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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으로 산 선반이 내 체중을 시험함

2026-07-02 05:41:13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당근으로 산 선반이 내 체중을 시험함. 진짜로요. “튼튼해요” 한마디에 혹해서, 새벽에 계단 오르내리며 집까지 들고 온 그 선반이… 설치하는 순간부터 제 몸무게를 정밀 심사하듯 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별일 없었어요. 택배도 아니고 직접 거래라 박스가 없었는데, 판매자님이 “나사만 잘 쓰면 됩니다”라고 해서 저도 “네네 알겠어요” 하고 받았죠. 근데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느낌이 오더라고요. 철제 프레임인데도 묘하게 흔들림이 있었어요. 그래도 당근은 늘 적당히 과장과 적당히 진실이 섞인 세계니까, 저는 그냥 “설치하면 잡히겠지” 하고 넘겼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설명서 같은 건 없어서 유튜브를 켰어요. 선반 설치법이야 다 비슷하겠지 하고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나사를 조이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선반이 “아, 이 사람 손 힘은 어느 정도네” 같은 눈치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는 겁니다. 나사 하나 돌릴 때마다 어딘가가 미세하게 반응하더니, 끝나기도 전에 이미 제 손목이 알아채더라고요. “이건 가볍게 만들었는데, 무게는 생각보다 잘 버티는 타입이네.”

가장 먼저 올라간 게 뭐였냐면요, 양념통들이었습니다. 무게야 뭐… 솔직히 말하면 시험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은 단계죠. 저는 진짜 무심하게 “하하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하고 선반 위에 양념통, 작은 휴지, 물티슈까지 차곡차곡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선반이 아주 천천히, 진짜 천천히 흔들렸어요. ‘덜컹’이 아니라 ‘흔들…흔들…’ 이 감정이 느껴질 정도로요.

저는 그 흔들림을 “바닥이 평평하지 않아서 그래”라고 합리화했습니다. 그래서 다이소에서 받침 고무를 사다가 하나씩 대 보면서 교정을 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교정이 될수록, 선반이 더 또렷하게 제 몸을 기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누가 제 선반을 설치해주면 ‘정렬 완료’ 같은 안내 멘트를 해줘야 하는데, 제 선반은 그냥 제 행동을 관찰하는 기분이었어요.

결국 제가 진짜로 시험을 당하게 된 건, 제가 선반 앞에 서서 물건을 찾다가 “아 그냥 나 여기 기대면 되겠지” 하고 팔꿈치로 프레임을 툭 밀었을 때였습니다. 그 순간 선반이 살짝 내려앉더니, 딱 한 번, 아주 깔끔하게 “이번엔 네 차례야” 표정을 지었습니다. 소리는 작았는데 체감은 컸어요. 저는 얼른 손을 뗐고, 선반 위에 있던 것들이 먼저 ‘여기서 다 떨어질까?’ 같은 공포를 연기했지만 다행히 그대로였죠.

그 다음엔 저는 조금 더 무모해졌습니다. 인간이란… 한 번 놀라면 그걸 ‘아슬아슬하게 버틴 거’로 착각하잖아요. 그래서 이번엔 책을 올려봤어요. 얇은 책부터 시작해서 점점 무게를 올리는데, 선반이 흔들릴 때마다 제 머릿속에 판매자님 목소리가 재생됐습니다. “튼튼해요.” 근데 그 말이 이제는 좀 다른 의미로 들리더라고요. 튼튼한 게 아니라, 버티는지 계속 테스트하는 타입… 그런 느낌이요.

책 올리는 걸 끝내고 저는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확인을 시켰습니다. “이제 됐겠지?” 그리고 그 확인이란 게 문제였습니다. 선반 옆에 기대서 몸을 한 번 더 옮기려는 순간, 철제 프레임이 아주 미묘하게 비틀렸어요. 그때부터는 선반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 제 신경이 먼저 흔들렸습니다. 저는 바로 손으로 프레임을 잡고 균형을 잡았고, 그 와중에 선반이 또 한 번 내려앉았다가 ‘아차’ 하고 멈추는 듯한 느낌을 줬죠. 마치 시험 종료 휘슬을 기다리는 학생처럼요.

결국 저는 선반을 뜯어서 다시 조립했습니다. 나사 위치를 바꿔보고, 프레임 각도를 맞춰보고, 고무 받침도 새로 깔아보고요. 그리고 이번엔 물건을 더 무겁게 올리기 전에 한 가지를 했습니다. 저는 선반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어요. “너도 알지? 내 체중이 아니라, 내 인내심이 한계가 올 때가 있다는 걸.” 그러자 선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제 자리에서 버텨주더라고요.

이제 그 선반은 집에서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여전히 그 선반을 볼 때마다 예전의 그 순간을 떠올려요. 당근으로 산 물건이 내 체중을 시험한다는 게 이렇게 현실감 있게 다가올 줄은 몰랐거든요. 그리고 매번 똑같은 결론으로 끝나요. 튼튼하다는 말은 믿되, 기대는 건 또 다른 계약이라는 것. 그래도 가끔은 선반이 “다음 시험은 언제 할 거야?” 하는 표정으로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아주 가볍게 물건만 올립니다. 내 체중은 소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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