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이 잘못 와도 어쩐지 한 번 더 시키게 됨
배달이 잘못 와도 어쩐지 한 번 더 시키게 됨… 이게 무슨 논리냐 싶죠? 근데 진짜로 저는 그렇게 돼요. 배달 앱 누르면 마음은 “이번엔 제대로 오겠지”인데, 막상 오면 손에 쥔 건 메뉴가 아니라 운명입니다.
처음엔 진짜 멀쩡했어요. 점심에 짬뽕 시켰는데, 문 열자마자 봉투에서 풍기는 냄새가 “이건 짬뽕이 아니라 국물 있는 뭔가”였거든요. 열어보니까 면 색깔도 다르고 건더기 구성이… 음, 제가 알고 있는 그 짬뽕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첫 반응이 “이게 뭐야”가 아니라 “그래도 맛있을 것 같은데?”였어요. 그때부터 제가 이미 문제의 시작을 알았어야 했는데, 인간은 자기가 덜컥 믿으면 끝까지 믿더라고요.
물론 바로 사진 찍고 문의했죠. “주문한 메뉴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면 보통은 “죄송합니다, 교환/환불 도와드리겠습니다”가 오잖아요? 근데 여기서 제가 또 웃긴 게, 교환이 오기 전에 제가 이미 그릇을 반쯤 비워버린 겁니다. 맛이 없으면 확실히 화났을 텐데, 그날은 그냥… 맛이 있었어요. ‘잘못 왔는데 맛있다’ 이 조합이 사람 정신을 좀 홀려요.
그래서 환불이랑 정정은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뒤로 다른 날에 또 시키게 되더라고요. “아 그 집이 실수는 해도 맛은 보장인가?” 이런 식의 믿음이 생기는 거예요. 물론 그 논리는 0에 가까운 상식이지만, 경험이 한 번 긍정적으로 박히면 인간은 합리화에 선수잖아요. 저는 합리화가 전문이에요. 영수증 정리하는 것보다 합리화가 더 빠르더라고요.
그리고 두 번째 오배송이 왔습니다. 이번엔 치킨 시켰는데 피자 박스가 오더라고요. 종이 상자부터가 아예 장르가 달라서, 순간 뇌가 멈추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배달 기사님이 “혹시 치킨 맞으세요?” 하고 확인하셨고, 저는 “맞는데… 피자예요.”라고 하니까 그분도 잠깐 멍해하셨어요. 결국 교환은 됐지만, 피자를 제가 받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죠.
여기서 또 문제의 핵심이 터집니다. 피자가 생각보다 맛있었어요. 특히 치즈가 늘어나는 순간, 제가 방금 전까지 화나서 말하던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표정이 바뀌어요. 뭐랄까, “잘못 와도 한 번 맛보면 미안해진다”는 이상한 도덕감이 생겨요. 그 도덕감이 “다음엔 내가 더 관대해질 수도”라는 위험한 결론을 내리고요. 그러면 또 다음 메뉴가 궁금해져요. 인간의 욕망은 그 어떤 논리도 이겨요.
세 번째는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디저트 주문했는데, 손에 들어온 건 다른 디저트는커녕 완전 다른 종류의 간식이었거든요. 게다가 포장 상태도 조금 헐거웠어요. 저는 이번엔 진짜로 엄격하게 하려 했어요. 그런데 막상 뜯고 한 입 먹자마자 정신이 흔들렸습니다. 그 맛이… 뭐랄까, “실수했지만 의도치 않게 제 취향을 정확히 맞춘” 느낌? 이게 무슨 기만인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런 운에 약해요.
그 이후로 제 뇌는 아예 규칙을 만들었어요. 배달이 잘못 오면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이건 실수지만, 어쩌면 내가 원래 원한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맛은 있네?” 그러면 마음이 편해져요. 항의하고 환불받는 것도 하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컴플레인하고 나서도,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다음엔 뭘 시키지”가 떠오릅니다.
가끔은 스스로가 너무 웃겨요. 분명 잘못된 메뉴가 왔는데, 저는 그 잘못된 것을 기반으로 다음 선택을 하더라고요. 마치 “실패했어도 데이터가 있었으니 다음엔 더 잘 맞출 수 있다”는 연구자 모드랄까요. 물론 확률은 계속 망가질 텐데, 저는 계속 도박을 해요. 제 주변 사람들은 “그 집은 그냥 배송이 랜덤이잖아”라고 하면서도, 제가 또 시키면 다들 이상하게 구경하듯 기다려요.
결국 제 결론은 이거예요. 배달이 잘못 와도 한 번 더 시키게 되는 건, 단순히 관대해서가 아니라… 제가 맛에 쉽게 굴복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잘못은 변명이 아니라 경고였는데, 그 경고를 맛이 무마해버리더라고요. 오늘도 앱 켰다가 “오늘은 뭐가 오려나” 하고 생각하는 제 자신을 보면, 솔직히 피식 웃음이 나요. 배달은 틀릴 수 있어도, 제 습관이 틀린 적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