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에 설치한 도어락이 내 목소리만 못 알아듣는 날
자취방에 설치한 도어락이 내 목소리만 못 알아듣는 날이 딱 왔습니다. 물론 “뭐야, 또 오류인가?” 싶은 그 평범한 시작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오류의 대상이 저 하나뿐이더라고요. 베란다 쪽 바람 소리도 아니고, 손가락이 젖어서도 아니고, 제가 말하는 방식이 문제였다는 게 결론이라 더 황당했어요.
처음엔 그냥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어요. 출근 전에 현관 앞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열어줘” 한 다음 도어락이 툭 하고 반응하는지 확인하죠. 그런데 그날은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도어락이 “음성 인식 실패” 같은 소리를 내더니, 문이 꿈쩍도 안 했습니다. 순간 당황해서 다시 한 번 말했죠. “열어줘, 나야!”라고요. 제 목소리가 더 커졌으니 이번엔 되겠지… 했는데, 역시나 또 실패.
저는 자취 3개월 차라서 도어락이 신기하긴 해도, 그래도 기본은 잘할 거라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그 믿음이 깨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입구에 서서 휴대폰 시간만 확인하다가, 결국 비상키로 열고 들어갔어요. 들어가고 나서도 왠지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내가 이상한가?” 싶어서 거울 보고 발음부터 점검하려는 마음까지 들었어요.
그때부터 실험 모드가 시작됐습니다. 다음 날엔 일부러 똑같은 문장을 조용히, 또렷하게 말해봤어요. “열어줘.” 한 글자도 흐리지 않게요. 근데 도어락은 또 실패. 이번엔 더 화가 나서 좀 과장되게 말했죠. “열어줘요! 지금!” 그러자 도어락이 아예 무표정하게… 아니 무표정한 목소리로 “인식 실패”를 내는 겁니다. 그 소리가 마치 “형, 발음보다 성대부터 다시 설정해야 하는데요?” 같은 느낌이라 웃기면서도 기분이 이상했어요.
친구를 불러서 테스트하기로 했습니다. 제일 가까운 친구가 와서 “야, 너는 잘 돼?” 하더니 현관에서 똑바로 보고 말하더라고요. “열어줘.” 친구 목소리는 그냥 평범했는데, 도어락이 바로 반응했어요. 바로 딸깍 소리 나면서 문이 열리니까, 친구는 “오오, 되네?” 하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저는 그 순간 깨달았죠. 문제는 제 목소리였고, 더 정확히는 제 목소리가 도어락한테는… 특정 버전으로만 들린다는 걸요.
여기서부터는 제가 이상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혹시 제가 말을 “중얼중얼”해서 그런 건가 싶어서 녹음해봤어요. 녹음 파일 재생하니까, 본인 목소리 특유의 어색함이 있는데 그건 다들 아는 그 느낌이죠. 근데 도어락이 듣는 방식은 재생하고 있는 제 귀의 느낌이랑 달랐던 것 같습니다. 친구는 선명하게 들리고, 저는 왠지 “열어… 줘…” 사이가 잘렸거나, 특정 주파수가 튀는 느낌이었을까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협상’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도어락 설명서에서 음성 인식 설정이 있더라고요. 설정 메뉴로 들어가서 다시 제 목소리를 학습시키는데, 문제는 여기서도 도어락이 제게 불친절했다는 거예요. 제가 “다시 시작할게요” 하자마자, 기계는 또 실패. 이번에는 진짜로 숨을 고르고 천천히 말했습니다. “열어줘… 부탁해…” 끝까지 천천히, 마치 드라마 오프닝 자막 읽듯이요. 그제야 이번엔 한 번은 성공했는데, 성공한 건 성공한 거고, 도어락이 내 목소리를 학습하는 속도가 너무 느린 게 문제였어요.
며칠 뒤, 또 같은 날이 오더라고요. 아침에 급하게 나가느라 가벼운 마스크를 썼는데, 도어락은 또 “인식 실패”를 내는 겁니다. 마스크 때문인가 싶어서 벗고 말해도 실패. 그러다 보니 제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도어락의 테스트 문제처럼 변해버렸어요. 제가 마스크를 쓴 날도, 안 쓴 날도, 목소리 크기 바꾼 날도… 결국 도어락이 저만 이상하게 취급한다는 결론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방법이 정해졌어요. 현관 앞에서 “열어줘”라고 말하는 대신, 저는 도어락이 원하는 대로 말하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쓰는 톤으로, 친구가 쓰는 속도로, 친구가 쓰는 표정으로요. 처음엔 억울해서 “내가 왜 친구 모드로 살아야 하지?” 싶었는데, 막상 적응되니까 웃기더라고요. 오늘도 현관 앞에서 제가 저를 대신해서 친구처럼 인사하고, 도어락이 문을 열어줄 때면 왠지 제가 아니라 ‘도어락이 좋아하는 발음’과 생활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결국 자취는 혼자지만, 도어락은 저 혼자 두지 않더라고요. 인식은 실패해도, 삶의 리듬은 계속 맞춰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