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거래 상대가 이모티콘만 보내고 말은 없음
당근 거래 상대가 이모티콘만 보내고 말은 없음. 처음엔 그냥 바쁘나 보다 했는데, 그게 연달아 이어지니까 슬슬 “이 사람은 지금 대화 시스템이 아니라 감정 농도만 보내는 중인가?” 싶더라.
나는 자잘한 생활용품을 올려놨고, 관심을 누른 사람이 바로 매물에 “❤️” 같은 이모티콘을 툭 던졌어. 보통은 “가격 괜찮아요?” “몇 시 가능하세요?” 이런 식으로 말이라도 오잖아. 근데 그 사람은 계속 말 없이 이모티콘만 보냈어. 사자 이모티콘도 아니고, 진짜로 그냥 심장, 엄지, 웃는 얼굴 같은 걸로만 이어지더라.
그래서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 직거래 원하세요? 위치는 ○○이고 시간은 오늘 저녁이나 내일 오전 가능해요”라고 길게 보냈지. 답장은 2분쯤 뒤에 왔는데, “👍👍” 딱 두 개. 그다음 또 5분 뒤에 “😊” 한 개. 솔직히 그 시점에서 내 메시지가 상대에게 ‘전달됨’ 처리만 되고 내용은 자동 필터링된 건가 싶었어.
그래도 혹시 내가 너무 글을 길게 써서 읽기 귀찮았나 싶어서, 이번엔 더 짧게 물어봤어. “네, 직거래 가능하세요?” “가능하면 시간대 번호로 골라주세요(1: 오늘 저녁, 2: 내일 오전)” 이렇게. 그러자 “1️⃣” 이모티콘이 왔고, 그 뒤로 “🙏”가 연달아 왔어. 근데 정작 “네” “가능해요” 같은 말은 없었고, ‘1’ 고른 건 알겠는데 주소/장소 확인을 어떻게 하지? 그게 문제였지.
나는 용건만 정리해서 또 보냈어. “그럼 오늘 저녁 ○○역 3번 출구 앞에서 뵐까요? 7시 괜찮으세요?” 답장은 또 이모티콘. “🥰” “👏” “✨” 이런 식으로 감정만 계속 올라오는데, 숫자나 장소 같은 건 끝내 말로 확답이 없더라. 순간 내 폰이 고장 난 줄 알았어. 분명히 상대가 보는 건 맞는 것 같은데, 타이핑이 안 되는 건지, 아니면 ‘대화는 이모티콘으로만’이라는 철학이 있는 사람인지.
그러다 진짜로 당근 거래의 핵심이 “확인”이라는 걸 새삼 느꼈어. 시간 확인, 위치 확인, 상태 확인. 근데 상대는 그걸 전부 이모티콘으로 뭉개고 있었지. 그래서 내가 “혹시 지금 말로 답변이 어려우세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이번엔 “😅”와 “🤝”만 연달아 왔어. 그럼 “가능”인지 “곤란”인지가 아니라, 그냥 ‘미안한데 할 말이 없음’ 같은 제스처만 남기는 느낌이었어.
결국 나는 마지막 카드로 시스템형 질문을 했어. “가능(○) / 불가능(×)만 보내주세요. 장소는 ○○역, 시간은 7시 맞나요?” 그런데 여기서도 답은 글이 아니라 이모티콘이었어. “✅”가 왔다. 나는 오케이, 이건 맞다는 뜻이겠지 싶어서 마음 놓고 가방에 물건 포장해서 나갔어. 그런데 막상 만나서 확인하려고 하니, 상대가 갑자기 “잠깐만” 이모티콘을 보내고 위치 공유도 안 하고 있었어. 내가 기다리는 동안, 상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대신 “⏳” “😮” “😂” 같은 걸로 내 시간을 관리하고 있더라고.
그렇게 20분쯤 지나서야 드디어 채팅에 짧은 문장이 하나 떨어졌어. “여기 맞나용?” 이게 말이긴 한데, 하필 그 전에 그렇게 긴 감정 타임라인을 쌓았던 것 치곤 너무 늦게 나온 ‘한 문장’이라 웃음이 나더라. 나는 “네, 여기요. 근데 아까는 시간/장소를 말로 한 번만 확인해주시면 편해요”라고 했고, 상대는 그제서야 “죄송해요. 타이핑이 갑자기 느려졌어요”라는 식으로 마무리했어.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맞아요’ ‘괜찮아요’ 같은 걸 보내고 있었던 거 같아. 다만 나는 그걸 “무응답으로 인한 불안”으로 받아들이고, 상대는 그걸 “말로 길게 안 해도 되게 이모티콘으로 충분히 통했다”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결론은 간단해. 당근에서 대화는 결국 서로의 언어를 확인하는 게임인데, 이모티콘만 던지는 사람과 만나면, 우리는 잠깐 동안 번역기가 되어야 한다는 거야. 다음에 또 비슷한 타입 만나면… 나도 마음속으로 “✅❤️✨”부터 보내고 시작해야 하나 싶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