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하면서 전기장판 위에 이불 올리는 순간 체력 0됨
자취하면서 전기장판 위에 이불 올리는 순간 체력 0됨. 이 말은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 그 순간 내 몸이 “에너지 절약 모드”로 들어간다. 보통 집에 오면 현관에서부터 이미 반쯤 지쳐 있긴 한데, 장판 위에 이불을 툭 올리는 그 타이밍이 결정타다. 손도 멈추고, 눈도 멈추고, 심지어 마음속 결심도 멈춘다.
처음 자취 시작했을 때는 전기장판을 그냥 겨울용 도구로 생각했다. “따뜻하면 좋겠지, 전기세만 괜찮으면 되겠지.” 그런데 살기 시작하니 장판은 그냥 난방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 됐다. 전원을 켜고 10분쯤 지나면 방 안 공기가 달라지고, 그때부터 머릿속이 소곤소곤해진다. “이제 됐어. 여기서 살면 돼.”
그리고 진짜 문제는 이불을 올리는 순간이다. 전기장판 위에 이불을 올리면, 공기랑 이불이 합쳐지면서 온도가 딱 맞물린다. 그러면 몸이 자동으로 드러눕기 모드로 변한다. 예전에는 “이불 정리부터 하고 씻자” 같은 계획을 세웠는데, 이불을 올리는 순간 계획이 어디론가 증발한다. 마치 계획이 장판 위에 같이 붙어버린 것처럼.
어떤 날은 그렇게까지 한 게 아닌데도 체력이 0이 된다. 예를 들어 배달 음식을 받았거나, 쓰레기 버리러 갔다 오거나, 청소를 조금 했거나. 어떤 행동을 하든 상관없이 장판 위 이불 한 장이 올라오는 순간 내 하루의 승부가 끝난다. 나는 그걸 “기계적 휴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몸이 “열 받았으니 됐다”라고 판정하는 거다.
특히 신기한 건, 그 다음 단계가 항상 비슷하다는 거다. 이불을 올린 뒤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30초쯤 지나면 눕고 싶어지고, 1분쯤 지나면 이미 눕는 중이다. 그런데 눕는 게 끝이 아니다. 눕고 나서 이불 끝을 살짝 당겨 정리하려는 순간, 그게 또 마지막 행동이 된다. 손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손이 “왜 이렇게 따뜻하지?” 하며 멈춘다. 그때부터는 폰을 잡아도 화면이 눈에 안 들어온다. 뇌가 아니라 장판이 나를 조종하는 느낌이 든다.
자취하면서 제일 무서운 게 뭐냐면, 이 상태에서 시간 개념이 무너진다는 거다. “아, 잠깐 쉬었다가 일어나서 정리해야지”라고 말은 하는데, 그 잠깐이 두 시간이 된다. 한 번은 시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알람 맞춰둔 걸 깜빡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가 알람을 들을 체력이 없었던 거였다. 알람 소리가 들려도, 내 몸은 이불 속에서 이미 승락을 눌러버린 상태다.
더 웃긴 건 주변 사람들한테 이 얘기하면 다들 반응이 똑같다는 거다. “전기장판 따뜻하니까 그렇지” 정도로 가볍게 말해버린다. 근데 그 따뜻함이 그냥 난방이냐고. 나는 전기장판 위에 이불을 올리는 그 딱 한 동작이, 하루의 모든 체력을 회수하는 버튼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치 건전지 한 칸이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기계는 전기를 쓰는데, 나는 기분이 아니라 에너지를 잃는다.
그래서 요즘은 나름의 대응 전략이 생겼다. 예를 들면, 이불 올리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을 리스트로 적어둔다. 빨래 넣기, 샤워하기, 방 정리하기 같은 것들. 그런데 리스트를 적는 동안 이미 마음이 반쯤 눕는다. “적어봤자 어차피 안 할 거 아니야?”라는 목소리가 장판에서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결국 가장 현실적인 전략은 하나다. 이불 올리기 전에는 절대 앉지 말기. 이상하게 앉는 순간 끝이다. 무릎이 따뜻함을 기억하고, 몸이 그 기억을 따라간다.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전기장판은 분명히 삶의 질을 올려준다. 추운 날에는 정말 고맙고, 밤에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솔직히 행복하다. 다만 그 행복이 너무 강해서, 내가 그 행복에 취하면 체력이 같이 따라 잠수한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자취하는 나는 겨울마다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따뜻한 건 좋은데, 이불을 올리는 순간부터는 내 하루가 “저장 중”이 된다. 그리고 그 저장이 끝날 때쯤… 또 배고프다. 이게 또 웃긴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