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면서 서로 좋아하는 음악이 같아서 당황
연애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우리는 서로 “취향 비슷하네” 정도로 가볍게 넘겼어요. 근데 어느 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 차트(스포티파이/멜론이든 뭐든) 켜놓고 한 곡 틀었는데, 제 옆에서 있던 사람이 갑자기 “어, 이거 좋아해?”라고 묻더라고요. 저는 속으로 ‘응? 방금 틀었는데?’ 하고 당황했고, 그 다음 순간부터 뇌가 멈칫했어요.
그날은 그냥 평범한 데이트였어요. 우리는 식당에서 밥 먹고 나와서 걷다가 자연스럽게 음악 얘기가 나왔고, 저는 “요즘 이런 거 듣는다” 하면서 플레이리스트를 돌렸거든요. 근데 재생된 첫 곡이… 제가 아침에 출근길에 듣던 그 곡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제 플레이리스트가 그렇게 티가 나나? 싶었는데, 그 사람은 제가 뭘 들려주기도 전에 이미 리듬을 따라 부르는 타이밍까지 맞추더라고요.
“이거 오랜만에 듣네”라고 말하길래, 저는 그냥 웃으면서 “맞아, 나도 그래서 틀었어” 했죠.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요. 제가 다음 곡으로 넘기려고 손을 올리니까, 그 사람이 먼저 “잠깐만, 그 다음은 그 노래 나와야 해”라고 하더라고요. 말 그대로 다음 트랙을 ‘예언’한 수준이라, 제가 리모컨 같은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손가락이 멈췄어요. 진짜로요. 아무리 친해도 이건 너무 정확했어요.
그래서 제가 좀 장난스럽게 “어떻게 알아?” 물었더니, 그 사람이 “나도 똑같이 들어”라고만 했어요. 그 말이 너무 당연한 듯한 표정이라 더 당황했죠. 저는 그동안 연애하면서 가끔은 ‘나랑 너랑 다르네’가 설렘 포인트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반대로 ‘같아서’ 설렘이 아니라 의심이 먼저 올라오는 느낌이더라고요. 혹시 제가 뭘 숨기고 있는 거 아닌가? 혹은… 그 사람이 제 취향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건가? 같은 쓸데없는 상상이 연속으로 튀어나왔어요.
그런데 진짜 어이가 없었던 건 음악이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곡 선택 방식까지 똑같았다는 거예요. 저는 보통 분위기 맞추려고 먼저 잔잔한 곡으로 깔고, 중간에 텐션 올리는 곡을 섞는 편이거든요. 근데 그 사람이 틀어준 플레이리스트도 똑같이 시작하더니, 제가 좋아하는 ‘딱 그 구간에서 심장이 쿵하는 포인트’를 건드리는 방식이 똑같아서… 솔직히 말하면 “너 나 설정 파일로 보는 거 아니지?” 싶었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 웃어 넘기려고 했는데, 속으로는 계속 계산을 하게 되더라고요. 혹시 같은 라디오를 듣고, 같은 알고리즘을 공유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우리가 데이트하면서 우연히 같은 카페에 갔던 적이 있는데 거기서 나온 곡을 둘 다 저장해둔 걸까? 여러 경우의 수가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계속 결론은 하나로 모이더라고요. 너무 많이 맞아요. 너무 자주요. 연애에서 이런 건 보통 “서로 다르니까 더 재밌는” 쪽인데, 우리는 반대로 “서로 같아서” 당황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음악 얘기가 더 깊어지니까, 결국 둘 다 같은 가수를 좋아한다는 건 물론이고, 그 가수의 “가장 많이들 듣는 히트곡” 말고 사람들이 덜 아는 트랙까지 취향이 겹치더라고요. 그 사람이 “이 곡은 라이브가 진짜 미쳤어”라고 하길래 저는 “응, 그 라이브 영상 링크 나중에 보자” 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다음 말로 “근데 너 그 영상 제목이랑 썸네일은 뭐라고 나오던 거 기억나?”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저는 기억이 안 난다 했는데, 그 사람은 “아, 너 그 버전은 안 본 거네”라고 딱 짚더라고요. 저는 그때 확신했어요.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로 “너 나랑 똑같이 살아?” 같은 무례한 말은 못 하죠. 대신 저는 조심스럽게 “나 사실 가끔은 음악 취향이 비슷한 사람 만나면 신기하긴 하다”라고 돌려 말했어요. 그 사람이 웃으면서 “신기한 건 맞아. 그런데 나도 너랑 취향 겹치는 거 처음엔 좀 당황했어”라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 제가 제일 놀랐던 건, 당황의 방향이 서로 같았다는 거였어요. 저 혼자만 이상한 사람처럼 굳어 있던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요.
그 다음부터는 덜 무서웠어요. 오히려 편해졌죠. 산책하면서 노래가 겹치면 둘 다 “이 노래!” 하고 같은 타이밍에 말하고, 둘 다 같은 부분에서 같은 표정을 짓고, 가끔은 서로가 틀어줄 곡을 맞추다가 “너 왜 또 맞춰!” 이런 식으로 투닥거리기도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음악이 같아서 당황했던 순간이 가끔은 귀엽게 떠올라요. 완벽한 운명이라기보다는, 그냥… 우리는 같은 노래에서 같은 감정을 찾는 사람들 같았던 거죠.
결론은 이거예요. 연애하면서 서로 좋아하는 음악이 같아서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당황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왜냐면 그 당황의 정체가 “내가 혼자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네가 같은 장면을 보고 있었구나”였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노래가 시작되면 제가 제일 먼저 안심부터 해요. 혹시 또 맞추면 어쩌지가 아니라, 또 맞춰도 괜찮겠다로 마음이 바뀌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