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타고 가는데 내 내비가 자꾸 집으로 데려감
차 타고 가는데 내 내비가 자꾸 집으로 데려감. 진짜 이게 시작은 별일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길을 틀린 게 아니라, 내비가 사람을 틀리게 믿는구나” 싶더라. 오늘도 목적지 찍고 출발했는데, 내비가 출발하자마자 표정 없는 목소리로 “경로를 안내합니다. 1분 후에 좌회전, 그리고… 집으로 이동합니다” 이러는 거야.
처음엔 그냥 오작동이겠지 싶어서 “아니 내비야, 집 말고 회사 가야 해” 하고 웃으면서 넘겼어. 화면에는 분명 목적지가 회사로 되어 있는데, 말로는 자꾸 집을 말하니까 신기하더라. 내가 “경로 재탐색” 눌렀더니, 속도계는 멀쩡한데 내비는 또다시 “집으로부터 3.2km, 지금부터 홈 루트를 권장합니다”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홈 루트라니, 갑자기 내비가 인생 코치가 됐나 싶었지.
그래서 진지하게 음성으로 목적지 다시 설정했어. 회사 이름 정확히 찍고, 검색도 다시 하고, “이 주소로 안내해”라고까지 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 한 5분쯤은 멀쩡하더니, 갑자기 고속도로가 아니라 골목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거야. 이유는 화면이 알려줬는데, 글자가 딱 하나 떠 있었어. ‘집과의 최단거리 우선’. 최단거리 우선이면 됐지… 왜 하필 집이 최단거리인지부터가 문제잖아.
그때부터 차 안 공기가 좀 이상해졌어.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 내비는 계속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가는 느낌. 나는 회사 가는 길을 알고도 있는데, 내비가 자꾸 “여기서 좌회전하면 더 편안합니다” 같은 말로 유혹을 하니까 괜히 내가 속고 있는 기분이 들더라. 편안하다고? 출근이 편안하면 다들 왜 힘들겠냐. 나는 진짜로 핸들 잡고 있는데, 내비는 내 마음을 잡고 있었어.
그래도 혹시 업데이트 문제인가 싶어서 설정 들어가 봤지. 경로 옵션, 저장된 장소, 기록… 다 확인했는데 이상하게도 내 ‘집’이 오늘도 맨 위에 고정돼 있더라. 나는 집 주소를 삭제하려고 했는데, 삭제 버튼이 회색으로 비활성화돼 있는 거야. 화면에는 친절하게도 “집 장소는 기본값이라 변경할 수 없습니다”라고 떠 있었어. 기본값이라며? 그럼 나는 운전하고 내비는 집에 살고 있나. 기본값이 그렇게 고집이면 차라리 내비가 나보다 생활을 오래한 것 같더라.
결국 타협을 시도했어. “집 말고 회사로 가자, 알겠지?”라고 하니까 내비가 잠깐 멈칫하더니 “네, 알겠습니다. 다만, 집을 거쳐 가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라고 하더라고. 거쳐 간다? 그 문장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 집을 거쳐 가면 회사가 바로 앞에 있어도 결국엔 집이 중간역이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효율”을 따지지 말고 “정확”을 원한다며, 경로를 완전 새로 잡았지.
새 경로 잡는 순간, 내비가 또 한 번 웃기게 굴었어. 방금까지 회사로 가던 길이었는데, 갑자기 도로 표지판이 아니라 내 화면에 뜨는 글씨가 먼저 바뀌더라. “현재 위치 기준: 집으로 복귀 가능” 같은 문구가 뜨는 거야. 복귀 가능이라니… 나는 지금 전진 중인데, 내비가 나를 게임 캐릭터 취급하는 느낌이었어. 그때는 진짜로 웃음이 나와서 “내비야, 내가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줄 알았잖아” 하고 혼잣말도 했지.
여기서 진짜 황당한 건, 차가 이미 목적지 근처까지 갔는데도 내비가 계속 집을 말로 불러줬다는 거야. 정확히는 회사 도착 2분 남았는데, 내비는 “곧 집 도착”을 예고하고 있었어. 그걸 들으면서 내가 회사 앞에서 내비 음성을 멈춰야 하나 고민했는데, 결국 회사 주차장 들어가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라고 정상 멘트를 했어. 근데 그 멘트 직전에 아주 짧게, 마치 유혹처럼 “원하시면 집으로도 안내해 드립니다”를 덧붙이더라.
그래서 결론은 하나야. 내비가 길을 잘못 외운 게 아니라, 내 생활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거지 뭐. 나는 매일 출근할 때마다 내비한테 “집은 아니고 회사”라고 말하는데, 내비는 그걸 “집을 가끔 빼먹는 사람”으로 기록한 것 같아. 오늘도 회사 도착하고 내비 화면을 보니까 ‘집’이 여전히 가장 먼저 떠 있더라. 그거 보니까 괜히 피식하더라. 내비가 나를 집으로 데려가려는 게 아니라, 내가 결국엔 돌아갈 곳이 집이라는 걸 너무 정확히 알고 있어서… 그냥 내가 길 위에서 내비한테 설득당한 하루였던 셈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