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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하면서 냉동식품 유통기한이 늘어나는 마법

2026-06-17 10:41:11 조회 2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자취 시작하고 제일 먼저 배운 건 “냉동실을 믿지 말라”가 아니라 “냉동실이 나를 믿게 만드는 법”이더라. 어느 날 장보기 앱에서 냉동식품을 한가득 담았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내가 자취를 하면 뭔가 다 ‘정상’이 된 줄 알았다는 거다. 진짜로. 냉장고는 관리가 필요하지만 냉동실은 그냥 눌러 담아두면 알아서 연장되는 마법이 있을 줄 알았다.

처음엔 자신감이 넘쳤다. 유통기한이 적힌 봉투를 보면서 “어차피 냉동인데 뭐가 달라”라고 생각했거든. 옆집 사람들이 “냉동은 오래 가도 맛이 문제야”라고 말할 때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속으로는 ‘그 맛이라는 것도 결국 심리’라고 우겼다. 그러다 진짜로 ‘심리’가 맞는지 시험해보기로 했지. 냉동실 한 칸을 통째로 타임캡슐처럼 만들어두는 거야.

타임캡슐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예를 들어 어떤 만두는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상태로 들어갔고, 어떤 볶음밥은 “이건 나중에 먹지 뭐” 하다가 결국 나중이 계속 밀렸다. 그러는 동안 나는 요리를 대충 하면서도 만족스러워했어. 왜냐면 냉동식품을 꺼낼 때마다 봉투에 적힌 글자가 뭔가 미묘하게 바뀌는 느낌이 들었거든. 솔직히 말하면 글자가 바뀐 건 아니고, 내 눈이 바뀐 거겠지. 그런데도 기분은 묘하게 승리감이 있었어.

어느 날은 진짜로 확신이 생겼다. “유통기한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내가 늦게 먹는 속도가 유통기한을 따라잡는 거다” 같은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세웠지. 예를 들어 전 날엔 분명히 2024년이라고 적혀 있던 김치볶음밥이, 다음 날엔 마치 2025년쯤 된 것처럼 보이더라. 그래서 나는 냉동실 문을 여는 순간마다 손가락으로 날짜를 문지르듯 확인했다. 날짜 확인하는 내 모습이 마치 주술사가 부적을 읽는 것처럼 진지해서, 혼자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믿음이 쌓이다가 드디어 ‘마법의 증거’를 찾는 날이 왔다. 냉동실 맨 아래 칸에서 손바닥만 한 봉투를 발견했는데, 포장이 살짝 구겨져 있었고, 유통기한이 아주 오래전 날짜로 찍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버릴 각이었다. 근데 자취생에게 버리기는 어려운 거 알지? 그래서 나는 “그래도 냉동이면 생존 확률이 높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 말 하는 순간부터 이미 먹을 마음 100%였다.

조리하면서도 나는 이상하게 기대가 컸다. 팬에 올리면 냉동식품이 익는 그 소리가, 뭔가 “시간도 같이 익어간다”는 느낌을 주는 거야. 그리고 냄새가 올라오는 순간, 진짜로 모든 죄책감이 증발했다. 맛있었던 건 둘째고, 무엇보다 식감이 생각보다 멀쩡했다. 물론 ‘완벽히 새것 같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지. 그런데 중요한 건, 내가 기대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그럭저럭 살만함’ 쪽으로 결론이 난 거다. 이러면 사람들이 왜 냉동실을 신처럼 받드는지 이해가 됐어.

그날 이후로 나는 냉동실 운영을 과학처럼 하게 됐다. 봉투를 날짜순으로 정리한다거나, ‘먼저 먹을 것’만 앞에 둔다거나, 그런 기본적인 상식은 알겠는데… 나는 상식을 실천하는 게 아니라 의식을 진행하게 됐다. 예를 들면 냉동실 문을 열기 전에 “오늘은 너를 살릴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꺼낸 음식이 괜찮으면, 그건 내 관리 능력이고, 애매하면 “냉동실 마법이 곧 약해지는 중이야”라고 해석했다. 마법을 믿되, 실패를 합리화하는 능력은 자취생의 특기더라.

근데 웃긴 건, 어느 순간부터 ‘마법’이 아니라 ‘기억력’이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는 거다. 내가 자주 먹는 건 결국 내가 편한 걸 꺼내 먹는 거고, 오래된 건 그냥 계속 잊혀서 살아남는 거더라. 냉동식품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내 냉동실 안에서 시간이 아니라 선택이 늘어나는 거.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기분은 좋았다. 어차피 자취는 매일 새로 시작하는 삶이잖아. 전날의 실수도, 오늘의 발견도, 다 합쳐져서 ‘오늘은 맛있었다’로 끝나니까.

그래서 결론은 이거야. 냉동실 유통기한이 진짜로 늘어나는 마법은 없더라. 대신 자취생의 뇌가 냉동실 앞에서만큼은 최면을 거는 마법이 있다. “오늘 먹으면 아직 괜찮아”라는 말이 내 하루를 구원해준다. 그리고 어느 날엔 봉투를 꺼내 보다가 날짜를 보고 멈칫하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 내가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뭔지 알아? 버리기 전에 한 번 더 냉동실 문을 닫고, 다시 열어서 확인한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속 마법은 계속 유지되고, 결국 나만 피식 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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