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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프린터 고장 났는데 내 탓으로 결론남

2026-06-30 00:41:21 조회 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회사에서 프린터 고장 났는데 내 탓으로 결론남

오늘 아침부터 분위기가 이상했어. 평소에 사람들 프린트 몰리면 “야, 오늘도 급한 거 많다” 같은 말이 오가는데, 그날은 그냥 조용했거든. 다들 한 번씩 프린터 앞에 서서 뭔가를 확인하고는 바로 뒤로 물러나는 표정이었어. 나는 “또 용지 걸렸나?” 하고 봤는데, 전면 패널에 빨간 경고등이 계속 켜져 있고 화면은 이상하게 멈춰 있었어.

문제는 그게 내 자리 바로 옆이라서 시작부터 내가 ‘용의자’ 포지션이 된 거야. 출근하자마자 팀장님이 커피 들고 프린터 쪽으로 오시더니, 한마디 하시고 가버리셨거든. “어제 누가 여기 만졌어?” 이 말 한 문장에 공기 전체가 휘청했다. 나는 어제 퇴근할 때도 프린터를 만지긴커녕, 내 작업용 문서도 다 이메일로 보냈는데.

그러고 얼마 뒤에 실제로 프린트가 필요한 사람이 나타났어. 품의서 출력해야 한다고 급하게 찾더니 프린터에 넣는 순간, 또 그 특유의 “윙—” 하고 끊기는 소리.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으면 자동으로 얼굴을 프린터 쪽이 아니라 옆사람 쪽으로 돌리잖아. 그때 누가 내 쪽을 툭 봤고, 나는 뭔가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상황이 굳어지는 걸 느꼈어.

그래서 내가 “혹시 용지 부족인가요? 급지 쪽 한번 확인해볼까요?” 하고 다가가자, 다들 갑자기 친절해졌어. 친절의 결이 달라. “너가 봐봐, 너 컴퓨터 잘 하지 않나.” 이 말이 진짜 치명적이야. 컴퓨터 잘한다는 건 프린터도 잘 고친다는 뜻이 아니거든. 근데 회사에서 누가 설명해주냐, 그냥 ‘아는 사람’으로 지정해버리지.

나는 패널을 눌러보고, 용지함도 열어봤어. 용지는 충분했고, 찢어진 종이도 없었고, 롤러 쪽에 먼지 잔뜩 끼어 있는 것도 아니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급지 센서가 인식을 안 하는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전원 껐다 켜면 될 수도 있어요” 했는데, 팀장님이 그걸 듣고 바로 “아, 어제부터 이상했다며? 그때 너 있었잖아” 이렇게 연결을 시켰지. 어제 내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프린터 앞에서 손댄 건 아니잖아.

여기서부터 내 탓으로 결론이 나는 속도가 빨라졌어. 사람들은 증거를 찾는 게 아니라, 결론을 정해놓고 거기에 끼워 맞추더라고. 누가 “너 어제 출력 버튼 연타했지?”라고 말했는데, 나는 어제 출력 버튼을 연타한 적이 없어. 그런데 누가 그걸 ‘봤다’고 말하면, 그 순간부터 기억은 진실이 아니라 이야기로 바뀌더라. 난 분명 ‘문서 보낸 사람’이었지 ‘프린터 조작자’가 아니었다는 걸 계속 되뇌는데도 소용이 없었어.

결국 점심 전에 IT팀에 연락했는데, 돌아온 답이 더 웃기더라. “프린터 자체 오류 코드가 떠서 소모품이나 센서 점검이 필요할 수 있어요. 어제 누가 만졌는지는 확인이 안 됩니다.” 이 말 들으면 보통 ‘아 그럼 아니었네’로 정리되어야 하는데, 우리 팀은 거꾸로 갔어. “봐, 확인이 안 되면 네가 만진 걸로 보이지 않냐?” 이런 논리로 분위기가 확 기울어버렸지.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모두가 어색하게 웃더라. 웃음이란 게, 사실상 ‘끝났어’라는 사인 같았어.

그래서 난 그냥 조용히 정리해버렸어. 내가 프린터 앞에 서서 “오늘은 출력 안 돌릴게요. IT 올 때까지 임시로 PDF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했더니, 그제야 다들 한숨을 쉬었어. 임시방편이 먹히니까, 갑자기 내 역할이 ‘문제 해결사’로 바뀐 거지. 근데 이게 또 문제였어. 문제는 프린터가 고장 났다는 사실보다, 사람들이 고장을 고장으로 안 보고 ‘내가 뭘 했나’로 보는 게 더 무서웠어.

오후에 IT팀이 오더니 프린터를 점검하고 나서 하는 말이 딱 그거였어. “이건 급지 센서 문제라서 외부 조작이 아니라 내부 오류일 가능성이 커요. 그리고 어제 누가 만졌든 상관없어요.” 그 순간 내 앞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종이처럼 얇아졌어. 눈빛이 ‘우리가 너무 성급했나?’로 변하긴 했는데, 이미 결론은 말로 퍼져 있었거든. 사람들은 사과를 하기 전에 이미 다른 이야기를 시작해버리는 재주가 있더라.

결국 프린터는 고쳐졌고, 나는 점심에 잠깐 “역시 네가 잘하네” 소리도 들었어. 근데 그 소리가 기분 좋기보단 약간 씁쓸했지. 회사라는 곳은 고장 난 장치보다, 고장 원인을 찾는 방식이 더 빨리 고장 나더라고. 오늘도 프린터 앞에 빨간 경고등 켜지면, 나는 자동으로 떠오를 거야. 왜냐면 누가 먼저 결론을 내리면, 그 결론이 제일 빨리 출력되니까.
그래서 난 이제 프린터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만 이렇게 외쳐. “난 네가 고장 났다는 걸 알려줄 뿐이야… 내가 원인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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