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에 이사 온 줄 알았더니 곰팡이가 이사왔음
자취방에 이사 온 줄 알았더니 곰팡이가 이사왔음. 진짜로요. 이사 상자 내리기도 전에 벽에서 뭔가 “안녕하세요” 하는 느낌이 들길래, 설마 창문 틈에서 바람이 드는 거겠지 했는데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벽지가 좀 눅눅한가 싶었거든요. 근데 그 눅눅함이… 시간이 지나면서 성격을 바꾸더라고요.
처음 입주할 때는 대충 “도배한지 얼마 안 됐겠지”라고 믿었습니다. 관리사무소에서 “깨끗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저는 인간의 순진함을 한 번 더 확인했죠. 짐을 놓고 전기 연결하고, 냉장고 문 열고, 이런 자취 루틴을 다 돌렸는데도 자꾸 냄새가 코끝을 찔렀어요. 비가 온 다음 날 같은데, 문제는 비가 안 왔다는 거. 공기 중에 이미 습기가 차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물티슈로 벽을 살짝 닦아봤습니다. 닦였냐고요? 아니요. 더 번졌습니다. 물티슈가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는 스위치처럼, 문지르는 순간 “드디어 발견했네” 하는 듯이 점점 진해지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곰팡이가 단순한 얼룩이 아니라 “거주자”라는 걸 받아들였습니다. 얼룩은 그냥 더러움인데, 곰팡이는 뭔가… 생활을 하더라고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저는 매일 벽을 확인하게 됐어요. 아침에 안 보였던 게 저녁엔 조금 늘어있고, 제가 못 본 사이에 모양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지도를 펼치듯이 벽을 관찰하게 됐는데요, 참 이상하죠. 자취하면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건 집 정리잖아요. 근데 저는 집 정리보다 “침투 상태 확인”을 먼저 하게 됐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다들 “곰팡이는 빨리 잡아야 한다” “제거제 써라” “환기해라” 이 세 줄로 끝내더라고요. 환기? 그럼 제가 매일 창문 닦고 있진 않잖아요… 현실은 새벽에 비슷한 습도만 반복될 뿐. 제거제는 샀는데, 바르는 순간 냄새가 확 올라와서 “내가 곰팡이를 이기려다가 내 코를 전장으로 만들고 있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자꾸 불안해져서, 결국 저는 장갑 끼고 박박 문지르기 시작했어요.
근데 문제는 ‘문지르면 끝’이 아니라는 거. 겉면이 좀 정리되는 것 같아도, 며칠 뒤 다시 흔적이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곰팡이가 저를 상대로 싸움 걸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제가 닦으면 더 똑똑하게 번지고, 제가 바르면 더 끈질기게 남고, 제가 열심히 환기시키면 그 습기를 어디선가 끌고 와서 또 자리 잡는 느낌. 진짜로 곰팡이가 제 자취방에 적응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이사 온 건 나인데, 분위기는 곰팡이가 집주인 같음.
관리사무소에 연락했더니 “습기가 원인이니 생활 습도 관리 부탁드립니다”라는 답이 왔습니다. 네, 제가 습도 관리를 못해서 곰팡이가 생겼겠죠. 근데 제가 보기엔… 곰팡이도 습도 관리가 잘 됐습니다. 저보다 더. 게다가 벽 한쪽이 아니라 창가 쪽부터 시작해서 점점 범위가 넓어지는데, 이건 누가 봐도 “정식 입주 루트”가 있더라고요. 창문 틈, 결로 라인, 벽지 밑… 마치 곰팡이 전용 출입구를 제가 모르는 사이에 열어준 것 같았습니다.
결국 큰 마음 먹고 곰팡이 제거제를 다시 사서, 가장 심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처리했는데요. 그날 밤이 진짜 영화 같았어요. 방이 하얗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뭔가… “일시 정지” 같은 느낌이랄까요. 다음 날 아침에 보니 확실히 조금 옅어져 있었거든요. 저는 그걸 보고 너무 좋아서 혼자 승리 선언까지 했습니다. 근데 그건 착각이었어요. 시간이 지나자 다시 작은 점들이 생기더니, 그 점들이 모여서 예전 모양을 재현하더라고요. 곰팡이는 복원에 강한 편인가 봅니다.
그래도 포기하진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완전 박멸’이 아니라 ‘제어’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환기를 더 자주 하고, 제습기를 써보고, 벽지 상태를 계속 체크하면서 생활 습도를 관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지금 싸우는 대상이 곰팡이가 아니라, 내 방의 구조와 계절이 합친 조합이라는 거. 즉, 곰팡이는 악역이 아니라 “환경이 만들어준 공동주거자”인 셈이죠.
그리고 어느 날, 벽을 보다가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이사 온 곰팡이가 나갈 때까지 내가 여기서 같이 살아야 하나?” 싶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그럴듯한 결론이 나왔어요. 자취방이란 게 원래 혼자 사는 집인데, 저는 이미 혼자가 아니었던 겁니다. 곰팡이라는 새로운 룸메이트가 생겼고, 우리는 서로 눈치 보며 공존 규칙을 만들고 있는 중. 오늘도 벽을 확인하지만, 이제는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괜히 인간이 이사 온 줄만 알았지, 사실은 곰팡이도 퇴근하고 집에 오는 생활을 하고 있더라는 생각이 들면서요. 그러니까… 다음번 이사는 제가 먼저 “습도 관리 숙지 완료”하고 인수인계 받는 걸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