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모임에서 내가 산 케이크가 2번 나옴
가족 모임 날이었어요. 다들 “오늘은 네가 케이크만 사 와” 이러면서, 마치 제가 케이크 공급 담당 직원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이 끝났죠. 저는 또 “네 알겠습니다” 하고 마트까지 가서, 모양도 예쁘고 다들 좋아할 법한 걸로 야무지게 골랐습니다. 가격도 딱 적당한 선에서, 괜히 비싼 거 사 갔다가 평가받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날 집에 케이크가… 제 케이크 포함해서 두 번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산 케이크가 진짜로 “한 번”만 나올 줄 알았어요. 식탁에 케이크를 올려두자마자, 고모가 칼라 젤리 같은 시선으로 빤히 보더니 “오, 이거 맛있겠다” 하시고, 엄마는 “아 그래도 네가 사 온 거면 실패는 없지”라고 말했죠. 다들 기대하는 표정이어서 저도 뿌듯했어요. 저는 그 순간, ‘오늘은 내가 가족의 구원자’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분이 채 10분도 안 가서 금방 사라졌습니다.
이모가 옆에서 갑자기 “잠깐, 잠깐만” 하더니 주방 쪽을 향해 소리쳤어요. “어? 우리 케이크 또 있는 거 아니야?” 그 말이 나오자마자 분위기가 살짝 어색해졌습니다. 다들 “뭐가 또 있어?” 같은 표정을 짓다가, 누군가 냉장고 문을 열더니 안쪽에서 케이크 박스를 꺼내더라고요. 저는 그때 심장이 철렁했어요. 왜냐하면 방금 제가 산 박스가 이미 식탁 위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꺼내진 건… 똑같이 생긴 케이크였어요. 색감도 비슷하고, 포장지 문구도 거의 같았고, 무엇보다 크기가 제가 산 거랑 느낌이 똑같았습니다.
저는 당연히 “어? 이거 제 거 같은데요”라고 말하려고 했죠. 근데 이모가 더 당당하게 말해버렸어요. “아니야, 이건 내가 아까 주문해 둔 거야. 앱에서 확인했거든. 배송 온 거 아직 안 꺼냈지.” 그러면서 웃으시는데, 그 웃음이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왜냐면 저도 아까 마트에서 계산할 때 영수증까지 챙겼고, 집에 가져오면서 박스 옆면을 한 번 더 만져 확인했거든요. 제 머릿속에서는 이미 ‘이 케이크는 내가 산 케이크가 맞다’고 결론이 내려져 있었고, 반대로 이모 머릿속에서는 ‘이 케이크는 내가 산 게 맞다’고 결론이 내려져 있었을 테니까요.
여기서부터 가족 모임 특유의 “정답 맞히기 게임”이 시작됐습니다. 엄마는 “그럼 둘 다 같은 케이크냐?”라고 묻고, 고모는 “아니야, 맛은 하나만 좋고 하나는 좀… 음, 그래도 먹어야지” 같은 말을 하셨어요. 아빠는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포장지의 스티커 위치를 관찰하더니 “이건 제조사 로고가 다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저는 그걸 듣고 속으로 ‘아빠는 케이크 감별사인가’ 하고 생각했죠. 결국 우리는 두 케이크를 동시에 식탁에 올리고, 가족 회의처럼 서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할 말은 간단했어요. “저는 마트 가서 이거 사 왔어요. 계산도 했고요.” 그러자 이모가 바로 받아쳤습니다. “그럼 너도 산 거고, 내가 산 것도 있는 거지.” 이 말이 너무 논리적이라 더 어이없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왜 하필 두 개가 똑같이 생겼는지에 대한 분노가 올라왔거든요. 그러니까 결론은 이거였죠. 가족 중 누가 주문했든, 누가 마트에서 샀든, 같은 모델을 골라버린 겁니다. 그걸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정밀했어요. 마치 케이크가 가족 회의 전에 이미 서로를 알고 준비한 것처럼요.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두 개를 올려놓자마자 “그럼 누가 먼저 먹을래?”가 됐거든요. 저는 조심스럽게 “그럼 제 케이크부터 드시면 될 것 같아요”라고 했는데, 고모가 “아니야, 먼저 자르는 사람이 임자지” 하시는 바람에 칼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결국 두 케이크가 번갈아 잘리면서, 똑같은 맛을 두 번 겪는 기묘한 경험이 생겼습니다. 처음엔 “이거 뭐지?”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다들 그냥 웃으며 먹기 시작하더라고요. 가족들 표정이 바뀌는 걸 보니, 화해와 즐거움이 빠르게 진행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진짜로 놀란 건, 케이크 조각이 늘어날수록 서로 “내가 산 게 더 맛있다”로 평가가 바뀌는 과정이었어요. 엄마는 “둘 다 맛있는데, 네가 산 건 좀 더 촉촉해”라고 하셨고, 이모는 “내가 산 건 더 진한데?”라고 하셨어요. 제가 보기엔 두 케이크 모두 같은 계열이라 구분이 잘 안 됐거든요. 근데도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로 세상을 정리하잖아요. “내가 한 일이 맞다”는 감정이 들어가면 맛이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저는 그걸 보면서, 케이크는 그냥 케이크가 아니라 가족 심리 실험 도구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밤이 되고, 다들 설거지 마무리하면서 정리가 됐을 때, 마지막으로 이모가 저한테 한 마디 했어요. “근데 너는 진짜로 마트에서 샀어?” 그 질문에 저는 잠깐 뜸을 들이려고 했는데, 이미 분위기는 다 풀려 있었고 솔직히 창피함보다 웃음이 먼저 나왔죠. 저는 “네… 영수증도 있어요”라고 말했더니 이모가 웃으시며 “그럼 됐지. 다음엔 그냥 같이 사 와. 우리 케이크 팀플 하자”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말이 왠지 찡했어요. 가족 모임은 늘 뭔가가 어긋나지만, 결국엔 웃으면서 맞춰지더라고요. 결국 케이크가 두 번 나온 게 문제라기보다, 우리가 두 번이나 같은 걸 바라본 시간이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