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거래하다가 갑자기 “사실 급히 취소할게요”
당근 거래하다가 갑자기 “사실 급히 취소할게요”라는 말을 들은 날,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빠르게 멘탈이 로딩되고 가장 빠르게 언로딩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건은 별로 비싼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지… 그날 이후로 당근 채팅에 감정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처음엔 완전 평범했어요. 동네 카페 바로 옆에 살던 분이 중고 책상을 올리셨고, 저는 필요해서 연락을 드렸죠. 사진이 깔끔했고 가격도 괜찮아서, “네 오늘 몇 시쯤 오실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주고받았습니다. 상대도 빠르게 답해주더라고요. “네 가능해요. 오후에 집 앞에서 두면 됩니다.” 말투는 성실했고, 저는 속으로 ‘오 이거 무난하게 되겠는데?’ 하고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시간 맞춰서 제가 이동도 하고 있었어요. 당근 거래는 생각보다 준비물이 필요하잖아요. 종이봉투, 포장재, 가끔은 장갑까지. 저는 책상이라 큰 거라서 차량 부르는 것도 알아봤고, 주차할 곳도 미리 생각해뒀죠. 가는 길에 상대방에게 “지금 도착했어요!”라고 보냈는데, 답장이 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보통은 바로 오거든요.
그때부터가 이상했어요. 상대가 “잠깐만요!”라고 보내더니, 바로 이어서 “사실 급히 취소할게요”라는 문장이 툭 떨어진 거예요. 저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눈이 멈추는 느낌이었습니다. ‘급히 취소’는 보통 단어 조합인데, 왜 이렇게 갑자기? 저는 채팅 화면을 다시 보고, 혹시 제가 오타를 잘못 읽었나 싶어서 한 번 더 확인했죠. 근데 그대로였어요.
저는 곧바로 “네? 혹시 무슨 일이 있으세요? 다른 시간으로 조정 가능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상대는 “죄송한데 오늘은 어렵습니다. 마음 바뀌었어요” 같은 뉘앙스로, 이유를 자세히 안 적는 답을 주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부터 저는 분노라기보다 당황이 먼저 왔어요. 이미 제가 동네까지 와있는데, 그럼 저 시간은 뭐였지… 싶고요.
그래도 사람이니까 변수가 있을 수 있죠. 그래서 저는 “혹시 물건이 이미 나가신 건가요, 아니면 예약 취소 사유가 있으신가요?”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상대는 “방금 다른 분이 더 빨리 오신다고 해서요”라고 짧게 답했어요. 그 말을 보는데, 제 머릿속에 자동으로 장면이 그려졌습니다. 저는 포장재 챙기고, 저는 이동하고, 저는 도착하고… 그런데 상대는 그 사이에 ‘다른 분’이 이미 그림 속에 들어와 있었던 거죠. 그럼 저는 그 ‘다른 분’의 런칭 대기열에 서 있었던 건가요?
제가 웃긴 건, 화가 나서 따지고 싶었는데도 손가락이 그 말을 쓰기까지 오래 걸렸다는 겁니다. 뭐랄까, 너무 어이가 없어서 따지기 전에 먼저 말이 막히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결국 저는 예의 차리듯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괜찮은 물건 있으면 연락드릴게요”라고 보냈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더 답을 할 타이밍을 기다렸는데, 그 뒤로는 답이 오지 않았어요. 채팅방이 조용해지는 순간, 저는 제 자신이 ‘거래 취소된 사람’이 아니라 ‘대화 로그로만 남은 피해자’가 된 것 같아서 더 웃기더라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계속 생각했어요. 당근은 신뢰 기반인데, 그 신뢰가 이렇게 한 문장으로 증발할 수 있구나 싶었던 거죠. 물론 세상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길 수는 있어요. 다만 “사실 급히 취소할게요”라는 말이 너무 짧잖아요. 이유를 길게 쓰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 “미안해서”라도 한 번 더 감정을 실어주면… 저는 그 순간 덜 삐걱댔을 것 같아요. 그 한 문장의 무게가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다음 날, 저는 같은 앱에서 다른 물건을 봤는데 댓글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약속은 지키는 사람만 이겨요. 나머지는 그냥 채팅하다 사라져요.” 읽는 순간 피식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책상 거래를 떠올리면 웃음이 나와요. 왜냐면 저는 그날 책상은 못 샀는데, 대신 ‘당근 채팅의 심리’ 하나를 배웠거든요. 약속 잡으면 준비하는 사람과, 준비 없이도 취소가 되는 사람의 차이… 그걸 제 몸으로 체험해버린 날이었어요. 결국 제 결론은 하나예요. 당근은 가격보다도 타이밍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다음 거래에서는 제 자신에게 한 마디 더 해줍니다. “도착했다고만 보내지 말고, 마음도 같이 도착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