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에서 거래 약속 잡았는데 상대가 먼저 도착했음
당근에서 거래 약속 잡았는데 상대가 먼저 도착했음. 이게 무슨 코미디냐 싶었는데, 진짜로 내가 약속 시간에 늦은 게 맞는지 확인도 하기 전에 이미 그분이 와 계시더라.
나는 동네 당근에서 중고로 책상 상판이랑 의자 세트를 올려뒀고, 누가 “오늘 6시쯤 문 앞에서 거래할게요” 하고 연락이 왔어. 글도 깔끔하고 말투도 좋길래, 나도 “네! 현관 쪽에 둘게요” 하고 바로 일정 확정했지. 솔직히 나는 30분 전에만 준비하면 될 줄 알았어. 책상 나사랑 포장재 챙기고, 물티슈로 먼지 좀 닦고, 현관 앞에 나름 정리해두는 데까지는 내가 주도권 쥐고 있었거든.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어. 준비는 다 했는데, 막상 시간 다가오니까 “혹시 도착이 5분 정도 늦겠지” 같은 착각이 들더라. 그래서 마지막으로 현관 앞 정리 한 번 더 하다가 휴대폰 충전기 찾느라 10분이 그냥 증발했어. 그때까지도 나는 ‘상대가 먼저 도착하진 않겠지’라는 순진함을 유지하고 있었고, 시계만 계속 확인했지.
그런데 5시 58분쯤 되니까 갑자기 초인종이 울리는 거야. 나는 분명 6시로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울리자마자 심장이 “뭐지? 벌써 오셨나?” 하고 튀어나올 뻔했어. 현관 쪽으로 가는 길에 생각이 여러 개 떠올랐어. ‘설마 잘못된 집이겠지?’ ‘아니면 내가 시간 착각한 건가?’ 같은 것들. 문을 열기 전까지는 아무도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는데…
문 열자마자 바로 얼굴이 보이는데, 바로 그 당근 상대분이 서 계시더라. 그리고 손에는 비닐봉지 하나 들고 있잖아. 표정은 되게 평온해. 내가 놀라서 “아… 죄송해요. 조금 늦었어요”라고 말하려는 순간, 상대가 먼저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가 일찍 나왔어요.”라고 하시는 거야.
근데 이게 더 웃긴 게, 상대분이 문 앞에 딱 정리된 상태로 이미 다 준비해놨어. 쇼핑백 같은 걸 들고 계신 것도 그렇고, 내 물건 위치도 어느 정도 확인하고 서 계시더라. 나는 순간 머릿속에 ‘내가 준비한 게 늦어서 불쾌하게 한 건가?’가 아니라, ‘상대가 너무 철저해서 내가 더 민망해지는 상황’이 딱 떠오르면서 땀이 살짝 났어.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착각한 게 완전 역전된 느낌이랄까.
대화는 어색할 수밖에 없는데, 상대분이 의외로 능숙하게 분위기 풀어주더라. “원래 10분 일찍 도착하는 편이라서요. 주차도 그렇고, 혹시 집 비어 있으면 곤란할까 봐요.” 이런 말이 나오는데, 나보다 거래를 더 ‘프로답게’ 하고 계신 느낌이었어. 나는 그제서야 “제가 늦었네요. 진짜 죄송합니다” 하고 얼른 물건 들고 정리 들어갔고, 상대는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하는데 그 말이 너무 점잖아서 더 민망했음.
어쨌든 거래는 깔끔하게 진행됐고, 현금/계좌 얘기 마무리하고, 물건도 상태 확인하고, 서로 “좋은 거래였어요” 같은 마무리 멘트까지 했어. 근데 나오면서 상대분이 “오늘 혹시 기다리게 하진 않았죠?”라고 한마디 더 하더라. 그 순간 진짜 깨달았지. 내가 늦어서 미안한데, 상대는 먼저 와놓고도 기다릴까 봐 걱정한 거잖아. 나는 머리 속에 자동으로 사과문을 한 열 개는 더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집에 들어온 뒤에야 생각해봤는데, 사실 이 상황이 완전 이상하진 않아. 당근 거래할 때 1~2분 차이로도 서로 마음 상할 수 있는 거 알잖아. 그런데도 상대는 먼저 도착해서도 ‘내가 먼저 온 게 정답’이라고 우기지 않고, 내 타이밍을 배려해줬던 거지. 그래서 더 웃기고, 더 찡했어. 오늘의 교훈은 ‘초인종은 언제나 복수한다’가 아니라, 그냥… “일찍 도착한 사람이 항상 피해자다” 같은 고정관념은 버리라는 거였나 싶다.
결국 나는 다음 날 당근에 짧게 후기 남겼어. “약속 시간 기준으로는 내가 늦었는데도 상대분이 먼저 도착해서 배려해주셨습니다. 덕분에 거래가 정말 편했어요.” 이렇게.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약속 잡으면 최소 20분 전에 준비해두는데, 문제는 여전히… 초인종이 먼저 울리면 내 멘탈이 먼저 털린다는 거지. 그래도 이번엔 상대가 웃으면서 ‘괜찮아요’ 해줬으니까, 다음엔 내가 먼저 준비해두면 되겠지. 아니, 그러다 또 누가 더 일찍 오면 그건 그때 가서 인정해야 함. 내 인생이란 원래 이런 거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