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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으로 받은 책이 아니라 줄친 노트가 들어있음

2026-07-14 15:41:11 조회 13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당근으로 받은 책인데, 택배 열자마자 “엥?” 소리가 먼저 나왔어요. 분명 중고책 판매글에는 책 제목이랑 상태가 딱 적혀 있었고, 사진에도 두꺼운 책 한 권만 보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받은 건 표지부터 이상하게도… 책이 아니라 줄친 노트였어요. 그것도 너무 성실하게 줄 그은 흔적이, 마치 누가 필기장 한 권을 “책인 척” 포장해둔 것처럼요.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어요. 혹시 제가 잘못 확인한 건가 싶어서 봉투 안쪽을 다시 뒤졌죠. 그런데 책갈피처럼 끼워진 영수증이 있고, 그 위에 판매자 메모가 있었어요. “책 말고 이거 들어있어서 드려요”라고 적혀 있는데, 문제는 그 “이거”가 책이 아니라 거의 학습용 노트 느낌이라는 겁니다. 표지에 책 제목 비슷한 글자가 있지만, 자세히 보니 과목명+연도 조합으로 구성된… 약간은 민망한 형태였어요.

저는 일단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혹시 책이 잘못 들어갔나요? 저는 책 한 권만 주문했는데 노트가 들어있어요.” 보내고 나서 바로 멘탈이 흔들리더라고요. 당근 거래는 보통 예의 있고 빠르게 해결되는데, 이건 뭔가 스토리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했어요. 그래서 답장이 오기 전까지는 “설마 무료 증정품이 책의 형태를 가진 노트인가?” 같은 헛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답장이 왔는데, 그 내용이 더 황당했어요. 판매자가 “아 그 노트요. 이 책에 줄친 부분이 워낙 좋아서요. 원래 책이랑 세트로 드리는데 사진엔 안 나왔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세트? 원래? 그런데 사진에는 책만 있었고, 제가 받은 건 책이 아니라 노트 한 권이었거든요. 저는 그 순간 깨달았어요. 이건 ‘책+노트 세트’가 아니라, ‘책인 줄 알았던 노트’의 영역 싸움이구나… 하고요.

그래도 일단 확인해보자 싶어서 노트를 펼쳤습니다. 줄 친 부분들이 너무 정교해서, 누군가가 시험 직전까지 붙들고 공부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고요. 게다가 연필로 체크한 부분, 형광펜으로 강조한 문장, 옆에 적어둔 “이거는 꼭 나옴” 같은 메모까지 있었어요. 솔직히 이건 중고 물건이라기보단, 어떤 사람의 시간과 마음을 통째로 넘겨받은 느낌이라… 제가 책을 산 건지, 누군가의 최후의 작전을 받은 건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더 웃긴 건, 노트 맨 뒷장에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더라고요. 거기에 글씨가 빽빽하게 적혀 있는데, “이 노트 보시면 알아요. 제가 왜 줄을 그었는지”라고 시작하고, 마지막에는 “책으로 보이면 그게 정답이에요” 같은 문장이 있었어요. 이쯤 되면 판매자가 말한 “사진엔 안 나왔어요”가 아니라… 애초에 “사진에는 책처럼 보이게만 찍어둠” 같은 의도가 있었던 거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판매자에게 다시 물었어요. “혹시 책 원본이 따로 있나요? 아니면 노트가 본품인가요?” 그러자 판매자는 “본품이 맞아요. 책은 상태 안 좋아서 버릴까 했는데, 노트가 더 귀한 것 같아서요. 그래도 책이라고 적어둔 건 제 실수예요. 괜찮으면 환불해드릴까요?”라고 하더라고요. 순간 저는 웃다가도 멈췄어요. 환불 가능하다면 당연히 좋지만, 이미 제 집에 들어온 건 제 삶에 편입된 ‘줄친 노트’였거든요.

결국 저는 환불을 받고, 그 노트는 그냥 제 책장에 꽂아뒀습니다. 책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공부 흔적이 남아 있으니 버리기엔 아까웠거든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노트를 펼치면 괜히 집중이 돼요. 그 줄 그은 문장들 사이로 제가 모르는 내용이 있는데, 뭔가 “아 이 사람은 이걸 외웠구나” 하는 마음이 생겨서요. 제 학습의욕이 생긴다기보다, 그냥… 누군가의 밤을 제가 대충이나마 이어받는 느낌이랄까요.

이제 그 노트는 ‘당근에서 산 책’이 아니라 ‘당근이 준 사연 있는 자료’가 됐어요. 가끔 친구가 “그 책 읽었어?”라고 물으면, 저는 아무렇지 않게 “읽긴 했지. 줄은 다 봤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다들 한 번은 웃다가 “그래도 책이 아니라 노트였어?” 하고 되묻죠. 그때 저는 그냥 넘겨요. 왜냐면 어차피 인생에서 제일 확실하게 남는 건, 제목이 아니라 누가 왜 줄을 그었는지더라고요. 오늘도 책장 한 칸이 조용히 말해주는 기분이에요. ‘다음엔 네가 줄을 그을 차례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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