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면서 처음으로 ‘너무 편한 사이’가 됨
연애하면서 처음으로 ‘너무 편한 사이’가 됨. 이게 뭐냐면, 서로를 사랑하는 감정이 식었다기보단… 일상에서의 “어, 나 지금 너한테 무슨 표정 보여주지?” 같은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랄까.
처음엔 둘 다 나름 조심했어요. 데이트 가면 핸드크림도 챙기고, 통화할 때도 “지금 뭐해?”에 답을 너무 빨리 안 하려고 애쓰는(?) 그런 단계가 있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활 루틴이 합쳐지기 시작하더니, 그때부터 진짜 ‘너무 편한 사이’가 시작됐습니다.
가장 결정타는 아침이었어요. 원래 연애 초반엔 같이 아침 먹으려고 하면 서로 텐션이 올라가잖아요. 근데 어느 날 제가 일찍 일어나서 커피 내리고 있는데, 상대가 뒤에서 그냥 말 없이 꿀잠 자는 척하는 거예요. 근데 커피 냄새 맡고 “나 오늘도 출근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커피는 왜 이렇게 잘 넘어가요?” 이러면서 웃더라고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린 서로의 일상도 숨기지 않는 사이라고.
그 다음은 집안일 케미였는데, 이게 또 웃긴 게 서로가 서로를 “상대방”이 아니라 “같이 사는 사람”처럼 취급해요. 저는 설거지할 때 그릇을 놓는 순서가 있는데, 어느 날부터 상대가 그걸 자기 스타일대로 바꿔버리더니 “이게 더 편해요” 하고 끝. 저는 뭐라고 항의하려다 말았어요. 왜냐면 제가 사실 설거지할 때도 상대가 싫어하는 스펀지 사용하고 있었거든요. 서로가 서로를 교정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굴러가는 거예요.
또 하나는 대화 방식. 연애 초반에는 상대가 무슨 말 하면 “오… 그거 진짜야?” “어떻게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런 질문이 자동으로 나왔는데, 지금은 말의 앞부분이 생략돼요. 예를 들어 제가 “오늘 진짜…” 하면 상대가 바로 “아, 그거 또 그 사람 때문에?” 하고 이어 말합니다. 그리고 제가 “맞아”라고만 하면 “그러게, 너 그럼 그냥 오늘은 쉬어” 이러면서 결론을 내려요. 대화가 대본처럼 흘러가요. 알고 보면 서로의 생각을 맞히는 게 아니라, 그냥 서로의 평소 패턴을 읽게 된 거죠.
물론 편해지면 귀여운 사건도 생겨요. 어느 날 저는 옷장에서 양말을 찾다가 “없네?” 하고 소리 냈는데, 상대가 침대에서 일어나서 던지듯이 “여기요” 하고 양말 한 짝을 내밀더라고요. 근데 그 양말이 제 사이즈랑 무관하게 딱 맞는 거예요. 제가 “이거 너 거 아니야?” 했더니 상대가 “나는 너랑 같은 거 신게 돼요. 어차피 다 비슷하잖아” 이러는데, 웃겨서 화가 안 나요. 오히려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해져요. 편한 사이가 꼭 무심함만은 아닌가 봐요.
근데 진짜 ‘너무 편한 사이’는 그날 이후로 더 심해졌습니다. 제가 샤워하고 나오는데 수건을 대충 머리에 얹고 있는데, 상대가 거실에서 “나 지금 머리 말리면 돼요?”라고 묻는 거예요. 제가 “응?” 했더니 “아니, 당신 머리 말리는 방식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젠 내 것도 그 방식으로 해도 되는지 확인하려고요” 이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그 순간 저는 속으로 “아… 이제 우린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공유 폴더처럼 쓰는구나” 싶었어요. 사랑이란 게 확실히 설명이 안 되는 방식으로 습관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제일 웃긴 건, 싸울 일이 있어도 방식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연애 초반엔 섭섭하면 말도 길고 감정도 많았는데,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어… 지금 이 톤이면 너 피곤한 거지?” “응, 방금 연락할 때도 사실은 짜증났던 게 아니라 그냥 지친 거야” 이렇게 정리돼요.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바로 수습하는 게 능숙해졌달까요. 그래서 싸움이 커지기 전에 끝나요. 근데 그게 또 안정적이어서 좋긴 한데, 한편으론 “우린 갈등도 팀플로 하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요약하면, 저는 연애하면서 처음으로 ‘너무 편한 사이’가 됐고,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배웠습니다. 물론 가끔은 “나 오늘은 좀 멋있게 보일까?” 같은 마음도 사라지지만, 대신 상대가 제 무너지는 날도 그냥 안아주더라고요. 그리고 어느 날은 제가 수건을 머리에 덮은 채로 머리카락이 좀 엉켜 있는 상태로 거울을 보고 있었는데, 상대가 지나가다 한 마디만 해요. “완전 괜찮아요. 당신은 원래 멋부리려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같이 있으면 분위기가 되는 사람이니까요.”
그 말 듣고 진짜로 생각했어요. 편해진 게 문제가 아니라, 편해져서 서로가 서로를 덜 가리고 있다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일지도요. 결국 우린 연애를 하면서 ‘폼’만 유지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살아가는 방식”을 연습하는 중인가 봐요. 그래서 오늘도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집에서는 양말 한 짝이 없어도, 설거지가 조금 뒤죽박죽이어도, 피식 웃으면서 넘어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