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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내 자취방에 ‘방문 예정’이라며 시간 잡음

2026-07-16 15:41:11 조회 17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가족이 내 자취방에 ‘방문 예정’이라며 시간 잡음을 내기 시작한 날, 나는 이미 반쯤 포기 상태였다. 전화 한 통이 오더니 엄마 목소리가 “이번 주에 잠깐 들를게, 시간은 대충…” 하고 흘러나왔다. 그런데 ‘대충’이 문제였다. 대충이면 집에 있는 사람도 대충이어야 하잖아. 나만 대충하면 안 되는 세계관이었다.

처음엔 그냥 “네, 알겠어요” 하고 넘겼다. 평소에도 가족이 자주 연락하는 편이라, ‘방문 예정’이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지 체감하지 못했거든. 하지만 그 뒤로부터 말이 꼬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너 청소 좀 해놔”라고 하더니, 아빠가 “그리고 냉장고 정리도”를 붙였다. 그 정리가 뭔지 물어보기도 전에 삼촌까지 전화해서 “사람이 오는데 커피는 준비해야지”라고 했다. 나는 지금 집에 커피머신이 있는지부터 생각해야 했다.

일단 나는 당장 자취방을 점검했다. 거실 겸 방이라 부르기엔 너무 솔직한 구조라, 문을 열면 바로 생활 흔적이 보이는 타입이다. 책상 위엔 영수증이 쌓여 있고, 빨래는 바구니에 “언젠가 접힐 운명”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래서 청소를 시작했는데, 문제는 가족이 준 시간표가 계속 바뀌는 거다. 어떤 날은 “오후 3시에”였다가, 또 어떤 날은 “점심 먹고 바로”로 바뀌었다. ‘바로’는 항상 ‘늦게’로 증명되는 말이더라.

게다가 그들은 방문 시간이 아니라 일정 전체를 ‘예정’으로 관리한다. “도착하면 연락할게”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연락은 항상 도착하기 직전이다. 그러면 내가 뭘 하냐? 문 앞에 서서 거울처럼 현관문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확인하고, 먼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손으로 닦는다. 물론 손으로 닦는다는 건 티슈로 문질러서 더 번지는 과학을 실행하는 거고. 나는 청소를 하는데,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가족이 현관문을 열기 전에 ‘자취방 현실 고발’ 다큐가 찍히고 있었다.

그날도 똑같았다. 오전부터 “오늘 오후에 온다”는 메시지가 왔고, 나는 그 시간을 기준으로 준비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엄마가 “아, 근처에 가서 장도 보고… 잠깐만 기다려”라는 식으로 또 말이 바뀌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빨래 바구니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잠깐”이 몇 분인지 계산하려고 했다. 이게 무슨 회계 업무지? 자취방 관리가 아니라 가족 일정 조율팀에 합격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나는 준비를 잘한 편이었다. 커피는 원래 집에 있었는데, 문제는 ‘준비된 커피’와 ‘손님용 커피’가 다르다는 사실을 그때 배웠다. 가족은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상황을 마시는’ 사람들이었다. “너 컵은 바꿔야지” “이거 원두 향 좀 나나?” “설탕은 있어?” 같은 질문이 줄줄이 나왔다. 나는 그 질문을 들으면서, 내 자취방이 카페가 아니라는 걸 설명할 기회를 잃었다. 설명하려고 했더니 아빠가 “자취방도 집이지!”라고 말했다. 그 말은 마음은 좋았지만, 동시에 책임도 생겼다.

문제는 그 와중에 ‘시간 잡음’이 또 일어난다는 것. 엄마가 “우린 금방 갈게” 하더니 삼촌이 “혹시 10분 늦을 수 있어”라고 보탰다. 그리고 아빠는 마지막에 “근데 우리 차가 좀 막혀서… 네가 문 앞에 먼저 나와있어도 돼”라는 말을 했다. 여기서 나는 멈췄다. 문 앞에 나와있어도 된다니, 그건 마치 내가 자취방을 지키는 경비원 같잖아. 그리고 자취방 방문 전 대기 중인 경비원의 복장은 보통 체육복이 아니라, 무언가를 정리할 의지가 있는 표정이어야 하더라.

결국 가족이 도착했을 때, 나는 방금 전까지 바닥을 닦았던 티슈 자국과 빨래 바구니의 위치를 동시에 정리하는 중이었다. 엄마는 들어오자마자 “오 생각보다 괜찮네?”라고 말했는데, 그 한마디가 너무 칭찬이라서 오히려 마음이 불안했다. 아빠는 냉장고 문을 열고 “여긴 왜 이렇게 비었지?”라고 확인했고, 나는 “저… 좀 아껴요”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설명이 아니라 변명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삼촌이 커피를 타려는데 물을 끓이는 소리가 너무 크게 나서, 우리 집만 기계 실험실이 된 느낌이었어.

그래도 웃긴 건, 그들이 떠난 뒤였다. 나는 “다녀오셨으니 이제 평화다” 하고 다시 숨을 돌리려는데,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떠올랐다. “다음엔 네가 먼저 연락해, ‘방문 예정’ 잡아두면 네가 덜 놀라잖아.”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이건 방문 계획이 아니라, 시간 잡음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내가 긴장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내 긴장을 다음 루틴으로 편성하는 거였어.

그날 이후로 나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핸드폰을 들고 멍하니 시간을 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정리한다. ‘방문 예정’이란 말이 오면, 나는 자취방 청소를 하는 게 아니라 가족 일정의 파도를 견디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정말로 정확한 시간에 오겠지 싶다가도… 또 “대충”이라는 단어가 들려오면, 나는 또 웃음이 나온다. 가족이 시간 잡음을 내는 한, 내 자취방은 절대 조용히 살 수 없는 운명인 거니까. 그래도 웃긴 건, 그런 와중에 내가 더 정리하게 되더라. 그러니까 결국… 가족은 방문을 하러 오지만, 나는 매번 ‘행동력 업그레이드’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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