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결재올렸더니 반려 사유가 ‘이해가 안 됨’
회사에서 결재올렸더니 반려 사유가 ‘이해가 안 됨’이더라. 나도 모르게 내가 뭘 잘못 눌렀나 싶어서 한참 화면을 다시 봤는데, 결재선에는 내 결재안이 그대로 올라가 있었고 반려 버튼이 눌린 흔적도 아주 깔끔하게 남아 있었다. 그 찰나의 희망이 “그래도 구체적인 코멘트가 있겠지”로 바뀌는 순간, 반려 사유 칸에 딱 한 줄이 박혀 있었음. 이해가 안 됨.
처음엔 그냥 업무 방식이 그런가 싶었어. 상사가 바쁘면 간단하게 처리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무슨 부분이 이해가 안 되신 거죠?” 같은 완전 정중한 말투로 재질문을 올렸지. 근데 이게 또 문제인 게, 상사는 답글 대신 같은 시스템 코멘트로 “문서 전체가 이해가 안 됨”을 추가로 달아주더라. 아, 이건 질문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건가? 싶어서 잠깐 멍 때렸다.
문서를 다시 읽어보는데, 솔직히 내용은 꽤 성실했어. 목적, 배경, 진행 일정, 예상 효과까지 전부 들어가 있고 표도 적절히 넣었고, 문장도 최대한 쉬운 말로 바꿨거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내가 결재를 올리기 전에 팀에서 한번 검토도 받았다는 거. “이 정도면 문제 없을 듯”이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팀 의견이 문제였나? 아니면 상사 머릿속에 이미 다른 결론이 정해져 있었나?
그래서 나는 ‘이해가 안 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부터 고민했어. 우리 회사에서 반려는 보통 “A는 근거가 부족합니다”, “B는 비용 산정이 틀립니다”, “C는 법무 검토가 필요합니다”처럼, 최소한 칼로 베는 듯한 지점이 있잖아. 근데 이번 건은 칼이 아니라… 안개 같았어. 어디를 베야 할지 모르니 자꾸 문장을 바꾸게 되고, 문장을 바꾸면 또 다른 표현이 어색해지더라.
나는 결국 ‘이해가 안 됨’이라는 단어를 단서로 삼아, 문서에서 혹시나 오해할 만한 표현이 있는지 체크 리스트처럼 훑기 시작했어. 예를 들어 “기대효과” 파트에 숫자가 들어가 있는데, 그 숫자가 너무 공격적으로 느껴졌을까? “단축”이라는 단어가 과장처럼 들렸을까? 아니면 내가 “전사 적용”이라고 쓴 부분이 갑자기 큰 그림으로 점프해서 보였을까? 스스로도 웃겼는데, 그날 나는 내 문서의 모든 단어에 형광펜을 칠하는 사람처럼 변했다.
그리고 이상한 반전이 하나 더 있었어. 같은 문서를 팀원은 다 이해했는데, 상사만 이해가 안 되는 걸 보면, 아마 문제는 문서가 아니라 내가 붙인 “맥락”일 수도 있겠더라고. 내가 결재 상신하면서 제목을 너무 담백하게 썼나? 제목이 너무 깔끔해서 상사가 클릭하는 순간부터 졸리기 시작한 건가? 회사에서 결재 문서는 결국 ‘읽는 사람의 컨디션’을 타는 물건이 맞나 싶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려야 하니까, 나는 다음 버전 문서에서 뻔한 친절함을 추가했어. 배경을 더 길게 썼고, 용어도 풀어썼고, 표에는 각주까지 달았고, 결론에는 한 문장을 따로 빼서 “요약”이라고 제목 붙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이해가 안 됨”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봐 걱정돼서, 마지막에는 “본 안은 누구나 쉽게 이해 가능하도록 구성했습니다” 같은 문장을 아주 조심스럽게 넣었지. 물론 그 한 문장 때문에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닐까, 이 생각은 넣고도 빼고도 결국 남더라.
그 다음날, 결재는 또 반려가 됐고 사유는 더 짧아졌다. 이번엔 “충분히 자세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됨”이었어. 나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내 눈이 잠깐 멈추는 느낌을 받았다. 자세히 쓰면 이해가 되는 게 아니라, 자세히 쓴 것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다는 말 같았거든. 이쯤 되면 문서를 고치는 게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방법’ 같은 걸 찾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결국 나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선택했어. 문서를 고치는 대신, 상사에게 직접 5분만 미팅 요청을 올린 거야. “문서가 아니라 구두로 설명드리고 확인하겠습니다”라고. 그런데 상사가 대답한 내용이 또 웃겼다. “설명은 필요 없고, 문서가 이해되어야 합니다.” 네… 그럼 지금까지 내가 몇 번이나 설명하려고 “재질문”을 올린 건데요. 나는 그때 깨달았어. 이건 내 문서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반려 사유가 그냥… 버튼 같은 거라는 걸.
결론은 어떻게 됐냐면, 나는 그 안건을 결국 접었어. 대신 비슷한 내용으로 더 단순한 버전의 문서를 새로 올렸는데, 이번엔 사유가 아니라 승인 이력이 떴다. 내가 알아낸 건 단 하나였어. ‘이해가 안 됨’은 내용 평가가 아니라 분위기 평가인 경우가 있다는 것.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문서를 쓸 때 내용만 준비하는 게 아니라, 결재 올리는 사람의 마음 상태까지 같이 체크하는 사람처럼 살게 됐다. 회사는 결국 문서로 말하지만, 어떤 날은 문서가 아니라 ‘기분’이 결재를 한다더라.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오늘도 결재창을 열기 전에… 내 마음부터 먼저 승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