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유머/짤방 유머 추천 0

가족이 보내준 약이 내 자취방에만 도착함

2026-06-27 20:41:10 조회 2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가족이 보내준 약이 내 자취방에만 도착함. 정확히는 “오늘 받을 거야, 택배로 보냈어!”라는 메시지 하나로 시작했는데, 문제는 그 약이 우리 집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는 거였어. 엄마는 단체로 누구한테도 똑같이 보내는 줄 알았고,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아 알겠어~” 하고 끄고 잤지.

다음 날 아침에 현관 비밀번호가 찍히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열었는데, 기사님이 박스를 하나 딱 내밀더라. 내 이름으로. 박스 크기도 그렇고 포장도 “집안 어른이 챙겨주는 느낌”이 과하게 나서, 솔직히 기분이 좋았어. 근데 기분 좋은 게 5초였지. 옆집 친구가 우리 단톡에 방금 올린 캡처를 보여주는데, 거기엔 나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약 소식이 아무것도 없더라고.

엄마 단톡에 “나는 왜 아직이죠?” 같은 말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엄마는 “어제 보냈으니까 곧 도착해!”라고 답하고 끝이었어. 그 와중에 나는 박스를 열어보며 ‘아 이거 감기약이랑 비타민이구나’ 하고 정리하려는데, 상자 겉면에 적힌 배송 라벨이 유난히 또렷하게 보였어. 주소가 내 자취방 주소로 정확히 맞는데, 그 옆에 작은 글씨로 “수취인 부재 시 경비실 보관” 같은 문구가 있더라.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엄마, 이거 나한테만 온 거 맞지?”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봤지. 엄마는 “응? 아니, 다 보냈잖아. 너희 집이랑 동생이랑…” 이런 식으로 말하는데, 내가 알기론 엄마가 약을 보내려면 매번 주소를 확인하고, 택배회사에 접수해야 하거든. 그런데 왜 하필 내 자취방만 ‘부재 시 경비실 보관’ 같은 문구까지 제대로 들어가 있지? 뭔가 시스템이 나만 골라서 챙기는 느낌이 들었어.

동생한테도 연락했더니 동생은 “나 아직 아무것도 안 와. 엄마가 보냈대는 말만 들었어”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나도 더 이상 기분 좋을 수가 없었어. 박스를 들고 방에 들어와서 설명서를 펼쳐보는데, 내용물 중에 내가 평소에 먹던 알약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같이 먹는 처방에 가까운 구성이었어. 즉, 누가 보냈다기보단 “한 묶음”을 보낸 것 같은 느낌. 근데 왜 그 한 묶음이 내 집에만 딱 도착한 거야.

그때부터 나는 자취방이 뭔가 ‘가족 약 수령 센터’가 된 기분이 들었어. 하루 이틀 지나도 다른 집에는 도착한다는 소식이 없고, 엄마는 “혹시 택배사에서 주소를 잘못 찍었나?”라고 하면서도 별로 찾아보지도 않는 분위기였지. 나는 택배 앱으로 운송장 조회를 해봤는데, 배송 상태가 “수취인 부재”에서 “경비실 보관”으로 넘어간 다음, 바로 “배달 완료”로 끝났더라. 경비실이 있는 건 우리 건물뿐인데… 엄마가 실수했다기엔 너무 ‘건물 구조’까지 정확해.

그래서 결국 나는 택배사에 전화해서 확인하려고 했는데, 여기서 웃긴 포인트가 나와. 기사님이 내게 “약 맞으시죠? 이거 다른 집으로도 잘못 갈뻔했는데, 다행히 여기로 들어왔어요”라고 했다는 거야. 나는 “다행히요?” 하고 되물었고, 기사님은 “원래는 한 번에 여러 군데 넣는 건데, 그날 분류가 꼬였나 봐요. 근데 한 곳이 자취방 쪽이라 접수 정보가 바로 잡힌 것 같아요”라고 하더라. 그 말 듣고 나도 모르게 혼자 웃음이 나왔어. 약이 도착한 이유가 내 건강 때문이 아니라, 그냥 운송 시스템이 나를 착각한 거라니.

엄마는 나중에야 “아… 그러면 내가 주소를 한 곳만 다시 넣었나?” 하고 얼버무리는데, 나는 이미 박스를 다 뜯어버린 상태라 더 황당했지. 그렇다고 남들한테 몰래 나눠주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내가 약을 다 먹을 수도 없고, 그냥 처치 곤란이 생긴 거야. 결국 나는 설명서 보고 복용 가능한 기간이랑 성분 확인하고, 필요한 것만 내 것처럼 정리해두긴 했는데, 마음 한구석은 계속 찜찜했어. ‘가족이 보낸 건데 왜 나만 받았지’라는 그 찝찝함 말이야.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서 동생이 한 번 더 엄마한테 따졌고, 그제야 다른 집에도 늦게 도착했다는 소식이 왔어. 근데 도착한 약은 내가 받은 것과 모양이 조금 달랐어. 같은 처방이어도 포장 방식이 다르면, 그건 정말 다른 묶음이 도착한 거잖아. 나는 그때 깨달았어. 엄마가 보낸 게 ‘약 한 묶음’이었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배송이 꼬여서 내 자취방만 이상하게 정확히 맞아떨어진 거지. 그러니까 엄마의 사랑은 같은데, 택배의 운빨은 내 쪽으로만 몰린 거야. 나만 약 받는 집이 아니라, 내 건물만 택배사 실수의 최종 목적지였던 셈이랄까.

그래서 지금도 가끔 생각나. 가족이 “약 보냈어”라고 말하면 나는 먼저 주소 확인부터 하고, 혹시 몰라 택배 앱도 켜둬. 기분 나쁜 게 아니라, 그냥… 내 자취방이 의외로 ‘배송 버퍼’ 역할을 하는 것 같아서. 오늘도 현관 앞에서 택배가 뒹굴면 설레기보단 “아 또 내가 이번 주 운송오류 담당인가?” 싶거든. 근데 웃긴 건, 그 담당이 된 덕분에 나는 감기 걸릴 타이밍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는 거야. 사랑도 운도 결국은 한 박스 안에 들어오나 봐.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