭐랐는지 몰랐고, 아버지 말투도 “언젠가 하겠지” 같은 가벼운 농담이려니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내가 서른 중반을 넘기자, 아버지의 반복은 단순한 농담을 넘어 의식이 됐다. 밥상에 반찬이 오르면 그다음 코스가 “너도 이제…”로 이어진다. 어떤 날은 국을 푸는 손동작까지 외워놓으신 것처럼 타이밍이 맞다.
아버지의 결혼 얘기는 매번 내용만 조금 바뀌고 구조는 항상 똑같다. “너 요즘 사람 만나는 거 있냐”, “일도 중요하지만 집도 있어야지”, “사람은 결국 정착해야 편해” 같은 문장들이 한 세트로 등장한다. 나는 이미 내 인생의 파라미터를 다 외웠다. 연애는 한다, 소개는 받는다, 속도는 각자 정한다, 준비는 하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답변을 듣는 순간부터 다음 버전으로 업데이트해버린다. 마치 내가 앱이라서, 아버지가 자동으로 새 기능을 추가하는 느낌이다.
특히 충격인 건 아버지가 내 대답을 “반대로 해석”하는 능력이 있다는 거다. 내가 “아버지, 급하게 하고 싶진 않아요”라고 말하면,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급하진 않게 잘 준비하자”로 전환한다. 내가 “저도 생각은 해요”라고 하면, “생각은 하는 게 아니라 결정해야지”로 바뀐다. 내가 “적당한 사람 만나면요”라고 하면, “적당한 사람은 안 오고, 네가 나가야 온다”가 된다. 대화가 아니라 번역기 경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전략을 써봤다. 첫째, 주제를 바꿔보기. 맛있는 반찬 얘기를 하거나 회사 얘기를 꺼내면 아버지가 잠깐 멈춘다. 그런데 그 침묵이 길지 않다. 3분 정도가 지나면 “그래도 말이야”가 시동을 걸고, 그 말이 끝나면 결혼 멘트가 다시 돌아온다. 둘째, 타협형 멘트. “네, 준비 중이에요”라고 하면 아버지는 그 말에 만족한다. 그런데 문제는 “준비 중”의 범위를 아버지가 너무 넓게 잡는다는 거다. 준비 중이면, 다음엔 “그러면 언제?”가 바로 따라온다.
가끔은 가족 모임에서 그 반복이 더 크게 터진다. 친척 어른들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가 “우리 애는 요즘 어때?”라고 물으면,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나는 옆에서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이미 땀이 난다. 다들 듣고 있으니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넘기려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선 더 진지해진다. “내가 보기엔…”으로 시작해서 “남자는…”로 이어지고, 결국 “다음에 소개 한번 하자”로 마무리한다. 소개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섭게 들리는지, 그날의 나는 잘 안다.
나는 결국 “밥 시간” 자체를 위협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식탁에 앉는 순간이 아니라, 밥을 내는 냄비 뚜껑 소리부터 이미 경보가 울린다. 내가 조용히 핸드폰을 보면서 시간을 끌면 아버지가 한 박자 늦게 따라온다. “뭐 봐? 그런 거 말고 사람 봐야지.” 이쯤 되면 나는 내 인생보다 밥상 위의 반찬 순서가 더 중요해 보인다. 계란찜이 나오면 결혼 이야기가 강해지고, 미역국이면 또 다른 톤이 된다. 심지어 밥을 늦게 먹으면 “급하진 않다면서 왜 늦어?”라는 논리로 또 한 번 정리해버린다.
그래도 이상한 건, 아버지가 그 말을 하는 이유를 나도 안다는 거다. 결혼을 강요한다기보단, 내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과하게 표현되는 거다. 그래서 화내고 싶어도 잘 안 된다. 다만 표현이 너무 반복적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렇게 타협한다. 아버지가 멘트 시작하면, 대답을 바꾸지 않고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아버지, 저도 생각하고 있어요. 밥 맛있게 먹을게요.” 그러면 아버지가 잠깐 눈을 깜빡하시다가, 그제야 반찬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 찰나가 내겐 꽤 소중하다.
그리고 오늘도 밥상 앞에 앉았다. 아버지가 늘 하던 그 표정으로 입을 여셨고,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엔딩을 상상했다. 결혼 얘기가 다시 시작되겠지. 또 한 번 넘기겠지. 근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아버지가 한 박자 늦게 말끝을 흐리더니 “그래도… 밥이 제일이지” 하고는 국을 한 숟갈 뜨신다. 나는 웃음이 나와서 그냥 “네, 아버지” 하고 대답했다. 내 결혼이 빨리 결정돼서가 아니라, 밥이 맛있어서 누군가의 생각이 잠깐 멈춘 날. 그게 오늘의 작은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