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유머/짤방 유머 추천 0

어머니가 ‘다음엔 직접 와서 가져가’라더라

2026-06-22 00:41:13 조회 3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어머니가 “다음엔 직접 와서 가져가”라더라. 그 말이 나온 건 내가 뭘 잘못했냐고 묻기도 전에, 이미 집에서의 하루가 결론 난 느낌이었다. 사실 그 전까지는 그냥 평범한 ‘집에서 뭔가 챙겨 보내는 날’이었는데, 어머니는 늘 그렇듯 뭔가 한 번 입에 담으면 끝까지 밀고 가는 스타일이라 화가 나기보단 당황이 먼저 왔다.

일요일 아침에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야, 이거 보내줄게. 너네 집 냉동실에 들어가면 딱이겠다” 하시면서 잔뜩 정리된 말투로 이것저것 말씀하셨다. 내가 “고마워요, 어머니” 하고 얼른 받을 준비를 했더니, 다음 문장에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어머니가 “택배 말고, 네가 직접 와서 가져가”라며 한 번 더 강조하셨다.

나는 순간 귀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어머니, 택배로 보내주신다며요?”라고 되물었는데, 어머니는 “보내긴 보내야지. 그런데 다음부터는 직접 오라니까”라고 단정하셨다. 그 ‘다음부터’라는 표현이 너무 무섭지 않냐. 마치 앞으로 내 인생 일정에 어머니의 직배송이 자동으로 끼어드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그날 종일 심장이 쿵쾅했다.

사연은 사실 거창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장보시고 직접 만든 반찬이랑 고기, 그리고 내가 좋아한다는 과일 몇 개를 넣어주셨는데, 그중 하나가 택배 도착 후 조금 늦어졌다는 얘기가 돌았다. 내가 받은 날엔 또 괜찮았거든. 비닐도 멀쩡하고, 냄새도 정상이고, 맛도 나쁘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내가 보기엔 이미 늦었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 이번 건은 괜찮았어요. 냉동도 잘 되고, 맛도 그대로였어요”라고 말했더니 어머니는 잠깐 조용해지더니, 이런 식으로 말하셨다. “네가 괜찮다고 느끼는 건 네 냉동실이 좋다는 뜻이고, 다음부턴 네가 와서 내가 뭘 포장했는지도 보고 가져가.” 이 말이 참… 말이 되는데, 내 마음을 제압하진 못했다. 결국 ‘내가 괜찮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어머니 마음이 괜찮아야 한다’는 뜻 같아서 더 열받았다.

나는 어머니가 단지 고집이 세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머니가 최근에 택배 기사님을 한 번 잘못 만나신 적이 있었다. “문 앞에 두고 간다더니, 바람 부는 날 비 맞게 해놨어” 같은 얘기를 하시면서, 그날의 감정이 아직도 채 가라앉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이번에는 “직접 가져가는 게 제일 확실하다”로 결론을 내리신 거지. 물론 그 확실함이 내 인생에 주는 부담까지 생각했을 리는 없었다.

문제는, 내가 직접 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나는 출퇴근이랑 일정이 많고, 어머니는 “일정이 많으면 더 일찍 와”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편이라 협의가 잘 안 된다. 그래서 나는 타협책을 내놨다. “어머니, 그러면 다음엔 제가 차로 들릴게요. 30분만.” 어머니는 그걸 듣더니 “30분이면 돼? 그럼 네가 포장도 확인하고, 내가 설명도 하고, 그리고 먹을 때까지 다 정리하고 가야지”라고 하시는 거다. 어머니 말투가 ‘설명’에서 갑자기 ‘미션’이 되는 스타일이라 나는 순간 멍해졌다.

결국 나는 그날 저녁에 다시 연락을 했다. “어머니, 알겠어요. 다음엔 제가 직접 갈게요. 근데 그 대신… 어머니가 반찬은 미리 만들어서 소분해두셔야 해요. 그래야 제가 ‘30분 미션’을 성공하죠.” 그러자 어머니가 웃으시더니 “그래, 그럼 나도 마음이 편해”라고 하셨다. 물론 그 말이 진짜로 내 계획이 통했다는 뜻은 아니고, 어머니가 원래부터 마음이 편해야 되는 분이라는 뜻이긴 했다.

그리고 오늘. 어머니 집에 다녀오기로 한 날이 왔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냉장고 문을 열고는, 마치 보물 지도 펼치듯이 이것저것 꺼내서 보여주셨다. 나는 운전 때문에 숨 가쁘게 와서 “어머니, 여기까지 가져가는 건데요”라고 말하려다가, 결국 반찬 하나하나의 소스 비율부터 보관 팁까지 다 듣고 나왔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나한테 한 마디 하셨다. “봤지? 택배로 보내면 네가 못 보는 게 많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어머니가 “직접 와서 가져가”라고 한 건 단순히 귀찮아서가 아니라, 내 삶의 속도에 맞춰서라도 어머니가 챙기는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도 나는 택배가 편하긴 하다. 그래도 어머니 냉동실에서 꺼내는 그 ‘갓 포장된 느낌’이 이상하게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직접 가는 게 힘들어도 결국 어머니는 내가 오기만 하면 이기더라. 그리고 그 승리 방식이 반찬 포장이라니…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