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내 메신저 닉네임을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함
상사가 내 메신저 닉네임을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함. 솔직히 처음엔 그냥 오타인 줄 알았어요. 회의 끝나고 “ㅇㅇ씨”라고 부를 타이밍에 상사가 갑자기 제 화면을 보면서 “어, 별명!” 하고 한 박자 쉬더니 손까지 까딱하시더라고요. 그 순간 제 얼굴이 먼저 얼어붙고, 그 다음에 제가 “네…?”를 따라가 버렸습니다.
사실 저 닉네임이 뭐 엄청 튀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어렸을 때 게임하다가 쓰던 거라, 회사에서는 거의 안 쓰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상사가 저를 찾을 때마다 메신저 닉네임을 부르더니, 팀장님이랑 통화 중에도 “별명, 이거 확인 좀” 같은 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처음엔 업무가 급해서 그냥 그렇게 말했겠지 했는데, 그게 점점 고정이 되더라고요.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제가 보고 자료 넘겨주면 상사는 “별명, 이 슬라이드 폰트 너무 귀여운데요?” 같은 말을 해요. 네, 귀엽다는 표현이 기분 나쁘진 않은데요. 문제는 그 단어가 저를 불러오는 방식이 됐다는 거예요. 제가 진지하게 “이 부분은 근거 데이터가…” 하고 설명하면 상사는 중간에 “알지, 별명은 데이터도 챙기는 타입” 이러고 웃습니다. 저는 지금 보고하는 건지, 캐릭터 소개를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더라고요.
처음엔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냥 넘어가면 습관이 고착될 것 같고, 그렇다고 “그 닉네임으로 부르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왠지 제가 예민한 사람 같잖아요. 그래서 저는 가장 안전한 방법, 즉 ‘대응은 하되 감정은 숨기기’를 택했습니다. 상사가 “별명!” 하면 저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네, 확인했습니다”라고만 답했어요. 그런데 그게 더 문제였어요. 상사가 볼 때는 ‘잘 받아주는 사람’이 된 거죠.
어느 날은 단순 호출을 넘어섰습니다. 점심 먹으러 같이 가자는 말도 “별명, 오늘은 뭐 먹을래요?”가 기본이 됐고, 문서 피드백도 “별명, 여기 문장 좀 더 단정하게”가 됐어요. 결국 동료들도 그 말을 따라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제가 커피 타서 가져오면 옆자리 후배가 “별명 왔어요!” 하고 장난스럽게 웃는데, 그때는 정말로 제 이름이 사라지고 캐릭터 하나가 생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작은 실험을 했습니다. 상사가 또 “별명” 하고 부르는 타이밍에, 일부러 잠깐 멈추고 “저 성함은 ㅇㅇ씨예요. 방금처럼 부르면 제가 순간 멈칫합니다”라고 말했거든요. 너무 딱딱하게 말하진 않으려고 최대한 웃으면서요. 상사는 잠깐 멍하더니 “아, 그래요? 제가 자꾸 별명으로 부르게 돼서요. 그럼 앞으로 ㅇㅇ씨로 부를게요”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함정. 그 다음 날부터는 더 교묘하게 바뀌었습니다. “ㅇㅇ씨~ 잠깐만요. 별명으로 착각했죠?” 이런 식으로요. 정확히는 이름으로 부르긴 부르는데, 뒤에 ‘별명’ 한 단어를 붙여서 계속 회전시키는 거예요. 제가 말을 한 걸 기억하긴 했는데, 상사는 그걸 ‘별명=밈’으로 만들어 버린 느낌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유행하는 말은 참 빠르더라고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닉네임이 밈이 됐습니다.
결국 저는 포기 비슷하게 타협했습니다. 더 정색하면 더 오래 남을 것 같아서, 대신 제 쪽에서 룰을 만들었어요. 상사가 “별명!” 하면 저는 바로 반응하되, 업무 얘기 들어가기 전 한 번만 “네, ㅇㅇ씨입니다”라고 덧붙입니다. 그러면 상사도 “아 맞다, ㅇㅇ씨” 하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더라고요. 물론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요. 가끔 회의 중에도 “별명, 이 부분은…” 하고 말하려다 스스로 멈추는 순간이 보일 때마다, 저는 속으로 ‘아, 본인도 자각은 하는구나’ 하고 안심합니다.
근데 진짜 웃긴 건 마지막에 터졌습니다. 지난주에 상사가 갑자기 저한테 메신저 닉네임을 바꾸라고 하더라고요. “별명으로 부르니까 오해가 생길 수 있잖아요. 닉네임을 회사용으로 바꿔요.” 그러면서 본인은 매일 “별명”을 외쳤던 그 당사자였어요. 저는 그 말 듣고 진짜로 빵 터질 뻔했는데, 참았습니다. 대신 말했죠. “네, 그럼 상사님도 저 부르실 때는 회사용으로만 부르시면 될 것 같아요.” 상사는 한참 있다가 “맞아요. 제가 먼저 바꿔야죠”라고 하더니, 그날부터 ‘별명’ 대신 ‘팀장님이 지정한 사람’ 같은 표현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더 이상한데… 그래도 최소한 제 닉네임은 이제 덜 휘둘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