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복사하다가 프린터에 내 얼굴이 저장됨
회사에서 복사하다가 프린터에 내 얼굴이 저장됨. 그날도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어느 순간부터 “문서 생산자”가 아니라 “프린터 콘텐츠”가 되어버렸습니다.
아침에 회의 자료 인쇄하려고 복사 버튼 눌렀죠. 직원들이 프린터 앞에서 늘 하던 그 순서대로, 원본 문서 올리고, 매수랑 옵션만 대충 확인하고 출발했습니다. 물론 전 “내가 무슨 사고 칠 확률이 있겠어?” 같은 자신감이 있었어요. 사람이란 게 꼭 그런 순간에 망하더라고요.
문제는 그 복사가 끝나고 바로 생겼습니다. 평소랑 똑같이 출력이 쏟아지는데, 프린터가 뭔가를 자동으로 스캔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저는 그냥 “광고용 센서가 있나?” 싶었는데, 그 순간 모니터에 저장 관련 알림이 딱 떴어요. 제목이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내용은 대충 “이미지 저장 완료” 같은 거였고, 저장 위치는 네트워크 폴더로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얼떨결에 프린터 옆에 있는 터치스크린을 봤습니다. 거기엔 문서 미리보기 말고도… 제가 봐도 제가 맞는 얼굴이 딱 떡하니 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문서 올리는 동안 잠깐 프린터 위를 보며 각도 잡았던 그 표정이요. 사진처럼 딱 고정되어 있어서 처음엔 진짜로 제가 꿈꾸나 싶었어요.
“아니 대체 왜 내 얼굴이 저장돼?”라고 속으로 외치는데, 더 무서운 건 그 얼굴이 꽤 선명하다는 겁니다. 조명도 있고, 배경도 있고, 제가 정면으로 잠깐 바라본 구도가 나와서… 마치 프린터가 “너 오늘부터 인쇄 모델이야”라고 선언한 느낌이었죠. 저는 순간적으로 손이 차갑게 식는 걸 느꼈습니다. 잘못 눌렀나, 설정을 바꿨나, 아니면 프린터가 사람 얼굴을 좋아하는 건가… 여러 생각이 동시에 들더라고요.
처음엔 그냥 지우면 되겠지 싶어서 저장 폴더를 열었어요. 그런데 문제의 이미지가 파일로 하나 딱 등록돼 있었습니다. 파일명이 ‘scan_날짜_시간’ 이런 식이었는데, 제 얼굴 썸네일이 미리 보여서 이미 늦은 기분이 들었죠. 더 웃긴 건, 삭제 버튼을 누르려는데 옆에서 누가 “어, 그거 지우면 안 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팀에서 문서 스캔 기록을 보관하는 규칙이 있더라고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 누가 담당이냐, 어디에 보고해야 하냐… 저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이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증거물’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 저… 얼굴이 들어갔는데 오류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려다 말고, 그냥 프린터 설정을 확인하는 척하며 눈을 피했어요. 제 표정이 이미 모든 걸 말해버렸겠죠.
결국 저는 설정에서 ‘얼굴 자동 인식’ 같은 건 없지만, 스캔 영역이 넓게 잡혀 있어서 복사하는 동안 프린터 내부 카메라/스캐너가 주변을 같이 찍는 구조였던 걸 발견했습니다. 즉, 제가 문서가 아니라 제 얼굴을 넣은 셈이 된 거죠. 그런데도 이상하게 안심이 안 됐어요. 이걸 다른 사람이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더라고요. 회사는 원래 다들 바쁜데, 바쁜 와중에 제 얼굴을 보고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상상만 해도 괜히 억울했습니다.
퇴근할 때까지도 계속 신경이 쓰여서, 저는 몰래—정확히 말하면 조심스럽게—해당 파일을 권한 있는 담당자에게 보고하고 삭제 절차를 밟았습니다. 담당자는 “아, 가끔 스캔 영역이 넓어서 그래요”라고 말하더군요. 그 말 듣는 순간, 저는 정말로 안심했는데요. 동시에 제가 그 “가끔”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이 더 서글펐습니다. 프린터 앞에서 본인 얼굴이 저장되는 날도 인생에 한 번 오잖아요. 하필 저한테 온 거죠.
그리고 오늘도 그 프린터 앞을 지나가며 습관처럼 스캔 설정을 확인합니다. 문서 넣기 전에 각도도 조심하고, 아예 프린터 위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거든요. 근데 솔직히 말하면요, 어느 날부터는 복사할 때마다 제 얼굴이 출력될까 봐 무섭기보단… 누가 저장 폴더에서 제 표정을 또 봤을까 봐 더 궁금해졌습니다. 혹시 누군가는 그 파일을 보고 “오늘 회의 자료보다 이 사람이 더 중요하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니까요. 전 그게 제일 웃기면서도, 가장 조심하게 되는 포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