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보내준 고기, 포장지에 내 이름이 없어서 불안
가족이 보내준 고기 상자를 집 앞에 두고 간 날, 나는 왠지 모르게 손이 덜덜 떨렸다. 택배는 아니고, 엄마가 “급하게 보냈어” 하면서 연락만 툭 남긴 그런 거. 문제는 고기 포장지 겉면을 보는 순간부터였다. 포장지에는 정성껏 붙여둔 스티커랑 배송 날짜는 있는데, 이상하게도 내 이름이 없었다.
처음엔 ‘아, 동생이랑 같이 받으라고 그렇게 붙였나’ 싶었다. 그런데 상자 안을 열어보니 포장지마다 다 똑같이 “OO농장”, “보냉 유지”, “소비기한” 같은 문구만 있고, 주소지/수취인 이름은 전부 생략돼 있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는 뭘 보내든지 “누구누구한테” 딱 적어주는 스타일이었거든. 이름이 없으니까, 고기가 아니라 ‘나’가 빠진 느낌이랄까.
솔직히 말하면 고기 자체는 냉동실에 넣으면 끝이잖아? 그런데 그날은 왠지 마음이 먼저 상했다. 혹시나 누군가 다른 사람 집에 잘못 갔는데 포장만 다시 돌려보낸 건가, 아니면 “너 요즘 바쁘지? 그냥 고기만 보내” 같은 건데 내가 바빴다고 판정당한 건가, 별생각이 다 들었다. 머릿속이 생각으로만 꽉 차면, 이상하게도 배는 더 고픈데 마음은 더 불안해진다.
더 황당한 건, 내가 아예 무관심하게 넘기려 해도 자꾸 눈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포장지 옆쪽 봉투 모서리쯤에 펜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는데, 누가 이름을 적다가 지웠는지 반쯤 지워진 흔적이 보였다. 지운 건지 번진 건지 애매했지만, 나는 그걸 보자마자 “아, 누가 적었는데… 사정이 생긴 거구나” 같은 상상력이 발동해버렸다. 그리고 그 상상력은 항상 최악으로 달린다.
일단 가족 단톡에 사진을 올리고 “이거 내 이름이 왜 없어요?”라고 물어봤다. 진짜로 따지는 톤이 아니라, 장난 섞인 말투로. 그런데 반응이 웃기게도 다들 뜬금없었다. 엄마는 “네가 받는 거 맞지. 포장지에 이름 굳이 안 써도 되잖아” 하더라. 아빠는 “요즘은 개인정보라 이름 안 쓰는 집도 있지”라고 말했고, 동생은 “고기 포장지에 이름 쓰면 고기가 부끄러워해” 같은 드립을 치는 거다. 그 드립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고기가 부끄러워할 일이 뭐가 있지? 내가 뭘 잘못했나?
그래도 나는 납득이 안 돼서, 아예 예전 배송 기록이랑 비교해봤다. 예전엔 고기 포장지에 늘 내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고, 그 옆엔 항상 ‘잘 해동해서 굽고 먹어’ 같은 생활 팁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것도 없이 그냥 깔끔하게만 포장돼 있었다. 깔끔함은 좋은데, 나에겐 왠지 ‘나를 읽지 않은 상태로 보내졌어’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 이름이 없으면 물건도 그냥 물건이 아니라 ‘의미 없는 잔여물’처럼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
밤에 결국 고기를 꺼내 해동하려고 했는데, 그때 문득 또 생각이 났다. 내가 이름을 확인하려고 포장지를 보는 사이, 고기가 이미 내 냉동실에 들어와 있었지. 불안은 포장지에서 시작됐는데, 정작 고기는 내가 산 냉동실에 들어가 있는 거다. 즉, 아무 일도 없을 확률이 높다는 말인데도, 사람 마음은 확률을 싫어한다. 불안은 “만약”만 좋아해. 만약 잘못 보냈다면? 만약 누가 먼저 가져갔다면? 만약 내가 잊힌 거라면? 같은 질문들이 끝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엄마가 전화로 한마디 툭 던졌다. “아 미안, 이름 적으려다 펜이 굳어서 그냥 뒀어. 너 요즘 글씨체 진짜 못 알아보니까.”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글씨체를 못 알아보는 건 내 잘못이 아니고 엄마 펜이 문제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거니까. 나는 그동안 포장지의 빈칸을 ‘사라진 나’로 해석했는데, 알고 보니 펜 잉크가 문제였다. 가족이 보내준 건 고기였는데, 내 마음은 휴대폰 화면처럼 계속 새로고침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뒤로 나는 포장지에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고기를 더 오래 보관하거나 더 조심스럽게 굽지 않았다. 그냥 맛있게 먹었다. 먹으면서도 은근히 기분이 이상해서, 혹시 다음 번엔 이름 대신 “펜 안 굳는지 확인”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농담을 했다. 엄마는 “그건 누가 확인해”라고 웃더라. 나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결국 이름이 있든 없든, 고기는 내 밥상으로 오니까. 다만 가끔 내 불안만은 포장지보다 더 먼저 도착한다는 걸, 그날 제대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