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내 생일에 예약을 해놨는데 장소가 내 회사 근처
가족이 내 생일에 예약을 해놨는데, 장소가 내 회사 근처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처음엔 “어? 이렇게까지 챙겨줘?” 하고 감동할 뻔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감동이 아니라 감시더라고요.
문제의 시작은 생일 당일 아침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오늘은 집에서 쉬어, 저녁에 갈 데 있어”라고 하시는데, 말투가 너무 확신에 차 있었어요. 저는 “뭐 예약해놨다는 거야?”라고 물었고, 어머니는 “알아보기 쉬우니까 오늘은 그냥 오면 돼”라고만 하셨죠. 그 ‘쉬우니까’가 너무 찝찝했어요.
점심쯤에 팀장님이 갑자기 “오늘 퇴근 빨리 못해요?”라고 묻더라고요. 저는 “왜요?” 했더니 팀장님이 웃으면서 “어차피 오늘 회사 근처에 행사 있는 것 같던데, 너 차 갖고 올 거냐고 누가 물어봤어”라고 하세요.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누가요? 우리 집이요?
퇴근 시간 전, 저는 회사 근처 어딘가를 계속 확인했어요. 지도 앱이 자동으로 켜지는데, 손가락이 알아서 “주변 맛집”을 찍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죠. 아, 우리 가족이 예약해놨다던 그 장소가… 제가 출퇴근할 때 늘 지나치는 곳이랑 비슷하다는 거예요. 마침 그날따라 건물 외벽에 작은 현수막도 걸려 있었고, 너무 ‘회사 근처’ 느낌이 강했어요.
저녁에 가족이랑 만나기로 한 시간에 맞춰 나가는데, 길을 걷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어요. “설마 여기?” “아니겠지.” “근데 진짜 여기네?” 이런 생각을 반복하다가, 결국 약속 장소로 들어갔는데, 예약 확인하는 분이 제 이름을 말하더라고요. 저는 반사적으로 웃으면서 “어, 여기 맞죠?”라고 했고, 가족들은 다 같이 “맞지!”라고 하는데, 그 표정이 너무 단단했어요. 마치 제가 무슨 퍼즐 조각처럼 ‘딱 들어맞는지’ 확인하는 느낌.
그런데 더 웃긴 건 그 순간부터였어요. 식당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버지가 “여기 좋아, 너 회사 근처라 네가 편하게 올 수 있잖아”라고 하시는데, 저는 그 말을 반박하려고 입을 열었죠. 그런데 입이 먼저 놀라더라고요. 왜냐하면, 식당 직원이 “아, 오셨어요. 오늘 예약자 분들, 회사 앞에서 잠깐 보셨더라구요”라고 말했거든요. 제 옆에서 어머니가 아주 자연스럽게 “그랬지”라고 웃으셨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가족이 예약을 한 게 아니라, 제가 출근할 때 동선이랑 감정선을 다 조사해서 “너 이 시간에 여기 올 확률이 높아”를 계산한 거예요. 심지어 동생은 제 휴대폰을 보더니 “너 오늘 회의 끝나는 시간 딱 이때일 것 같아서 예약 시간도 맞췄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데, 저는 “야, 생일인데 왜 스케줄러처럼 굴어”라고 했더니 동생이 “생일은 이벤트지. 이벤트는 데이터로 하는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 유연해서 반박도 못 했어요.
식사가 나오고 나서도 분위기가 좀 이상했어요. 케이크를 가져오려는 타이밍에 아버지가 갑자기 “그럼 이제 네 회사 쪽 사람들한테도 인사하자”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식은땀이 나서 “왜요?”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너 회사 근처에서 예약했으면, 네가 얼마나 성실한지 사람들이 알아야지”라고 하시는데… 이게 생일 축하인지, 출장 보고인지 헷갈렸습니다. 저는 그냥 촛불 켜는 장면만 떠올리며 “오늘은 제발 회사 얘기 말고…”라고 했고, 가족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더 진지하게 “그래, 회사 얘기 안 할게”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대화는 가족의 본론으로 흘러갔습니다. 어머니는 “너 생일인데 혼자 야근하면 속상할 것 같아서”라고 하셨고, 아버지는 “그리고 너 요즘 표정이 좀 그래 보이더라”라고 하세요. 저는 한편으로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너무 웃겨서 결국 ‘감시’처럼 느껴졌던 게 사실은 걱정이었던 걸 인정하게 됐어요. 그래도 그렇지… 예약 장소가 회사 근처라는 건 너무 노골적이잖아요. 제 마음속에서만큼은 “내가 출근하는 길을 가족도 같이 걸어 다녔네”라는 결론이 남았고요.
마지막에 케이크 한 입 먹고 나서, 저는 결국 물어봤어요. “그럼 왜 하필 회사 근처였어?” 그랬더니 동생이 아주 작게 웃으면서 “그게 제일 실패 확률이 낮아”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실패 확률이 뭐야” 했더니 동생이 “형이 생일 잊어버릴 때, 회사 근처면 못 잊지”라고 말하는데…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생일을 챙기는 방식이 좀 특이했지만, 결국 전 그날 ‘회사 근처에서라도’ 가족이 저를 놓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하면서 현수막을 보는데, 문득 생각했죠. 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가 제 동선 계산 중일지도 모른다고요. 생일은 매년 오니까, 저도 내년엔… 회사 근처 말고 다른 곳으로 도망갈 계획을 세워뒀습니다. 물론 들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