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이 늦어서 연락했더니 ‘이미 드렸어요’라더라
배달이 늦어서 연락했더니 ‘이미 드렸어요’라더라. 이 말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아 지금 내가 주문한 게 내가 지금까지 한 건지” 같은 철학 토론이 시작됐음. 배달 앱엔 분명히 30~40분 걸린다고 떠 있었고, 나는 이미 2번이나 문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한 상태였거든.
처음엔 그냥 기사님이 바쁘겠지 싶어서 “혹시 지금쯤 도착하실까요?”라고 물어봤어. 답장은 엄청 짧았어. 딱 “네, 이미 드렸어요” 이 한 줄. 그 순간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거였어. 내 현관문 앞에 뭐가 있었나? 내가 못 봤나? 밤이면 더 그럴 수 있지 않나? 그래서 나는 조심조심 문을 열었는데… 아무것도 없더라.
엘리베이터 앞, 우편함 옆, 벽면에 붙어있는 스티커까지 전부 살펴봤는데도 없었어. 혹시 택배처럼 경비실에 맡겼나 싶어서 경비실에 전화하려다 말았지. 요즘은 경비실도 택배 잘 안 받아주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서 다시 기사님께 전화를 했고, 이번엔 좀 더 단호하게 “지금 문 앞에 아무것도 없어요. 어디에 두셨나요?”라고 물어봤어.
기사님은 또 같은 톤으로 “이미 드렸어요. 사진도 남겨뒀습니다.”라고 하더라. 사진? 나는 그 순간부터 뭔가 어플리케이션이 아니라 미스터리 수사물에 들어간 느낌이었음. “사진을 확인해보겠습니다”라고 하더니, 잠깐 뜸을 들이다가 “주문 주소가 101동 5호가 맞으세요?”라고 물어보는 거야. 응? 그럼 나는 101동 5호가 아닌 건가? 나는 내 집 주소를 여러 번 확인했는데도, 갑자기 내 위치가 틀린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지.
그래서 나는 “맞아요. 제가 계속 기다리고 있었고, 방금 전에도 문 앞 확인했는데요”라고 했어. 그랬더니 기사님이 “네… 그럼 혹시 다른 문 앞이 있으실까요? 복도형이면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 솔직히 복도형이긴 해. 근데 그렇다고 ‘놓치는 정도’가 아니라 ‘없음’이지. 배달은 보통 “문 앞에 두고 갔습니다”가 핵심인데, 이분은 문 앞에 두고 간 게 아니라 문 앞이라는 개념을 다른 곳에 제출해버린 느낌이었어.
결국 나는 앱에서 주문 상태를 다시 보면서 캡처도 하고, 고객센터에 문의를 넣었어. 고객센터에서는 “이미 완료 처리되어 있습니다. 사진 확인 후 안내드리겠습니다”라고 했지. 그 말은 곧 “사진이 어떤 사진이든, 일단 우리 시스템은 당신을 믿습니다”라는 뜻으로 들리더라. 나는 진짜로 사진을 보고 싶었어. 설마 내 집 문이 아니라 다른 집 현관 앞을 찍어 올린 건가? 아니면 내가 못 본 사이에 습격(?)당한 건가?
잠시 뒤에 사진이 도착했는데, 거기엔 내 현관문이 아니라 옆동 계단 쪽이 찍혀 있었어. 그것도 사람 그림자랑 같이… 뭔가 너무 확신에 차서 찍은 느낌이라 더 어이없더라. 나는 화면을 보면서 “이게 제 집이 아니라는 건 제가 아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고객센터는 또 “기사님께 확인해보겠습니다”로 가더라. 그 확인이란 게 보통 며칠 걸리잖아. 난 지금 당장 밥이 필요한데, 시간은 이미 내 편이 아니었음.
한 20분쯤 더 지나서 연락이 왔어. 기사님이 “아 죄송합니다. 그쪽이랑 헷갈렸습니다. 사진은 그때 찍어놔서요”라고 말하더라. 헷갈렸다고? 배달은 위치가 핵심인데 헷갈렸다는 말이 너무… 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한 수준의 헷갈림 같았어. 나는 “그럼 지금 다시 배달 가능한가요?”라고 물었고, 기사님은 “가능합니다. 다만 새로 결제는…” 이런 말이 나와서 나는 여기서부터 멘탈이 살짝 맛이 갔지. 결제를 새로 하라니. 이미 내 돈이 결제되어 있는데, 시스템이 또 한 번의 수수료를 꿈꾸는 기분이었거든.
그래도 결국엔 다시 가져오기로 정리됐고, 그때부터는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감시자가 됐어. 창문으로 확인하고, 현관문 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로 3분마다 시계를 봤지. 그리고 도착했을 때, 기사님이 가방에서 내 음식 꺼내는데 표정이 진짜로 “방금 사고 쳤지만 수습은 끝내겠습니다” 같은 표정이더라. 나는 그냥 “다음엔 사진부터 정확히 부탁드려요”라고만 하고 받았어.
결론적으로, 배달이 늦어서 연락했더니 ‘이미 드렸어요’라는 말은 듣는 순간 “이미 끝났어”가 아니라 “아직도 시작도 안 했는데요?”라는 느낌이었음. 그날 이후로 나는 배달이 늦으면 먼저 현관 앞을 확인하고, 기사님께 전화하면 “헷갈리실 만한 주소가 맞는지”를 묻기보다 “방금 제 앞에 두신 건 맞아요?”부터 확인하게 됐어. 어쨌든 그 음식은 결국 먹었는데, 냉정하게 말하면 맛은 좋았고 찝찝함은 오래 남더라. 다음엔 ‘이미 드렸어요’ 말고 ‘지금 가고 있어요’가 제발 제발 더 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