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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생의 택배 수령: 문 앞에 또 없어짐

2026-06-28 00:41:11 조회 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자취 3개월차인데, 제 인생의 가장 큰 스릴은 “택배 기사님이 문 앞에 놓고 가셨습니다” 그 한 줄이 아니라, 그 한 줄이 끝나기 전에 이미 제 택배가 증발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예외 없이 그랬죠. 분명 현관 앞에는 없고, 알림에는 또 “문 앞 보관 완료”라고 찍혀 있고, 저는 혼자 집에서 범죄 수사물 찍는 기분으로 문 앞만 바라봤습니다.

처음엔 당연히 제가 깜빡했겠지 싶었어요. 택배가 오면 현관문 열고 받을 때까지의 제 동선이 대단히 과학적이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신발장, 현관 매트, 택배함이 있으면 거기, 심지어 벽에 기대어 있는 먼지 더미까지 싹 훑어봤습니다. 그런데도 없어요. “혹시 다른 동/호수에 착각하신 건가?”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제 마음이 더 빨리 식더라고요. 자취생은 거짓말도 혼자서 감당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였어요. 앱에는 배송 사진이 있거든요. 하필이면 사진 각도가 너무 예술입니다. 문 앞에 박스가 딱 있는 듯 보이는데, 사진 속 저는 현관문을 열고 있지도 않아요. 박스가 문턱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 문 앞은 유난히 깨끗합니다. 저는 사진을 확대해서 박스 로고 글씨를 읽어보려다 포기하고, 대신 바닥의 빛 반사에서 제 택배의 그림자를 찾아보는 쪽으로 진화했어요.

관리실에 물어보면 될 것 같은데, 이게 또 자취생의 숙명이더라고요. 관리실 아저씨는 “네? 그런 건 없는데요”라고 말할 때 늘 확신이 너무 커요. 마치 세상 모든 택배를 자신이 이미 분류해놓고 있다는 듯이요. 그래서 저는 “혹시 제 거 다른 데 두셨나요?”라고 묻는 순간, 제 목소리가 자동으로 작아집니다. 자취생은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스스로의 체면을 반으로 접거든요.

그리고 저는 결국 같은 상황을 반복해온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택배 기사님께 직접 전화할까 고민하다가, 괜히 화내면 제가 더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참았어요. 대신 문자로 “문 앞에 혹시 놓일 만한 곳이 따로 있는지”를 물어봤죠. 다음 날 답장이 왔는데, 내용이 딱 이랬습니다. “현관 앞에 놓고 갔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그걸 믿으려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입니다. 사진은 있는데, 제 집엔 없어요.

그럼 어디로 갔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늘 여러 갈래인데, 공통점은 제가 지는 구조예요. 누군가 가져가서일 수도 있고, 바람에 밀려서 옆에 붙었을 수도 있고, 같은 건물에 사는 누가 “저거 내 거 같은데?” 하고 착각했을 수도 있죠. 그런데 제가 진짜로 화나는 건 이유가 아니라, 그걸 제가 추적해야 한다는 과정이에요. 택배를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라, 증거를 모으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니까요.

어느 날은 아예 ‘택배 분실 방지’ 모드로 전환했습니다. 받는 사람 이름을 정확히 쓰고, “문 앞 말고 경비실/택배 보관함에”라고 메모도 남기고, 심지어 현관 앞에 작은 표지판도 만들어놨어요. “여기! 문 앞! 절대 가져가지 마세요!” 같은 느낌으로요. 다음 배송 알림이 뜨자마자 심장이 쿵 했는데, 문제는 또 사진입니다. 이번엔 박스가 놓인 위치가 또 달라요. 제 표지판은 사진 밖에 있고, 박스만 아주 단정하게 어디론가… 그러더니 이번엔 아예 “상대 주소로 전달”이라고 떠요. 제 표지판은 열심히 일하다가 실직한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결론을 내렸어요. 제 집 현관은 택배가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택배가 통과하는 공간이라는 겁니다. 입구가 ‘문 앞’인 순간, 그다음은 이미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거죠. 저는 마치 자취생 차원문 앞에서 주문한 물건이 사라지는 걸 보는 우주론자가 된 기분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택배를 기다릴 때도 행복하기보다 “오늘은 어떤 버전으로 사라질까”를 상상하게 됐어요. 분실, 오배송, 사진 편집, 혹은 어떤 날은 아예 ‘배달 완료’ 대신 ‘보관 중’ 같은 희망적인 단어가 뜨기도 하거든요. 그때 잠깐 마음이 살아납니다.

근데요, 진짜 웃긴 건 마지막에 언제나 제가 다시 구매 버튼을 누른다는 거예요. “다음엔 안전한 배송 방식으로 할게”라고 다짐하면서도, 막상 쇼핑몰 장바구니가 채워지면 또 정신을 놓습니다. 오늘도 알림이 왔거든요. “문 앞 보관 완료.” 저는 현관문을 열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 수사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박스가 보이더라고요. 문 앞이 아니라, 제 놀이터였던 쓰레기 분리대 옆에 딱 붙어 있었습니다. 누가 가져간 게 아니라, 그냥 바람 한번에 ‘숨바꼭질’이 된 거죠. 저는 그 순간 피식 웃었고, 동시에 깨달았습니다. 제 택배는 분실된 게 아니라, 제가 이제야 겨우 찾을 수 있는 위치로 ‘진화’하고 있었던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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