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중에 상대가 내 가족 사진을 저장해둠
연애 중에 상대가 내 가족 사진을 저장해둠. 처음엔 그냥 “귀엽다” 수준인 줄 알았거든요. 데이트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카톡 대화방 상단에 뜬 상대 프로필 옆에 제 사진이 하나더라구요. 뭐지 싶어서 눌러봤는데, 제 휴대폰에 있던 가족 단체사진이더라고요.
그날은 별생각 없이 넘기려 했는데, 다음 날부터가 문제였어요. 제가 “우리 가족 사진은 왜 저장해뒀어?”라고 가볍게 던졌거든요. 그러자 상대가 “아, 그거? 너랑 닮아서 저장해뒀지” 이러는 거예요. 닮았다는 말은 이해해요. 근데 저장해둔 방식이 좀… 너무 체계적이었어요.
제가 사진 앨범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봤는데, 상대가 저장해둔 제 가족 사진이 날짜별로 쌓여 있었어요. 제 어릴 때 사진도 있고, 명절 때 찍은 사진도 있고, 심지어 제가 올렸던 생일 케이크 사진까지. 저는 “내가 뭘 올린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디테일까지 맞춰져 있더라구요. 그때부터 소름이 슬슬 올라왔습니다.
물론 연인 사이에 캡처나 저장 정도는 흔하잖아요. 근데 저는 저장의 ‘의도’가 궁금했어요. 상대가 “너네 가족이 너무 따뜻해 보여서”라고 말했는데, 그 다음 말이 더 웃겼습니다. “나중에 너 결혼하면… 그때도 이 사진들 보면서 마음이 안정될 것 같아서.” 이러는데, 안정될 것 같아서가 갑자기 너무 서류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침착하게 다시 물어봤어요. “그럼 너는 내 가족이랑도 이미 친해진 느낌이야?”라고. 상대는 “아니, 친해진 건 아니고… 그냥 기록해두고 싶었어”라고 하더라고요. 기록이라는데, 기록의 목적이 너무 ‘개인 아카이빙’ 느낌이랄까요. 저는 내 사진은 내 폰에만 있어야 한다는 고집이 있거든요. 그 고집이 갑자기 이유 없이 맞아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한 번은 길가에서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이 뭐였지?” 같은 얘기를 하다가, 상대가 제 엄마 얼굴이 나온 사진을 바로 꺼내 보여주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제가 “아니 그건 왜 지금 꺼내?”라고 하니까 상대가 “너 엄마 표정이랑 똑같이 말하길래, 그게 떠올라서” 이러는 거예요. 진짜로 떠올라서인지, 아니면 사진을 찾아서 떠올린 건지, 그 경계가 애매했어요.
그래도 저는 대놓고 따지기보단 마음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저장해둔 건 고마운데, 적어도 먼저 물어봐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상대가 잠깐 멈칫하더니, “미안… 그 생각을 못했어. 너는 불편할 수 있겠구나”라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여기서 저는 안심했어요.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화가 되니까요.
근데 그 뒤로도 한 가지가 계속 걸렸습니다. 상대가 “다 삭제했어”라고 말하면서도, 제가 다른 날 앨범을 확인해보니까 가족 사진이 또 보이더라고요. 제가 “방금 삭제했다며?”라고 하니까 “응, 근데 내가 본 게 있어서 다시 저장된 것 같아” 이러는 거예요. 본 게 있어서 다시 저장… 그 말이 너무 귀엽게 들리다가도, 동시에 완전히 이해가 안 됐어요.
결국 저는 타협을 봤어요. “사진 저장은 괜찮은데, 가족 사진처럼 민감한 건 공유하는 방식으로 하자. 네가 보고 싶으면 내가 보여주고, 너는 그때 같이 보기만 하면 돼.” 이 말에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오케이, 나도 그게 편하겠다”라고 하더라고요. 이후로는 가족 얘기 나오면 사진을 즉시 꺼내는 대신, “그날 너 표정이 그랬잖아” 같은 식으로 말해줘서 훨씬 마음이 편해졌어요.
근데 가끔 생각나요. 연애할 때는 “휴대폰 비밀번호 공유할래?” 같은 거보다, “가족 사진은 왜 저장해뒀어?” 같은 게 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때의 제 마음은 정말 ‘가족사진이 내 동의 없이 남의 앨범에 들어갔다’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아무리 사랑해도, 사진은 결국 본인 허락이 먼저라는 걸 배웠습니다. 그리고 상대는 지금도 가끔 “너네 가족 사진은… 왜 이렇게 다 예쁘냐”를 말하다가, 제가 한 번만 눈치 주면 바로 “아 그건 말만 할게” 하고 도망가요. 그 모습이 또 은근히 귀여워서, 결국 결론은 피식…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