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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내 차 키를 들고 ‘잠깐’ 차에 감

2026-06-20 20:41:13 조회 6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아버지가 내 차 키를 들고 ‘잠깐’ 차에 감. 처음엔 진짜로 “잠깐”이지, 내가 뭘 어떻게 하겠냐 싶었지. 그날도 나는 출근 준비하면서 현관 앞에 키를 둘러놓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툭 하고 키를 낚아채듯 가져가더니 말만 던지고 나가셨어.

“잠깐만 타고 나가서 볼 일 좀 보고 올게.”

아버지 말투가 늘 그랬거든. 뭔가를 할 때마다 속도를 올리기 전에 먼저 단어를 저렇게 깔아두는 스타일. 문제는 ‘잠깐’이라는 단어가 우리 집에서는 시간 개념이 아니라 의지 개념이라는 거야. 아버지는 ‘잠깐’이라고 말하면, 그 순간부터 시간은 아버지 편으로 기울어져.

나는 일단 “네, 아버지” 하고 웃으며 출근 준비를 끝냈어. 키가 없으니 차를 못 타겠지? 하지만 아버지가 워낙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걸 좋아해서, 설마 진짜로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예전에 아버지가 운전하는 걸 본 적이 있어서 더더욱 믿음이 생겼어. 차를 몰면 차가 아니라 도로가 기분 좋아지는 느낌… 같은 거 있잖아. (내가 그런 착각을 했던 거지.)

첫 20분은 괜찮았어. 나는 대중교통으로 갈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가벼웠거든. “아버지 금방 오겠지” 하면서 핸드폰을 보는데, 그때 딱 전화가 와. 아버지 목소리로 “나 지금 잠깐만 들를 데가 있어.”

여기서 ‘잠깐’이 또 나오는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어. 아버지는 ‘잠깐’이란 말을 할 때마다 잠깐의 크기를 계속 늘리고 있구나. 마치 풍선처럼. 처음엔 손바닥만 한데, 어느새 머리 위까지 부풀어 오르는 그 느낌.

1시간쯤 지나니까 문자도 없고, 전화도 없고, 세상 모든 소리가 갑자기 조용해지는 게 느껴졌어. 나는 회사에 늦을 수도 있으니 택시를 부르려고 했지. 근데 택시를 타면 마음이 더 편해질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냥 답답함이 이겨야 하더라. 그런데 아버지한테는 연락이 되지 않았고, 키는 내 차에 있었고, 내 차는 아버지의 ‘잠깐’ 속에 갇혀 있었어.

결국 나는 “아버지, 지금 어디쯤이에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봤어. 그랬더니 답장이 이렇게 오더라. “사실은 네가 가끔 갈비집 가잖아. 그 근처에서 잠깐.”

아니, 근처에서 잠깐이면 그 근처가 한두 군데가 아니잖아. 그리고 그 갈비집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야. 아버지가 내 차를 타면 왜 갑자기 ‘내가 가끔’이 되는지 나는 그때야 알았어. 아버지는 항상 내 입으로 인정받을 만한 일을 하는데, 정작 내용은 본인 취향이더라.

그때부터 나는 거의 탐정 모드로 변했어. 아버지 위치가 정확히 보이지 않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상상뿐이야. “설마 시장 쪽으로 갔나? 아니면 동네 카페? 아니면 또 그 어르신들 모임?” 그러다 문득 아버지의 차 사용 습관이 생각났어. 아버지는 차를 타면 음악을 크게 트는 타입이 아니거든. 대신, 신호 기다릴 때마다 창문을 아주 조금 열어서 바람을 맞아. 그 소리가 기억나서, 나는 괜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어. 세상에, 나는 누가 봐도 그럴싸한 미친 사람이었을 거야.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상황이 완전히 정리됐지. 아버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키를 내 손에 툭— 하고 돌려주는데, 얼굴이 너무 평온했어. 마치 “다녀왔어요” 정도의 표정. 나는 참다 참다 질문을 했지. “아버지, 아까 ‘잠깐’이라고 했잖아요….”

그때 아버지가 웃으면서 한마디 하더라. “잠깐이었어. 근데 네가 생각하는 잠깐이랑 아버지가 생각하는 잠깐이랑 단위가 달라.”

“단위요?”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너는 잠깐을 ‘시간’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잠깐을 ‘거리감’으로 생각해. 잠깐 들렀다 오면 내 마음이 편해지잖아. 그게 곧 잠깐이지.”

순간 나는 너무 웃겨서 말이 안 나왔어. 사실 화도 나긴 났는데, 그 화가 입 안에서만 맴돌고 밖으로 나오지 않더라. 왜냐면 아버지가 너무 자연스럽게 말하니까, 내가 오히려 ‘내가 잘못 이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덧붙인 말이 더 킬 포인트였어. “그리고 네 차, 진짜 깨끗하더라. 내가 혹시나 해서 와이퍼랑 실내 먼지도 한 번 봤어.”

“아버지, 그걸 그렇게 오래 보시고…”

아버지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어. “잠깐이면 더 꼼꼼히 봐야지.”

그날 이후로 나는 아버지가 키를 들고 “잠깐”이라고 말하면, 이제 자동으로 시간표를 새로 계산해. 그런데 이상하지? 계산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 결국 ‘잠깐’은 아버지의 사랑이자 습관이더라. 나는 차 키를 돌려받았고, 아버지는 자기식대로 세상을 정리했어. 그래서 오늘도 출근길에 차를 타면서 생각해. “이번에는 아버지 잠깐이 내 마음까지 같이 데려올까?”… 보통은 데려오더라. 키는 없는데 마음은 먼저 타 있는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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