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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택배 뜯기 전에 이미 다 버리셨어

2026-06-17 05:41:12 조회 14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부모님이 택배 뜯기 전에 이미 다 버리셨어요. 진짜로요. 택배기사님이 “고객님, 배송 완료됐습니다!” 하고 문 앞에 놓고 가신 순간부터 저는 이미 늦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냐면 현관 쪽에서 “어휴, 또 뭐야” 하는 말투가 들리거든요. 보통은 그 말이 택배가 아니라 무슨 전단지나 빈 박스일 때 나오는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고, 부모님은 마치 전생에 택배 담당이었던 사람처럼 냉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저는 “아니, 이건 제가 시킨 건데요?” 하면서 택배 상자를 확인하려고 했죠. 근데 부모님은 택배 상자를 눈앞에 두지도 않고, 이미 손에 들고 계신 게 다른 봉투였어요. 종이봉투가 아니라 ‘버릴 거’ 봉투에 가까운 느낌. 어머니는 택배 박스 위에 있는 송장도 제대로 안 보고 “아, 이거 포장재 많네. 이런 거 맨날 비닐이랑 박스 부피 차지해”라고 하셨어요.

제가 “뜯어봐야 뭔지 알죠”라고 말하니까, 아버지가 한 술 더 떠서 “뜯는 건 이제부터 네가 알아서 해. 우리는 이미 다 정리했어”라고 그러는 거예요. 정리라니요. 저는 그 말이 ‘재활용 분류’ 같은 건가 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부모님이 부엌 쪽으로 걸어가면서 “이거는 쓰레기통으로 가는 게 맞아. 택배는 결국 버리려고 오는 거야” 같은 멘트를 던지는데, 저는 진짜로 멍해졌어요.

결국 택배 상자를 찾으러 가봤는데… 상자가 없더라고요. 문 앞에 있던 거 맞는데, 제 눈앞에서 10분도 안 돼서 사라졌어요. 어머니는 티비 리모컨 찾듯이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아, 너 그거. 뜯지도 못하고 버렸어.” 저는 그 순간 뇌에서 ‘버렸어’라는 단어가 반복 재생됐습니다. 뭐를요? 제가 기다린 그 물건이요? “버렸다”는 말의 결이 너무 가벼워서 더 화가 났어요.

제가 “어머니, 그럼 안에 뭐가 들어있었는지 확인은요?”라고 묻자, 어머니가 대단히 당당하게 “확인할 필요 없잖아. 너 요즘 주문한 게 또 비슷한 거잖아”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주문 목록이 그렇게 뻔해 보이는가 싶어서 억울했는데, 동시에 더 큰 공포가 왔어요. 부모님이 제 택배를 단순히 버린 게 아니라, 제 ‘취향 패턴’을 이미 분석해버린 상태였다는 거죠.

아버지는 더 현실적으로 설명해줬어요. “택배 뜯기 전에 이미 다 버리면, 생활이 편해져.” 네? 저는 그 논리가 이해가 안 됐는데, 아버지는 “뜯는 순간 비닐, 박스, 완충재, 테이프… 이것들이 한꺼번에 생기잖아. 우리는 그걸 미리 정리하는 거지. 어차피 택배는 한 번 쓰고 끝이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은 ‘과학적 분리수거’가 아니라 ‘선제 정리학’을 하시는 거였던 거예요.

저는 어이가 없어서 택배 앱에서 조회를 해봤어요. 배송완료 시간은 11시 32분으로 찍혀 있었고, 제가 집에서 확인하려고 문을 연 시간은 11시 41분쯤. 그러면 중간에 누가 그 사이에 상자를 치웠을까요? 물론 부모님이 치운 건 맞는데, 제가 그 사이에 들을 수 있었던 소리는 딱 하나였습니다. 거실에서 들리던 “이거 찢어야 돼” 같은 소리요. 저는 그 소리가 택배 뜯는 소리라고 믿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쓰레기봉투로 옮기는 소리였어요.

결국 저는 어머니께 “그럼 내가 주문한 거는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고, 어머니는 잠깐 생각하더니 “아, 그거? 그거는… 포장재만 버렸어. 안에 들어있는 건 있을 거야”라고 말했어요. 저는 그 말에 조금 희망을 가졌죠. 그런데 어머니가 내민 건, 제품 본체가 아니라 “테이프 뭉치”와 “완충재 일부”였어요. 제가 찾던 건 전자기기였거든요. 완충재를 봐서는 알겠지만, 본체는 이미 다른 어딘가로 넘어갔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마지막으로 부모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너 택배 오면 꼭 늦게 오지. 그러니까 우리가 미리 정리하는 거야. 그리고 네가 주문할 때는 대체로 ‘쓰고 버릴 거’야. 그러니까 효율적으로 해준 거지.” 저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왔어요. 화가 나려고 했는데, 말이 너무 현실적이라서요. 제 택배가 꼭 ‘쓰고 버릴 거’였던 건 아닌데, 부모님은 제 생활 패턴을 기준으로 세계를 운영하고 계신 느낌이었어요.

그날 이후로 저는 택배가 오면 먼저 사진을 찍고, 부모님께 “뜯기 전에 버리시면 안 돼요”라고 경고하는 대신, 아예 문 앞에 서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정말로 제가 지켜보는 앞에서 부모님이 상자를 보더니, 어머니가 소곤거리며 말하더라고요. “어차피 테이프는 잘 뜯어야 하니까… 자, 너는 뜯어.” 저는 그 말에 감동했어요. 결국 부모님도 절반은 협조하시더라고요. 문제는 절반이 늘 버리는 쪽이라는 사실뿐이었죠. 택배가 오면 이제 저는 물건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 집에서 누가 ‘선제 정리왕’인지 경쟁하듯이 지켜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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