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트렁크에 넣어둔 물건이 다음날 정리돼있음
차 트렁크에 넣어둔 물건이 다음날 정리돼있음. 근데 문제는 “정리”라는 단어가 내 의도랑 너무 달랐다는 거임. 어제 저녁에 트렁크에 이것저것 막 던져놨거든. 장보기 봉투, 캠핑용 가방, 접이식 의자 부품, 그리고 그냥 급하게 찾다 만 것들. 솔직히 말하면 ‘내일 차에서 꺼내서 정리해야지’ 하고 대충 넣어둔 상태였어.
그런데 오늘 아침에 차 문 열자마자 트렁크 냄새부터가 달랐어. 어제는 비닐봉지랑 젖은 아이스팩이 뒤섞인 구수한(?) 냄새였는데, 오늘은 뭔가… 새 종이 펼친 듯한 깔끔한 느낌? 이게 제일 먼저 의심 포인트였지. 나는 일단 트렁크를 열어봤고, 거기서 내가 본 건 ‘정리됨’이 아니라 ‘누가 손으로 해놓고 간 것 같은 배열’이었음.
장보기 봉투는 전부 바닥 한쪽으로 모여 있었고, 캠핑 가방은 지퍼가 반쯤 덜 잠긴 채로 딱 가운데에 놓여 있었어. 접이식 의자 부품은 종류별로 비닐에 다시 담겨 있고, 심지어 나사나 육각렌치는 작은 파우치에 정돈돼 있더라. 내가 어제 아무렇게나 넣어둔 걸 생각하면, 이건 진짜로 “사람이 했구나” 싶은 수준이었어. 아니, 누가 내 차를 정리했냐 싶은 느낌.
근데 더 웃긴 건 메모가 없었단 거. 누가 물건을 정리해주긴 했는데, “고맙습니다” 같은 것도 없고 그냥 그대로 끝. 그래서 나는 일단 주변을 살폈어. 혹시 누가 잠깐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정리만 하고 간 건가? 우리 동네가 유리창 비치는 편이라 CCTV도 어쩌면 있을 법한데, 그걸 당장 확인하러 가기엔 너무… 황당해서. 그냥 손으로 한 번 더 만져봤지. 손바닥에 먼지가 묻는 걸 봐야 내 억울함이 풀릴 것 같았거든.
그런데 확인해보니 더 미치는 포인트가 생김. 어제 내가 트렁크 바닥에 떨어뜨려둔 영수증이 분명 있었거든. 그 영수증은 내가 차에서 내리면서 “아, 다음에 빼야지” 하고 그냥 두고 갔는데, 오늘은 그 영수증이 접어서 가방 옆에 꼼꼼하게 끼워져 있었어. 게다가 영수증 위에 종이 클립이 꽂혀 있더라. 나 그거 집에 있는 거였나? 하고 생각했지. 집에서 종이 클립을 어디다 뒀는지 기억이 안 나거든. 그런데 차 안에서 딱 필요한 형태로 발견되면… 사람 멘탈이 흔들리잖아.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잠깐 정신 나갔나?”를 점검했어. 어제 술은 안 마셨고, 잠은 일찍 잤고, 기억은 멀쩡하거든. 그렇다고 “내가 자다 일어나서 정리했나” 하기엔 너무 구체적이야. 특히 의자 부품 같은 건 조립 설명서랑 세트로 묶어놨어. 설명서가 없으면 누가 정리해도 그 방식 그대로 하기가 힘든데, 그게 딱 맞춰져 있었어. 누군가가 조립까지 고려해서 정리한 느낌.
그래서 결국 결론은 하나로 모였어. 차 트렁크가 스스로 정리하는 차… 이런 말도 안 되는 쪽으로 생각하게 되는 게 문제지. 농담으로라도 ‘내 차가 성격이 좋은 편인가 보다’ 싶었는데, 솔직히 그게 더 무서워. 차가 스스로 정리를 한다면, 다음엔 내가 찾는 물건도 알아서 찾아주겠지? 그런데 그게 내 의도와 맞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어? 내일은 또 내가 “어디 갔지” 하고 찾는 순간, 내가 모르는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을 확률이 있잖아.
그래도 찝찝해서 한 가지는 확인했어. 어제 트렁크에 넣고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물건이 하나 있었거든. 작은 휴대용 손전등. 분명히 그건 아무 데나 넣었을 텐데, 오늘 아침엔 충전 케이블이랑 같이 묶여서 파우치에 들어있더라.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고맙다” 싶었는데, 동시에 “근데 왜 내가 찾을 타이밍에 맞춰서만 정리해?”라는 생각이 들었어.
결국 오늘은 아예 트렁크에 뭘 넣을 때도 “정리될 거면 내 방식대로 정리해줘”라고 혼잣말까지 하게 됐음. 사람한테 부탁하면 되는 걸 굳이 차한테 말하는 게 웃기긴 한데, 어제 경험이 워낙 강렬해서. 그리고 지금도 가끔 트렁크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해봐. 혹시 또 내일 아침에 뭐가 바뀌어 있을지, 아니면 내 손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확인하려는 마음이랄까. 차 트렁크가 정리해주는 건 좋은데, 내 물건만 정리해주면 좋겠어. 오늘처럼 말이지.