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에서 가져가신다더니 연락이 끊긴 물건들
당근에서 “가져가신다더니” 연락이 끊긴 물건들, 이런 거 한두 번 겪으면 그냥 취미가 아니라 생존 게임이 되더라구요. 저도 처음엔 “아 오늘 바쁘신가 보다” 이 정도로 넘겼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알림이 와도 반가운 게 아니라 “또 시작이네” 모드가 됐습니다.
첫 번째는 자전거용 헬멧이었어요. 상태 좋다고 사진 열 장 올려놨고, 가격도 동네 시세보다 살짝 낮췄거든요. 연락 온 분이 “저녁에 집 앞에서 가져갈게요”라고 딱 박아두고는, 정작 저녁 8시가 넘어도 말이 없었습니다. 확인하려고 톡하니 ‘읽음’만 찍히고, 다음 날까지 아무 응답이 없길래 “혹시 사정이 생기셨나요?” 했더니 그때도 결국 조용했어요. 헬멧은 그대로 방 한 켠에 남아 ‘당근의 유령’처럼 떠다녔습니다.
두 번째는 전자레인지였는데, 이건 또 가관이었어요. “가져가시는데 전용 박스 없어서 포장만 해두면 될 것 같아요”라고 하시더니, 제가 신문지랑 뽁뽁이로 열심히 감싸놓고 “이렇게 해뒀어요” 사진까지 보냈습니다. 근데 약속 시간에 맞춰 현관 앞에 두려는 순간부터 연락이 뚝 끊겼죠. 그 분 프로필엔 활동이 끊긴 게 아니라, 게임하듯 톡만 계속 하시는 것 같았어요. 전자레인지가 포장을 보고 감동받았는지, 그 뒤로도 계속 거기 있었고요.
세 번째는 소형 선풍기였어요. 솔직히 선풍기는 그냥 “필요하시면 가져가세요” 수준으로 올렸는데, 어떤 분이 “정말 급하게 필요해서 오늘 바로요”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몇 시쯤 오실까요?” 물으니 “지금 출발하고 있어요. 30분 안에 도착!” 이랬습니다. 근데 30분이 1시간이 되고 1시간이 2시간이 됐는데, 그분은 ‘지금 출발’만 계속 반복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기다리다가 그냥 하루를 날렸고, 그 선풍기는 다음 시즌까지 제 책상 위에서 “급하게 필요했던 물건”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는 카메라 삼각대였는데, 여기서부터는 거의 드라마였어요. 구매 의사가 확실하신 것처럼 대화가 길었고, “다 맞춰서 쓰려고 하는데, 나사 규격 확인 부탁드려요” 같은 디테일 질문도 했습니다. 제가 측정해서 답하고, 작동 영상도 올려드렸더니 “완전 감사합니다. 오늘 오후에 가져가겠습니다”라고 했죠. 근데 오후가 되자 갑자기 “차가 고장이 났어요”가 나오더니, 다음 톡에서는 “내일 시간 될까요?”로 바뀌더라고요. 내일을 또 잡았는데 또 비슷하게 연락이 끊겼습니다. 결국 삼각대는 제가 “언젠가 누군가의 인생샷을 만들어주겠지” 하고 창고로 이사시켜줬습니다.
다섯 번째는 명품 향수는 아니고, 그냥 “향 좋은 향수”였어요. 그래도 향수는 민감해서 택배 거래보다 직거래가 편할 때가 많잖아요. “직접 맡아보시고 결정하셔도 돼요”라고 했는데, 그 분이 “가져가신다더니”가 아니라 “향 맡고 바로 구매 확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미리 사용감 표시를 해두고, 뚜껑 닫힘 상태까지 사진으로 보여줬는데도, 약속 시간에만 사라지셨어요. 그 뒤로는 톡에 답이 없고, 한동안 제 채팅창만 새 메시지가 아니라 공백을 계속 떠안게 됐습니다. 향수 냄새는 당연히 버티는데, 제 인내심이 먼저 날아갔습니다.
여섯 번째는 아이 장난감이었는데 진짜 마음이 약간 울컥했어요. “주말에 아기가 가지고 놀 거라서 꼭 필요해요”라고 하시더니, 토요일 오전에 “지금 나왔어요”까지 보내놓고 연락이 끊긴 거예요. 근데 다음 날에도 답이 없고, 결국 장난감은 집에서 ‘아직도 장난감인데 왜 이렇게 긴 휴가 중이지?’ 싶을 정도로 대기 상태가 됐습니다. 저는 나중에 다시 올릴 때 적었습니다. “가져가신다 확정 시에는 시간 지켜주세요. 예약은 예약일 뿐입니다”. 괜히 굳이 쓰는 말 같지만, 이왕이면 마음 상하는 사람 줄이는 게 낫더라고요.
일곱 번째는 그냥 작은 가전인데, 이건 진짜 웃긴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무선 청소기 거치대를 팔았는데, “가져가신다”는 말이 너무 빠르고 확신에 차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오늘 저녁 방문 가능하세요?”라고 확인까지 했더니, “네네, 제가 가져갑니다. 걱정 마세요”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날 저녁에 아무도 안 오고, 다음 날 아침에 “어제 늦잠을 자서요”가 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톡에서 “괜찮으시면 내일 또요”로 넘어가더니, 결국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요. 거치대는 그대로 벽에 붙어있을 뻔했는데, 제가 결국 ‘내가 먼저 정리하자’ 하는 쪽으로 결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여운 남았던 건, 제가 “당근에서 연락 끊긴 물건들”이라고 제목을 붙이고 싶을 만큼 반복되었던 장면이에요. 다들 똑같이 “가져가신다”는 말을 하지만, 그 뒤에 남는 건 제 집 앞의 잠깐의 기대와 채팅방의 무응답, 그리고 택배도 아닌데 택배처럼 포장해둔 제 시간뿐이더라고요. 이제는 대화 시작할 때부터 “오실 시간 확정 + 도착 전 연락 가능” 같은 조건을 은근히 걸어두고, 애매하면 그냥 다음 손님 기다립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정말 가져가시는 분들은 오히려 더 성실하고요. 어쨌든 당근은 물건도 거래하지만, 사람의 성향도 같이 거래되는 곳이 맞습니다. 가끔 그 유령 같은 연락 끊김을 보면, 저는 그냥 피식하고 “오늘도 누군가의 ‘가져가신다’는 말이 증발했구나” 하고 넘기게 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