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보내신 반찬이 자취방 식탁 점령함
어머니가 보내신 반찬이 자취방 식탁 점령함. 원래는 “좀 먹고 힘내” 이런 말 한마디랑 같이 오시는 건데, 이번엔 택배 상자가 도착하자마자 저희 집이 아니라 제 식탁이 먼저 깨어난 느낌이었어요.
처음엔 설마 싶었죠. 상자 열어보는데 김치통 하나, 간장게장 비슷한 통 하나, 나물 반찬 접시 두 개, 장조림 작은 용기, 그리고 “국은 얼려서 보내는 게 맞지?” 하시던 동태탕(맞나?)까지 들어있더라고요. 어머니가 저한테 보내신 건 반찬이 아니라 식탁 리모델링이었어요.
저는 바로 냉장고로 옮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반찬들이 전부 ‘보관용기’라기보다 ‘보관 의지’가 느껴진다는 거예요. 한 번 열면 다시 닫을 수 없는 종이호일부터, 뚜껑이 덜컥거리는 플라스틱까지… 어머니가 “이건 꼭 이렇게 담아야 오래가”를 3분짜리 영상으로 찍어놓고 싶어 하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냉장고 칸을 정리하려고 보니, 이미 제 인생이 냉장고를 정리한 적이 거의 없더라고요. 반찬통보다 제가 먼저 쌓아둔 건 “언젠가 먹지” “오늘은 귀찮아서” “유통기한은 아직이니까” 같은 변명들이었고, 결국 냉장고는 반찬을 받지 못한 게 아니라 반찬이 제 냉장고의 미래를 새로 설계해버린 겁니다.
옮기는 중간에 식탁을 보는데, 식탁 위에 반찬이 하나둘씩 올라오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한 상 차림이 되어 있었어요. 마치 제가 일부러 손님 오라고 연락한 것처럼요. 제가 보기엔 당장 내일부터 장사 시작할 것 같았고, 실제로는 “나 혼자 먹는데 왜 이렇게 풍성하지?”라는 질문만 계속 커졌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문자로 “오늘은 뭐 해먹었어?”라고 보내셨어요. 저는 솔직하게 답하기가 어려웠죠. 솔직하게 쓰면 “먹기는 먹는데, 어머니가 보내신 게 너무 많아서 식탁이 먼저 무너져” 같은 문장이 되잖아요. 그래서 “잘 먹고 있어요”라고 보냈는데, 그 문장 하나가 제 양심을 너무 얇게 포장한 느낌이라 계속 찜찜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어요. 제가 “일단 오늘은 하나만 먹자” 하고 꺼낸 게 김치, 그다음이 나물, 그다음이 장조림, 그리고 마지막은 밥에 얹을 소스까지… 반찬이 계속 등장하는 거예요. 마치 식탁이 저한테 미션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다 먹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저는 자취인이라 다음 단계가 있으면 바로 생활이 바뀌는 걸 알아요. 그래서 그냥 계속 먹고, 계속 먹고, 어느 순간 국까지 끓여버렸습니다.
그렇게 한 끼가 끝나고 나서야 식탁을 정리하려고 보니, 반찬이 또 새로 올라와 있더라고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방치”와 “보관”의 경계에서 계속 물건을 내려놓았던 겁니다. 식탁 위에는 이제 반찬이 아니라 작은 전시회가 열려 있었고, 저는 그 전시회를 ‘내가 관리할 수 있는 범위’로 제한하려고 노력했는데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손이 가면 마음이 따라가고, 마음이 따라가면 또 그릇이 늘어나니까요.
다음 날 아침엔 더 웃겼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려고 손을 뻗는 순간, 냉장고 안쪽에서 “여기 놓아야지” 같은 기운이 느껴졌거든요. 결국 저는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식탁 한쪽을 반찬 전용 구역으로 만들었어요. 어머니가 원하신 건 제가 밥을 해 먹는 거였을 텐데, 저는 반찬을 받는 방식으로만 효율을 극대화한 셈이죠. 그래도 먹을 때마다 마음은 좀 따뜻해져서, 결국 이 점령이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오늘도 어머니는 “다음 거는 덜 보낼게”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그 다음 문자가 “일단 이것도 맛있어서”로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지금 식탁을 지키는 경비병처럼 앉아서, 냉장고와 식탁 사이를 오가며 반찬의 흐름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취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는 요리 솜씨가 아니라 어머니의 정성에 밀리지 않는 배치가 아닐까 싶어요. 어머니 반찬이 들어오면 저는 항상 지고, 대신 집은 항상 맛있습니다—그걸로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