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에서 전자레인지 돌리면 와이파이가 죽음
자취방에서 전자레인지 돌리면 와이파이가 죽음. 이게 그냥 기분 탓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매번 똑같이 벌어져서 이제는 “그 시간엔 인터넷이 먼저 죽고, 내가 나중에 멘탈이 죽는다” 수준이 됐어요.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죠. 어느 날 저녁에 라면 데우려고 전자레인지 버튼 누르는 순간, 와이파이 아이콘이 톡 하고 사라지더라고요. “어? 공유기 리셋됐나?” 하고 공유기 위치도 확인하고 전원도 봤는데, 전원은 멀쩡했고 공유기는 생생했어요. 그런데 제 폰만 갑자기 인터넷이 끊긴 느낌. 와이파이는 살아 있는데, 나만 못 쓰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실험을 했습니다. 일부러 일부러요. 전자레인지 안 돌릴 때는 유튜브도 잘 보고, 배달앱도 잘 되고, 심지어 라디오도 스트리밍 되는데, 전자레인지에 “10초”만 눌러도 바로 똑같이 끊겼어요. 딱 10초. 그리고 전자레인지가 멈추고 나면, 다시 3~5초 정도 있다가 와이파이가 돌아옵니다. 마치 전자레인지가 타이밍을 재고 “이제 인터넷 시간 끝” 선언하는 것처럼요.
처음엔 전자레인지 전자기파 때문인가 싶어서 창문 열고, 공유기 위치 바꾸고, 멀티탭도 바꿔봤는데 효과가 없었습니다. 공유기랑 전자레인지 사이 거리는 생각보다 멀어요. 거실 끝이랑 부엌 끝? 그래도 돌리는 순간 똑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공유기 때문이 아니라, 제 자취방 자체가 전자레인지에 종속된 느낌입니다. 제가 먹여 살리는 게 아니라 전자레인지가 공유기를 먹여 살리는… 뭐 그런 느낌.
어느 날은 더 확실해졌어요. 제가 시험 삼아 전자레인지 버튼을 누르기 전에 휴대폰을 들고 와이파이 상태 확인 화면을 켜뒀거든요. 버튼 누르는 순간, 연결됨→연결 안 됨이 아니라, 진짜로 화면이 “와이파이 연결 상태가 불안정합니다” 같은 문구로 바뀌더라고요. 그리고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동안은 와이파이가 죽어 있으니까,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건… 음식을 기다리는 것뿐. 결국 저는 대기 모드에서만 삶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물론 인터넷 끊겼다고 크게 불편한 건 아닙니다. 다만 자취방에서 제일 중요한 건 “배달앱” 아니겠어요? 라면을 데우는 중에 배달앱을 켜서 음료 추가하려고 하면, 전자레인지 돌리는 순간 모든 게 멈춰요. 그래서 저는 항상 순서가 생겼습니다. 전자레인지 돌리기 전에 주문 완료. 전자레인지 돌린 다음에는 그냥 멍하니 기다리기. 마치 요리사가 칼을 들기 전에 이미 모든 양념을 끝내야 하는 고급 레스토랑처럼, 제 자취방도 매번 의식이 있어요.
이상한 건, 전자레인지가 오래 돌릴수록 인터넷이 더 오래 죽는다는 거예요. 1분 돌리면 1분 내내 끊김, 3분 돌리면 3분 내내 끊김. 그러다 전자레인지가 “삐-”하고 끝나면, 그제야 와이파이가 다시 살아납니다. 제 폰이 전자레인지 소리에 맞춰 숨을 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처음엔 장난 같았는데, 이제는 좀 무섭습니다. 전자레인지가 끝나는 소리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이제 연결됩니다”가 아니라 “끝났네… 살아나자…”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마지막엔 결론을 내렸죠. 제 자취방 와이파이는 전자레인지가 켜질 때마다 절전모드에 들어간다. 아니면 공유기가 아니라, 제 방의 공기가 와이파이를 배신하는 겁니다. 어쨌든 전자레인지를 켜는 순간 제가 받을 수 있는 건 음식뿐이고, 데이터는 이미 포기해야 해요. 결국 요즘 저는 라면을 데우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항상 “오늘도 와이파이에게 굽신” 하고 전자레인지 버튼을 눌러요.
근데 이게 제일 웃긴 게, 저는 그 전자레인지 덕분에 요즘 손이 빨라졌어요. 예전엔 “아 배고프다” 하면서 멍 때리다가, 주문하고, 검색하고, 고르고 하느라 늦었거든요. 이제는 전자레인지 누르기 전에 다 끝내야 하니까, 자연스럽게 생활이 정리됩니다. 그러니까 자취방 와이파이 죽는 게 불편한 건 맞는데… 덕분에 제가 제일 먼저 끊기는 건 인터넷이 아니라, 제 게으름이더라고요. 전자레인지가 끊어주는 건 Wi-Fi가 아니라 제 시간 같아서, 오늘도 라면은 뜨겁고 제 생활은 이상하게 반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